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한핵의학회 강건욱 회장
"기술 발전=핵의학 발전…무궁무진한 분야"
기초·임상·산업 플랫폼 "가치 창출 도전하길"

핵의학과는 의료계에서도 여전히 생소한 분야다. 전공의 지원율이 나오는 연말연초에 "지원율 또 최하위라고 반짝 기사가 나는" 과다. 다른 '기피과'들 지원율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비교급 단어가 되곤 한다. 밖에서는 이 '만년 꼴찌'의 미래를 걱정한다.

그러나 핵의학과 스스로 그리는 미래는 밝다. 어느 전문과보다 기술 발전과 밀접한 곳이기 때문이다. 병원 내 디지털 기술 도입 역사와 함께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막 보급된 '퍼스널 컴퓨터(PC)'보다 더 생소한 유닉스(UNIX) 운영체제를 익히러 학원 다니고 의국에 손수 인터넷 통신망을 깔고 네트워크 게임을 하던 전공의들이 30년이 지난 지금 핵의학 대가로 후학을 양성하고 '테라노스틱스(Theranostics)' 등장과 함께 글로벌 기업들과 '꿈의 치료제'를 만들고 있다.

대한핵의학회장인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강건욱 교수도 그중 한 명이다. 주위 권유로 의대에 진학하며 '영영 기술과 멀어진다'고 낙심했던 공학자 꿈나무는 핵의학과에 발을 들이면서 기술 발전의 최전선에 서게 됐다.

핵의학은 분자라는 단위를 매개로 화학·물리학·생물학 등 기초과학과 엮이고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등 검진과 검사 분야에서 공학·데이터학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강 교수가 "기술 발전이 곧 핵의학의 발전"이라고 하는 이유이자 '지원율 꼴등' 핵의학과의 미래를 낙관하는 이유다.

"핵의학은 기술 트렌드를 함께하는 학문이다. 단순히 따라가는 수준을 넘어 여러 기술을 융합하고 선도하는 위치에 있다. 지금이 아니라 10년, 20년 후를 내다보고 다양한 학문을 접목하며 새로운 가치 창출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의 도전을 기다린다."

청년의사는 핵의학회장인 강 교수를 만나 핵의학과의 역할과 비전에 대해 들었다.

강 교수는 지난 1991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과 국립암센터에서 핵의학 전문의로 경력을 쌓았다. 지난 2022년 11월 핵의학회장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아시아지역핵의학협력기구(ARCCNM) 의장이기도 하다.

대한핵의학회장인 서울대병원 강건욱 교수는 기술 트렌드와 함께하는 핵의학과가 기초연구와 임상의학, 산업을 잇는 플랫폼이자 네트워크 구심점이라고 했다(ⓒ청년의사).
대한핵의학회장인 서울대병원 강건욱 교수는 기술 트렌드와 함께하는 핵의학과가 기초연구와 임상의학, 산업을 잇는 플랫폼이자 네트워크 구심점이라고 했다(ⓒ청년의사).

- 핵의학회가 지난 2021년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그만큼 역사가 깊은데 여전히 생소하다는 반응이 많다. 핵의학회장으로서 진로로 핵의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내가 의대생일 때는 더 생소했다. 선배들도 무슨 그런 과를 가느냐고 할 정도였다. 30년 전이니까 개인 PC가 대학에 보급되던 시절이다. 디지털 기술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사실 공대를 가고 싶었는데 의대를 왔으니 적어도 기술 발달에 따라 빛을 발하는 과를 가자고 생각했다. 또 지금 당장이 아니라 20년 뒤 내가 임상 현장에 나갔을 때 잘 되는 과를 가자고 판단했다. 우스갯소리지만 사람 없고 인기 없을 때 들어가야 대우받는다는 생각도 있었다.

- 30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의대생 때 판단이 옳았나.

그때 판단이 적중했다. 핵의학 전문의는 의사면서 기초연구와 중개연구를 두루 섭렵하고 신약부터 장비 개발까지 참여한다. 자연스럽게 기술 특허에 관여하고 이를 이용해 사업하기도 용이하다. 핵의학이 정말 재밌는 분야다. 의사가 될 수도 있고 공학자가 될 수도 있고 기업가가 될 수도 있다. 기회가 되면 국제원자력기구(IAEA)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도 가능하다. IAEA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확산을 목표로 하는데 의료 분야 핵심이 바로 핵의학이다. 실제 이직 제안도 받았다.

- 오스트리아 빈에서 일할 절호의 기회였는데 왜 안 옮겼나.

서울대병원 월급이 더 높다(웃음). 수입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핵의학과는 병원에서 받는 월급뿐만 아니라 기업 사외이사나 용역 사업으로 버는 수입이 상당하다. 기본적으로 본인 맡은 일만 깔끔하게 한다면 크게 터치하지 않는 자유로운 학풍이다. 전공의 때 병원에 처음 인터넷이 들어왔는데 우리끼리 네트워크 선 끌어오고 서버 좋은 거 설치해서 게임도 하고 그랬다. 그런 분위기가 지금까지 잘 지켜져 내려온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워라밸(WORK&LIFE BALANCE)'도 얼마든지 챙길 수 있다. 솔직히 핵의학과만큼 워라밸 잘 되는 곳도 없다. '평생 워라밸'이 가능하다.

- '근거 있는 자신감'인가.

그렇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입원 진료 관련 업무가 거의 없어 당직 부담이 덜하다. 핵의학과 입원 환자 대부분이 1박2일 정도고 상태가 안정된 환자가 많다. 나는 일주일에 평균 12명 정도 본다. 그래서 서울대병원은 당직도 교수들이 돌아가며 하고 있다.

- 최근 '기피과' 문제를 논하면서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 중심으로 병원 업무 체계를 개선하고 당직 부담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데.

이미 그렇게 바꿨다. 1차 판독을 전공의가 하고 2차 판독을 교수가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이제는 다 교수가 한다. 전공의는 일보다 수련에 초점을 맞췄다. 전공의 수 자체가 적은데 '전공의가 해야 할 일'을 정해 놓으면 한 사람당 감당해야 할 업무량이 너무 크다. 서울대병원에서도 펠로우를 더 늘리고 교수가 업무를 더 부담하는 체제로 갈 계획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단언하건데 핵의학과는 전공의에게 업무 부담을 주지 않는다.

- 전공의가 워낙 적으니 어렵지만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 같다.

그게 문제다. 정말 전공의 안 들어오는 거 빼면 다 잘 나가는 과인데 후학을 구할 길이 없다. 서울대병원은 물론이고 서울아산병원이나 전남대병원, 경북대병원 등 주요 대학병원 교수들이 정년을 앞두거나 퇴임한다. 몇 년 안에 교수직조차 못 뽑는 게 아닐까 우려가 크다. 가장 큰 원인은 홍보 부족이다. 처음도 말했지만 아직도 생소한 과다. 전공의 모집 시기에 반짝 기사 난다. 핵의학과 검색하면 '지원율 제일 낮다, PET 축소 때문에 힘들어졌다' 이런 이야기밖에 안 나온다. 학회가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 PET 때문인지 영상의학과 등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말도 나온다.

기본적인 콘셉트 자체가 다르다. 영상의학과가 촬영한 영상을 해석한다면 핵의학과는 분자를 표적으로 삼고 이를 추적한다. 표적이 아밀로이드라면 치매 진단이 되고 도파민 트랜스포터라면 파킨슨병 진단이 되고 각종 바이오마커에 따라 암을 진단하고 치료한다. 안티에이징 분야도 새로운 바이오마커가 나오고 있다. 이제 인간의 노화도 정량화와 측정 가능한 개념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는 곧 신약 개발로 이어진다. 이미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가 전립선암 표적치료제를 냈다. 표적이 명확하면 그만큼 부작용과 통증은 줄이면서 치료 유효성은 높아진다. 앞으로 안티에이징, 조기진단과 예방적 치료 분야에서 핵의학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 다른 과와 차별화된 핵의학과만의 장점도 꼽는다면.

앞에도 말했지만 핵의학은 기초과학과 임상의학 양쪽과 교류하기 때문에 핵의학을 중심으로 네트워크 만들기가 용이하다. 또 핵의학과 의사는 임상에 나온 기술을 다 써본 사람들이다. 의료 미충족 수요(unmet needs)는 물론이고 틈새시장(niche market)부터 기술 경쟁 구도까지 꿰뚫고 있다. 기업가도 투자자에게도 믿을 수 있는 파트너다. 이게 핵의학자로서 묘미다. 내가 플랫폼이고 허브고 나를 중심으로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 연구와 기술, 의료와 산업 간 네트워크 구축은 사실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나서야 하는 분야인데 우리는 아직 미흡하다는 평가다.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한국이 투자와 노력을 안 하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해마다 연구비만 몇천억원씩 투입한다. 그런데 왜 미국이나 이스라엘처럼 못할까. 핵심은 기술보다 사람이다. 의사, 과학자, 엔지니어, 사업가, 투자자가 교류하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파트너쉽을 맺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가 연구비가 아니라 회식비를 지원해야 한다는 농담도 한다. 사실 진담이기도 하다. 연구비는 투자자가 내면 된다. 그 돈으로 특허 기술 출원하고 상품화하고 임상에 적용하는 흐름으로 가야 한다. 논문 하나 안 나오더라도 실질적인 성과를 손에 쥘 수 있는 방향으로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 핵의학과 역할이나 가능성에 비해 저조한 관심과 지원이 아쉬울 것 같은데.

핵의학과 미래는 명약관화다.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핵의학과 협업을 희망한다. 발전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힌다. 10년 뒤 그리고 20년 뒤 우리 핵의학과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지원율만 보고 아쉽고 우울할 이유가 없다. 다만 의대생들이 이를 언제 알아봐 주느냐에 따라 그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고 지연될 수도 있다. 핵의학의 미래도 결국 후학이 들어와야 실현된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내가 그랬듯 20년 후를 내다보라고 강조한다. 모든 의대생이 핵의학을 지망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핵의학과 특성에 맞는 학생들의 진로 선택지에서 핵의학과가 뒤로 밀려나지 않길 바란다.

- 마지막으로 미래의 핵의학자, 핵의학 전문의에게 한 마디.

처음 의대에 들어올 때는 끝내 공학자가 되지 못하리란 생각에 많이 후회했다. 하지만 지금 내 모습을 보라. 그렇게 원하고 바라던 나 자신 그 자체가 됐다. 핵의학과가 해야 할 이야기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과학을 애호하고 연구와 개발을 사랑하는 이들, 무궁무진한 비즈니스의 세계에 도전하고 싶은 이들, 이를 통해 자아실현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핵의학은 길이 되고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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