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평수 차의과학대 보건의료산업학과 교수

지난해 의원을 운영하는 원장 두 분이 스스로 유명을 달리하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현지확인 활동이 두 사건의 원인이라는 주장에 대해 당사자 간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현지확인이 불행한 사건 발생의 현상이나 원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대처 방안 등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현지 확인의 실체


현지확인은 보험자인 공단이 공보험인 건강보험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활동의 일부분이다. 구체적으로 현지확인은 건강보험 재정보호를 목적으로 요양급여비의 부적절한 청구가 의심되는 요양기관에 급여비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활동의 일부이다.

재정보호를 포함한 건강보험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법(제96조)은 공단이 관련 기관에 자료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게 했다. 공단은 현실적으로 자료 요청 이전에 민원 등에 의한 부적정 여부를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요양기관을 방문해 확인하는 방안을 활용하고 있다.

공단의 현지확인은 건강보험 관리기관의 통상적인 활동으로 요양기관에 강요할 사항은 아니고 협조를 요청할 사항이다. 요양기관의 협조(동의)가 없다면 수행할 수 없는 활동이다. 실체가 이러함에도 현지확인에 대해 당사자 간 논란이 발생하는 것은 나름대로 현실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당사자의 입장

요양기관은 공단이 현지확인 과정에서 강압적인 자세로 검찰 고발, 업무정지나 현지조사 요청 등을 제시하면서 현지확인에 응할 것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적절한 행태를 방지하기 위해 표준운영지침(SOP)의 제정·운용을 요청했으나, 내용이나 이행 담보 등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지확인이라는 활동 자체가 폐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공단은 진료사실과 급여비 청구 사실의 불일치를 확인하는 활동으로 현지확인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양기관이 현지조사를 거부할 경우에는 강요해서도 안 되고 강제할 수도 없음으로 자료 제출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지확인은 재정보호를 위한 공단의 통상적인 협조 요청 활동으로 협조 여부는 요양기관의 결정에 의하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자료 제공 요청 등의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요양기관은 약자, 공단은 강자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 요양기관은 확인 요청에 응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전에 확인 대상이라는 것 자체가 불안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단의 재정보호 활동은 보장돼야 하나, 이로 인한 요양기관의 부적절한 심적, 물적 부담이나 피해도 보호되는 조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문제의 원인과 그간의 대처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와 보험자가 요양기관의 세부적인 활동을 일일이 개입해 규제할 수밖에 없는 제도라는 데 있다. 현 공급체계는 질서가 없는 무한경쟁의 상태이며, 지불제도는 의료행위의 세부 사항을 규제하는 행위별수가제이다. 이 상황에서 요양기관이나 단체의 자율규제는 작동할 수 없으며, 그 반향으로 정부와 보험자의 간섭과 규제의 당위성이 거론된다.

현 상태의 공급체계와 지불제도에서 요양기관은 수입 증대를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서비스를 다양하게 제공해야 함은 당연하다. 보험자 또한 재정보호를 위해 요양기관의 이러한 행태를 감시하고 제재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 간의 갈등 또한 당연하다.

갈등 해소 방안으로 SOP가 거론돼 왔다. 의료계는 공단 직원들의 현지확인 활동을 어느 정도 규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SOP는 공단의 업무수행을 위한 내부 규정이어서, 외부에서 이의 준수를 강요할 수도 강요할 방법도 없다. 한편으로 의료계가 SOP의 적정화를 요구하고 참여한 것은 공단의 현지확인 활동을 인정함을 의미한다. 이는 약자로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나 공단 내부규정으로 실효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보다 근본적인 대안으로 2016년 3월 법이 개정됐다. 공단의 법(건강보험법 제96조)에 의한 자료제공 요청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자료 제공을 요청할 경우에는 “요청 근거 및 사유, 자료 제공 대상자, 대상기간, 자료 제공 기한, 제출 자료 등이 기재된 자료제공요청서를 발송”을 규정했다(제4항). 그러나 법 개정 이후에도 변화는 없는 것 같다. 실효성 있는 대처가 필요한 까닭이다.

앞으로 어떻게

우선 당사자가 준수하고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준이나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 SOP는 공단 내부 업무처리지침으로 당사자 간의 문제 해결 방안으로 적절하지 못한 것 같다. 당사자 간에 공단에게는 준수해야 할 구속력이 없고, 요양기관에게도 준수를 요구할 근거도 없어서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의료계와 공단의 반목과 갈등은 당사자들이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 상황을 해결할 책임은 정부에 있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법(제96조제4항)개정의 후속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법 개정이 약자인 요양기관의 부당한 피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법 규정의 합리적이고 정당한 집행을 위한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 하위법규를 마련해야 한다. 현행법에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이 가능하면 이를 활용하고, 최소한 장관 고시 수준의 지침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 공단 내부의 SOP가 아니고 정부 차원의 SOP를 마련하는 것이다.

정부의 지침을 중심으로 요양기관은 공단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해야 하고, 의료계는 요양기관이 부담 없이 거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 요양기관에 자료제공이나 현지확인 요청이 있을 경우 이에 대응하는 방안을 조언하고 자문하는 기능을 의료계가 공식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즉, 요양기관이 현실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법과 건강보험에 대하여 전문적으로 자문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단은 자료요청이나 현지확인을 적발이나 환수 이전에 예방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민원 등을 활용하기 이전에 빅데이터의 활용 등으로 소수의 확실한 관리대상 기관을 색출하여 문제의 기관은 색출된다는 경찰효과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제도의 운용에 갈등과 반목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유형과 수준이고, 그에 대처하는 당사자의 태도와 정부의 역할이다. 의료계와 요양기관의 갈등은 당사자 간에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사자의 책임도 아닌 것 같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합리적 대안의 마련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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