[젊은 의사들이 내놓은 처방전]① 비급여 유행 잡아야
국민 소득 높아지며 건강보험 외 비급여 시장 활성화
의사로서 ‘명예’ 선택하면 포기해야 하는 ‘수입+삶의 질’
필수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와 의료계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비대면 진료 제도화, 응급의료체계 개편, 지불제도 개혁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지만 사회 갈등만 키우는 모양새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한민국 의료체계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청년의사가 창간 31주년을 맞아 젊은 의사들과 한국의료를 진단하고 해법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 청년의사 박재영 편집주간
토론: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장
장성인 연세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정윤빈 세브란스병원 일반외과 입원전담교수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이상 가나다 순)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중증‧응급‧분만‧소아진료 분야를 중심에 둔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에는 ▲인력 확보 ▲의료접근성 강화 ▲공공정책수가 도입 등이 담겼다. 이후 복지부와 의료계는 의료현안협의체 등을 통해 필수의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 대책이 발표된 지 6개월이 흘렀지만 ‘필수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았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갈등만 커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논의를 지속하다가는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경제 성장이 부른 안정적 비급여 시장의 나비효과
사회자 :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크지만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필수의료 분야 인력 부족 등 문제가 발생한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장성인 : (보건의료 서비스는) 건강보험 급여 영역이 있고 건강보험이 아닌 비급여 시장이 있는데, 과거에는 건강보험 영역 내 불균형으로 인기과와 비인기과가 나뉘는 문제가 있었다면 지금은 건강보험 영역 외 시장으로 나가는 인력이 많아졌다는 게 문제다.
인력 유출과 함께 주목해봐야 하는 부분은 건강보험 외 시장에서 의사 수입과 일의 강도 등이 의사 전체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국민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건강보험 영역 외 의료시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공급자들에게 비급여 시장이 안정적이 됐다는 점도 중요하다.
건강보험 영역 외 시장이 안정적이 됐다는 것은 의사 들 중 ‘아, 이정도면 내가 그 시장으로 들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이고 실제 주변에도 이런 사례가 많다.
사회자 : 건강보험 영역 외 의료시장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의미인데, 또 다른 변화도 있나.
장성인 : 건강보험 영역 외 시장에서 활동하는 의사들에 대한 인식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쉽게 말해 사람 살리는 것보다 미용‧성형 분야 의사들에 대한 인식이 의사들 사이에서도 좋아진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을 살리는 전문과목에 대한 보람, 자부심, 사회적 지위 등이 의사들에게 어느 정도 보상이 됐는데 지금은 이런 가치는 사회적으로 낮아지고 오히려 소송 부담, 의사들에 대한 사회적 비난 등이 높아지다 보니 의사들도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게 우리나라 필수의료 문제가 건강보험제도 하에서 해결되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다.
정재훈 : 한마디로 정리하면 ‘가오(폼을 속되게 이르는 말) 상실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의대 교수가 되거나 필수의료 분야에서 일하면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경제적 보상도 어느 정도 있었는데, 이제 그런 부분이 없어진 것이다.
정윤빈 : 현장에서 느끼는 바를 이야기 하자면 ‘가오 상실의 시대’라는 말은 의료계 상황을 진짜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사회적으로 존중이 결여되면서 발생하는 문제다.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현실을 이야기 하지만 그 정도 필수의료를 제공하는 의사는 드라마에서나 가능하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없는 상황에서 이정도 급여로는 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위험도가 큰 영역은 삶의 질이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력을 많이 투입해 짐을 덜어줘야 하는데, 오히려 인력이 부족하니 한 사람에게 일이 더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도 문제다.
사회자 : '가오 상실의 시대'라는 말이 와 닿는다.
강민구 : 건강보험 영역에 있는 분야를 모두가 기피하는 현상이 지속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특정 과가 아니라 각 과 별로 급여진료 영역을 기피하는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모두가 비급여 진료 분야로 진출하고 싶어한다는 것인데,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해봐야 한다. 심리적 장벽, 의료소송 등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근본적으로 (급여와 비급여 간) 가격 수준 차이가 많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자 : 급여와 비급여 간 가격 수준 차이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
강민구 : 비급여 영역에서는 지속적으로 수요가 창출되고 (의료서비스) 가격도 올라가면서 종사자 급여도 상승한다. 하지만 건강보험 급여 영역은 재정에 한계가 있어 가격 통제를 통한 전체 파이 관리를 한다. 때문에 종사자 처우 개선 등에 집중하기 어렵다.
사회보험인 건강보험이 필수의료 문제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심각하다고 이야기 하는 소아청소년과 문제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런 부분들을 봤을 때 미래가 없기 때문에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에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젊은 의사들이 삶의 질을 중요시하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급여와 비급여 선택 의사 간 수입 격차 너무 커
사회자 : 필수의료 분야 인력 부족 문제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최근 더 심해진 것 같다.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보나.
강민구 : '전공의법'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당 80시간으로 제한하면서 대체 인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없었기 때문에 전공의 외 인력들의 업무량이 더 늘었을 것이다.
더해 문재인 케어 등 여러 정책으로 국민 의료 이용을 증가시켜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중심으로 환자 쏠림이 가속화한 것도 의사들의 업무강도를 더 늘리지 않았나 싶다. 결국 전공의 근무시간 축소와 맞물려 전문의가 충원됐어야 했는데, 이런 정책이 나오지 않은 것이 문제다.
정윤빈 : 반은 동의하지만 반은 아닌 것 같다. 전공의 근무시간 제한이 생겨 교수들 업무량이 많아지고 그 모습을 본 전공의들이 ‘저렇게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교수들도 자신들이 어떤 부분에 가치를 두고 사는지 전공의들에게 보여줄 시간이 없어지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외과를 선택한 전공의들은 어느 정도 업무량은 감안하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외과가 왜 가치있는지 교수들이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데, 이걸 할 시간이 없다. 현장에서 전공의와 교수진 간 심적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아쉽다.
정재훈 : 의사가 과나 직업을 선택할 때 돈, 명예, 삶의 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세가지 모두를 만족하긴 어렵고 두가지 정도에서 타협하는 것은 쉽다. 우리나라 전체 경제상황을 보면 2000년대 후반부터 급격한 성장을 이뤘는데, 경제성장으로 비급여 시장에서 실손의료보험도 도입되고 미용‧성형 등 비급여 진료 영역이 엄청나게 커졌다. 돈, 명예, 삶의 질도 결국 동료들과 상대평가하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돈이나 삶의 질을 선택한 사람과 명예를 선택한 사람들 간 수입 차이가 너무 커져버린 것이 문제다.
이런 차이를 메우기 위해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의 명예와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하한다. 그런데 오히려 필수의료 분야는 (명예와 삶의 질 마저) 계속 악화되면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살 수 있고 수입도 높은 분야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사회자 : 결국 수입 차이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인데, 그렇다고 비급여 영역 의사들의 수입을 인위적으로 낮출 수는 없지 않나.
정재훈 : 결국 한쪽을 낮추거나 높이는 선택을 해야 하는데, 돈을 선택한 사람들의 수입을 낮추기만 하는 결정은 반발이 너무 크고 명예를 선택한 사람들의 수입을 높여 균형을 맞추기에는 너무 어렵다. 결국 한쪽은 낮추고 한쪽은 높이는 선택을 해야 하는데,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정윤빈 : 예를 들어 의대 정원을 크게 늘려 증가한 의사 중 80~90%가 비급여 시장으로 진출하고 공급이 많아져 (비급여 의료서비스) 단가가 낮지고 그로 인해 수입이 줄어드는 것도 기대할 수 있나.
사회자 : 지금 의대 정원을 늘리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 중 하나다.
강민구 : 비급여 분야로 진출하는 의사들이 수입이 조금 낮아진다고 해서 (건강보험 급여 영역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낮다. 비급여 영역은 수입이 낮아지면 다른 분야로 끊임없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결국 건강보험 급여 영역 보상을 비급여 영역과 비교해 어느 정도 맞춰야한다.
비급여 선택하는 유행 빨리 잡아야
장성인 : 지금 비급여 영역으로 의사들이 많이 진출하는 것을 일종의 유행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떤 때는 외과가 잘 나가서 외과 의사가 많아지고 어떤 때는 영상의학과가 잘 나가서 영상의학과 의사가 많아지기도 했다. 심지어 의대 같은 학번에서 어떤 때는 교수가 많고 어떤 때는 개원의가 많아지기도 한다. 지금은 비급여 분야 진출이 유리하니까 유행을 타는 상황이고 이 사람들은 당연히 돌아오지 못한다. 다만 이 유행이 너무 오래 가면 문제가 된다는 정도로 볼 수도 있다.
사회자 : 유행이 지나가긴 하나.
장성인 : 지나가게 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완전히 시장에 맡기면 가능하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이 없어지고 사람 한명 살리는데 1억원, 10억원씩 주면 (필수의료 분야로) 다 돌아온다. 그런데 지금 건강보험 급여 분야는 가격 규제 시장이고 비급여 분야는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 때문에 (의사들이 비급여 시장으로 몰려가는) 유행을 조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유행이 시작된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비급여 분야로 빠져나간 사람들이 평생 그 일을 하면서 살더라도 앞으로 의사들을 필수의료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게 만든다면 의료보장제도를 이어갈 수 있다. 유행을 멈추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급여와 비급여 영역 수입 균형을 맞추줘는 것에 동의한다.
사회자 :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장성인 : 예전에는 각 과 간 불균형이 그래도 건강보험 급여 영역 안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급여 구조를 바꾸는 등의 조치로 균형을 맞출 수 있었지만 지금은 건강보험 영역과 비급여 영역이 단절돼 있는 것이 문제다. 이 두 영역을 연결해야 한다.
연결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는데, 둘 다 시장 영역으로 두거나 둘 다 규제하는 방법이다. 둘 다 시장 영역으로 두는 것은 건강보험이 없어지는 것이고 둘 다 규제하는 것은 문재인 케어처럼 모든 것을 다 (급여 영역에) 넣고 아니면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회자 : 두 방법 다 불가능하지 않나.
장성인 : 비급여 영역에 있는 의료기관에도 건강보험 급여 서비스를 20% 정도 의무 제공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비급여 영역에 있는 의료기관이 급여 서비스 20%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이 의무를 채우지 못하면 부담금을 내게 하고 이를 모아 건강보험에 투입하는 방법이다.
필수의료 정의 제대로 해야 해결책도 나와
사회자 :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우리나라 필수의료 분야는 앞으로도 계속 어두워 보이는데, 동의하나.
장성인 : 그렇게 보지 않는다. 정부가 필수의료라고 정의하는 부분을 잘 살펴야 하는데 ‘공백이 생기는 분야’로 정의해야 한다. 사실 국민에게 필요한데 공백이 있으면 안되는 분야가 다 건강보험 급여 영역에 있다. 그 중에서 공백이 있는 부분을 필수의료라고 보면 유동적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결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덜 해결된 부분이 필수의료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건강보험 급여 영역 안에 있는 서비스에 문제가 생기면 필수의료로 보고 재원을 투입하면 해결할 수 있다.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해도 다음 문제가 올 수는 있지만 계속 어두을 것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회자 : 예를 들어 내년이나 후년이 되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인가.
장성인 : (정부가) 작정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강민구 : 필수의료는 그 사회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지 어느 사회나 완벽하게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찌됐건 건강보험 급여 영역에서 꼭 커버해야 하는 분야가 필수의료인 것 같다. 정부가 작정하고 소청과를 지원하면 소청과 전공의가 늘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결국 건강보험 내에서 혁신적인 결정을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에 공감하고 그렇기 때문에 문제다.
정재훈 : 필수의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필수의료에 대한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정의를 내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보통 필수의료 위기라고 하면 특정 과 중심으로 도와주는 정책을 펴는데, 흔히 말하는 필수과인 소청과나 산부인과 안에서도 필수와 비필수 영역이 있다. 예를 들어 산부인과 수가를 올려주면 의사들이 산부인과 전공해서 부인과나 부인암 전공하고 산과는 안하는 식이다.
개인적으로 필수의료는 특정 과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질환을 기본으로 시장경제로는 도저히 해결 불가능한 영역’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다. 특정 과 중심으로 접근해서는 필수의료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공유되지 않으면 해결은 더 어려워 질 것이다.
관련기사
- 필수의료 지원대책 '공수표'였나…"반년 지나도 현장 변화 無"
- "외과수술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것이 목표"
- 대동맥‧소아심장 수술 수가 인상…중증응급환자 가산 확대
- 저수가에 울고 선심성 정책에 치이는 산부인과 “자연스레 폐과”
- 의료계에 줄 ‘당근‧채찍’ 모두 담긴 필수의료 지원대책 최종안
- [창간특집] 암울한 한국의료 미래, 그래도 ‘희망’은 있다
- 10년간 의대 정원 6000명 증원 법안…“모든 문제 의사 부족 탓만”
- 보호자 없이 온 미성년자 환자 정당한 '진료 거부' 사유 될까
- 개원가에서 병원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필수의료 위기
- "필수의료 지원대책, 체감 못하겠다” 불만 쏟아낸 의료계
- 대학병원 교수가 '기피 직업'된 세상…"쥐어짜기 의료 그만하자"
- 대학병원 교수들의 ‘이유 있는’ 개원가 이탈…“지방부터 흔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