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책연구소, '의사 진찰시간 현황 분석' 보고서 발간
저수가에 '3분 진료' 고착…"진찰시간 따른 보상제도 도입을"

저수가로 충분한 진찰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의사들이 낮은 만족도와 번아웃을 겪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진찰료 수가를 현실화해 의사가 환자와 충분히 상담하는 진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30일 발간한 '의사의 진찰시간 현황 분석' 보고서에서 전국의사조사(KPS)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이용해 한국 진찰 환경을 분석하고 의료수가와 진찰 환경 관계를 비교분석했다.

2022 KPS 자료에 따르면 한국 의사는 1인당 일주일 평균 초진 환자 39.7명, 재진 환자 125.25명을 진료했다. 평균 외래 진찰시간은 초진이 11.81분, 재진은 6.43분이었다.

한국 의사의 진찰시간과 구성별 할애 비중(자료 제공: 의료정책연구소). 
한국 의사의 진찰시간과 구성별 할애 비중(자료 제공: 의료정책연구소).

초진은 문진에 할애하는 비중이 가장 컸다(39.42%). 신체검진은 23.2%, 진료기록과 처방전 작성 시간 비중은 13.72%였다. 상담과 교육에 할애하는 시간은 2.91분으로 전체 진찰시간(11.81분)의 23.67%에 그쳤다.

재진은 상담과 교육 비중이 27.64%로 초진보다는 소폭 늘었다. 진찰시간 6.43분 가운데 1.80분을 상담과 교육에 썼다. 문진 비중이 35.05%, 신체 검진은 22.49%였다.

의사 1인당 환자가 증가하면 초·재진 진찰시간은 감소했다. 반면 초·재진 시간이 길면 의사 진료 만족도도 그만큼 증가했다. 특히 상담과 교육 시간이 늘어나면 진료 만족도는 높아지고 의사의 업무 소진(burnout)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진료환자 수와 진찰시간은 의료수가 수준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경향이 확인됐다.

OECD 국가 의료수가 수준에 따른 진찰시간(왼쪽)과 의사 1인당 연간 진료환자 수(오른쪽)(자료 제공: 의료정책연구소). 
OECD 국가 의료수가 수준에 따른 진찰시간(왼쪽)과 의사 1인당 연간 진료환자 수(오른쪽)(자료 제공: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진이 OECD Health Statistics 자료 등을 분석했을 때, 의료수가가 낮은 국가일수록 국민 1인당 연간 의사 방문횟수와 의사 1인당 연간 진료환자 수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진찰시간이 짧을수록 국민 1인당 연간 의사 방문횟수와 의사 1인당 연간 진료환자 수가 많았다.

낮은 수가에 '3분 진료' 고착…"진료실 폭력 부르는 악순환 끊어야"

연구진은 낮은 의료수가 때문에 의사들이 진료 횟수를 늘리면서 진료환자는 많고 진찰시간은 짧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2019년 기준 의사 1인당 환자가 연 평균 6,989명으로 OECD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OECD 평균(2,122명) 3배 이상이다.

따라서 적정 수가를 보장해 충분한 진찰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단기적으로 현재 시범사업 단계인 심층진찰 지원 수준을 현실적으로 끌어올리고 만성질환관리제 대상 질환도 외과계로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소아나 임산부, 고령층, 장애인처럼 진찰시간이 더 소요되는 환자 진료에는 가산 수가를 더해야 한다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진찰시간에 따라 진찰료를 차등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하자고 했다. 이를 위해 환자가 기꺼이 지불하고 의사가 만족하는 적정 수가 수준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의료정책연구소 우봉식 소장은 "진찰은 진료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의료행위다. 그러나 한국은 진찰료가 낮기 때문에 진료를 많이 해야 하는 박리다매식 '3분 진료' 문화가 고착됐고 의료체계 왜곡이 심화되고 있다"면서 "이는 결국 의사와 환자 사이 불신을 키우고 진료실 폭력이 발생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우 소장은 "의사가 진찰시간을 충분히 갖고 환자 마음까지 살피는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적정 보상이 이뤄지고 바람직한 진료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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