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특별등급 시행 2년…절반의 성과?

政, 5만여명 혜택 예상했지만 인증자 2만명에 그쳐

초기 치매로 신체기능이 상대적으로 양호해 장기요양의 서비스를 받지 못했던 노인들을 위한 ‘치매특별등급(5등급)제’가 도입된 지 2년이 지났다. 정부는 5만여명의 경증 치매환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5등급 인정자는 2만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일부에서는 홍보가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등급판정을 위한 의사소견서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보건복지부 발표에 의하면, 제도가 도입된 2014년 7월부터 10월까지 단 4개월 만에 1만4,510건의 치매특별등급용 의사소견서가 발급된 데 비해 그해 말 5등급 인정자수는 1만456명에 그쳤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A씨는 “의사소견서를 (공단이) 신뢰하지 않거나 제도 자체에 허점이 있거나 둘 중 하나다”라고 지적했다.




2년간 소견서 4만건, 한해 2만명 혜택

정부는 고령화에 따른 치매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일상생활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경증 치매환자에게도 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지난 2014년 7월 1일 치매특별등급을 신설하고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아울러 수급자 간 기능상태 차이가 커진 3등급을 2개로 세분화해 기존의 장기요양 1~3등급 체계를 전체 5등급 체계로 개편했다. 5등급은 ‘치매특별등급용 의사소견서(이하 의사소견서)’와 함께 등급판정을 신청하면 장기요양 인정조사 결과를 토대로 등급판정위원회에서 인정 여부가 결정된다.

정부가 예상한 5등급 혜택자는 경증치매환자 5만여명으로, 이들에게는 주야간보호기관에서의 인지활동형 프로그램, 인지활동형 방문요양, 방문간호, 치매가족 휴가제도 등의 장기요양 서비스가 제공된다. 정부는 등급판정에 영향을 미칠 의사소견서 수가를 4만5,000원으로 책정했다. 이는 일반적인 소견서 수가보다 다소 높게 책정된 것으로 정책 시행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의료계의 참여를 독려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다만 정부가 인정한 학회에서의 6시간 치매관련 교육 이수를 의무화 했다. 하지만 경영난을 탈피해보려는 개원가를 중심으로 치매 특별등급 의사소견서 교육에 수천여명의 의사들이 참석하는 등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2년 뒤, 치매특별등급에 대한 홍보 부족 탓인지 당초 정부가 예상했던 혜택자수는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6년 2월 29일 기준으로 장기요양등급 인정자수는 총 47만681명이며, 이중 5등급은 2만748명(4.4%)이다. 제도가 도입된 2014년 5등급 인정자수가 1만456명이고 2015년에는 1만9,472명인데 비해 크게 늘지 않았다.

이는 치매특별등급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대한노인의학회 장동익 상임고문은 “제도에 대한 홍보가 아직 부족하다. 환자들이 치매특별등급이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며 “등급을 받으면 장기요양 혜택이 있는지를 모르니 접근도가 떨어진다. 의사만 교육을 받는 등 준비를 하고 있지 보호자나 환자들에게 홍보가 전혀 안 돼 있다”고 지적했다.

장 고문은 “나도 교육을 받은 지 1년이 지났는데 단 한건의 치매 의사소견서도 발급하지 못했다”며 “하루에 300여명의 환자를 진료하지만 문의조차 없다”고 말했다.

의사소견서 신뢰 못하나?

하지만 일각에서는 제도적인 한계로 치매 특별등급이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의사소견서 발급 문제이다. 제도 도입 당시 정부는 전문 진료과목과 상관없이 6시간의 교육을 이수하면 의사소견서를 발급할 수 있는 자격을 줬다. 하지만 이로서는 경증치매 판단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의 A대학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 특별등급제는 활성화 돼야 하지만 교육을 했다고 해서 다 의사소견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4~5등급은 신경과 트레이닝을 받은 뒤에도 증상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 치매환자를 보지 않은 의사가 6시간 교육을 받는다고 될 리 만무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계의 반발 등으로 모든 과에 소견서 발급 자격을 주기는 했지만 실제는 전체 소견서의 70%가 신경과, 20%가 정신과에서 나오고 있다”라며 “오히려 초기 소견서 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의사들이 신중하게 소견서를 작성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치매 특별등급제 시행 당시에도 치매로 진단될 경우 환자들의 사회적 환경에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진단시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따라서 당초 예상과 달리 의사들이 치매로 진단 내리는 데 있어서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게 A교수의 지적이다.

B병원 재활의학과 원장도 “경도인지장애는 비가역적 기억력 손상애 따른 것으로 초기 치매와 감별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치매는 등급을 받으면 요양혜택이 있지만 유산배분이나 개인의 사회생활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때문에 이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좀 더 엄격한 의료진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등급판정위원회에서도 치매는 치매진단 전문가가 사례별 심사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며 “치매진단은 의학적 영역이기 때문에 장기요양 1~3등급처럼 상병을 넣어 기능적 수준을 메기는 것과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의사소견서가 등급판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사소견서를 배부했지만 등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일부에서는 의사소견서보다는 여전히 인증조사원(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물리치료사, 간호사 등 공단 소속 3천여명)의 조사표가 등급판정에 대한 기여도가 높다고 보기도 한다.

공단에 따르면, 2016년 3월 31일 현재 치매 특별등급 관련 의사소견서 발부 건수는 총 4만2,456건으로 이중 5등급을 인정받은 건수는 3만3,925건으로 79.9% 수준이다.

이에 대해 공단은 5등급은 1년 단위로 갱신되고 있다면서도 연도별, 분기별 소견서 발부 대비 인정률은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의사소견서 발부건수 중 1,134건은 등급판정위원회 회의 이전에 제출되지 않아 각하됐으며, 심의 후 4등급으로 인정된 727건을 포함하면 심의건수 대비 인정률이 83.8%라고 설명했다. 그 외 ‘등급외 판정’을 받은 6,680건은 의료진이 치매소견을 밝히지 않고 관련 소견서의 점수의 총합이 기준점에 못미치는 등 기준 미달인 경우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C대학병원 교수는 “장기요양의 경우 모든 것을 점수로 평가하려다 보니 전문가가 아닌 인증조사원의 조사표로 결정이 나는 것”이라며 “중증환자는 증상이 뚜렷한데 비해 경증 치매환자는 전문가가 발견하기도 힘들다. 의사소견서를 배부해줬음에도 인정조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등급을 못받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 의사소견서보다 인증조사표의 반영 비율이 훨씬 높아서인 거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전문가가 판단했을 때 필요한 서비스가 있다면 그에 대한 서비스를 정부가 제공해 줘야하는데 이를 단순 점수화해서 등급을 메기고 그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전문치매케어센터를 활성화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또다른 전문가는 의사소견서 자체를 공단이 신뢰하지 않거나 의사소견서의 질적 수준에 문제가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의사소견서의 내용에 신뢰성이 있다면 적정한 기준과 내용을 충족한 소견서를 환자가 제출할 경우 상당부분 등급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봤을 때 이는 소견서가 형식상 제출 서류에 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A교수는 “의사소견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들어간다. 치매관련 교육을 받는 6시간 이외에도 환자의 6개월간의 치매치료기록을 확인하고 행동을 관찰해 관련 서류를 꼼꼼히 작성해야한다. 물론 판단의 신중성도 기해야한다. 그렇게 작성해 환자에게 줬지만 등급판정을 못받았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환자와 의사간의 신뢰성에도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공단 인증조사원의 조사방법 등에 격차가 커 적기에 환자를 발견하는 것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공단은 환자 당 단 1회만 인증조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당시 환자 상태가 양호하면 의사소견서에도 불구하고 등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한 간호사는 “인증조사원이 누가 올지 보호자가 사전에 알 수 없다. 간호사가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 사회복지사가 오는데, 그때 문제 있는 행동을 해야만 치매가 있구나 하고 판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치매는 최소한의 의료지식이 있는 간호사가 동행을 하던가 해야 하는데 사회복지사 등이 문제행동에 대해 경중도를 어떻게 따지는지 모르겠다”며 “빨리 치매환자를 발견해 인지능력을 유지해줘야 하는데 조사원에 따라 어느 지역은 등급이 잘나오고 어느 지역은 잘 안나오는 우스운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D병원 원장은 “만약 의사소견서 내용과 상이한 결과가 있다면 위원회나 공단 내부에서 재조사나 확인이 필요한 것 아닌가”라며 “5등급이 조기에 치료를 받아 치매 진행속도를 늦추기 위한 것인 만큼 등급을 받지 못해 6개월이라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의사·약사·공무원이 치매 판정을?

이외에도 치매특별등급에 대한 등급판정위원회 구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등급판정위원회가 인프라 및 시간 등의 제약으로 인해 제대로 된 판정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등급판정위원회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의료인 ▲사회복지사 ▲특별자치시·특별자치도·시·군·구 소속 공무원 ▲법학 또는 장기요양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 등 15인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위원회는 공단의 전국 각 지사를 중심으로 총 227개가 구성돼 있다. 각 위원회는 월 2회 회의를 열어 1등급부터 5등급까지 장기요양인정 신청건에 대한 등급판정 심의를 하고 위원에게는 회의 당 10만원의 수당이 지급된다.

그러나 일선 의료진들은 치매여부를 판단하는 위원회가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관련 법상 위원회는 의사 또는 한의사 1명 이상만 포함되면 회의가 성립한다. 그런데 치매를 판단하는데 한의사나, 약사, 심지어 공무원은 왜 참석하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회의에서 의사나 요양보호사 등 한 두명의 의견만으로 회의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심지어 위원회가 전체 장기요양 등급 판정을 담당하다보니 100여건에 달하는 등급신청건을 처리하는 경우도 있어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실제 D지역에서는 1시간 내외로 진행되는 위원회 회의에서 100건이 넘는 신청건을 심의하는 사례가 적잖게 발생했다. 1건 당 많아도 1분의 시간 밖에 못 쓰는 셈으로 사실상 자료를 제대로 검토하지 못한다는 게 의료계의 지적이다.

최근 공단 내부감사에서도 등급판정위원이 사전에 회의 자료를 검토하지도 않은 채 회의에 참석하는 사례가 적발돼 주의 조치를 받은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 공단은 “위원회에 참석할 의료진을 섭외하는 게 쉽지 않다. 다들 바빠서 참석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의사들이 참여를 많이 해준다면 위원회의 비중도 더 늘리고 싶다”면서 “물리적으로 위원회가 처리해야할 심의량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의사소견서와 조사표를 기준으로 명백하게 치매등급에 포함되는 경우는 거의 대부분 인정하고 있으며, 그 외 기준 점수에 못미치는 경우만 등급 외 판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 시작…제대로 된 진단·관리 필요

이에 전문가들은 치매특별등급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제도에 대한 개선과 교육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특히 치매환자에게 적절한 인지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 지역센터 등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대학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특별등급은 치매 진단을 받고도 장기요양 혜택을 받지 못한 환자들에게 좋은 제도이지만 반대로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불필요한 재정 낭비와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면서 “지금 제도가 자리를 못 잡은 것이 아니라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홍보가 부족했던 것인 만큼 홍보를 통한 제도 정착을 도모해야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이 제도의 실질적인 문제는 장기요양센터에서의 인지프로그램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라며 “환자에게는 서비스 제공시간이 짧고, 주간보호센터 등에서는 환자 수용에 따른 경영악화로 기피하는 성향이 있는 만큼 실질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B교수도 “전국에 지역별로 대학병원과 치매지원센터가 연계돼 있다. 주야간보호시설이나 등급판정위원회의 운영 등 인프라가 부족하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역주민의 생활환경이나 사정을 잘 아는 지역 전문가에게 치매관리를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치매특별등급은 기존의 장기요양과 달리 치매환자를 전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그에 상응하는 수가를 지급함으로써 불필요한 행정인력은 줄여야 한다”면서 “단순히 환자에게 혜택을 주느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신중하면서 정확하게 판단해 적절한 서비스를 줄 수 있도록 별도의 트랙으로 전문성을 강화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단 장기요양연구실 유애정 부연구위원은 “장기요양 조사표는 인지정도가 아닌 일상생활의 수행정도를 보는 것으로 5등급의 경우 치매보완서류를 별도로 제출하고 있는 만큼 이들을 위한 별도의 인정조사나 절차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그는 “5등급은 기존에 등급 외였던 사람들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는 만큼 앞으로 대상 그룹이 많아질 수 있도록 홍보가 중요하다”면서 “기존의 장기요양도 있지만 치매중심의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유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치매(정책은) 이제 시작이다. 이제는 치매 증상이 있더라도 지역사회에서 케어할 수 있도록 하는 인프라가 만들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 인력을 양성하고 정책적으로 서포트가 되면 조기에 안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앞으로 치매전담형 장기요양기관을 지정해 개인별 맞춤 돌봄서비스를 실시하고 9월부터 치매환자 가족을 지원하는 정책을 실시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책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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