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치료 부당이득금 반환하라는 공문 받은 의원
복지부 고시 ‘언어치료사에 의한 전문작업’ 명시
고시 제정 후 ‘언어치료사→언어재활사’ 명칭 변경
의료행위 아니라며 소송 제기한 손보사는 ‘패소’

A의원은 지난 7월 22일 B손해보험사로부터 언어재활사가 한 언어치료가 불법이므로 부당이득금을 반환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A의원 원장은 최근 B손해보험사로부터 부당이득금을 반환하라는 공문을 받고는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언어재활사가 하는 ‘언어치료’는 무면허의료행위이므로 비급여로도 진료비를 산정해서는 안된다는 게 요지다.

B손해보험사는 A의원에서 ‘말하기지연(코드번호 R620)’ 등으로 언어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청구한 보험금을 문제로 삼았다. A의원이 ‘의료인 또는 의료보조인’이 아닌 언어재활사가 시행한 언어치료를 비급여 진료비로 산정해서 불필요한 보험금 지급이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B손해보험사가 A의원에 반환하라고 요구한 보험금은 총 1,801만원이다.

B손해보험사는 공문을 통해 “의료인 또는 의료보조인이 아닌 언어재활사 등이 환자를 상대로 언어치료 등을 한 비용은 보험수가(비급여)로 산정할 수 없다”며 “그럼에도 A의원은 환자들을 위해 언어재활사 등 비의료보조인이 시행한 언어치료비 등을 보험수가로 산정한 ‘진료비 납입 확인서, 진료비 세부산정내역’을 환자 또는 보호자에게 발부해 당사에 보험금을 청구할 때 첨부해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게 했다”고 했다.

B손해보험사는 이같은 행위가 의료법 제27조(무면허의료행위금지),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제8조(보험사기죄)에 해당된다며 “명확한 불법행위에 의한 비급여 산정으로 발생한 진료비 피해액의 부당이득 반환 책임이 A의원에 있다고 보인다. 환자들에게 지급된 진료비 담보의 보험금 1,801만원에 대한 반환을 요구한다”고 했다. 또한 A의원의 소명을 요구하면서 회신이 없으면 법적 대응하겠다고도 했다.

B보험사는 의료법과 함께 지난 1973년 폐지된 ‘의료보조원법’까지 근거로 제시했다.

복지부 고시에는 ‘언어치료사에 의한 전문작업’ 명시
고시 제정 후 ‘언어치료사→언어재활사’ 명칭 변경

B손해보험사 언어재활사가 시행하는 언어치료가 불법이라고 했지만 복지부 고시 내용은 다르다. 지난 2004년 12월 제정된 복지부 고시(제2004-89호)에 따르면 언어치료(보험코드 MZ006)는 법정비급여로 ‘언어 또는 말의 이상 진단 시 교정을 위해 언어치료사에 의해 행해지는 전문작업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사회적, 직업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치료’다. 적응증은 ▲뇌졸중, 외상성 뇌손상, 뇌성마비 등의 뇌신경계 질환 ▲구음장애, 발성장애, 말더듬, 실어증, 난청, 청각장애로 인한 언어장애 ▲언어발달지연 ▲기타 특수장애로 인한 언어장애 환자다.

복지부는 지난 2014년 ‘언어치료사’를 ‘언어재활사’라는 명칭으로 변경해 국가전문자격으로 인정했다. 언어재활사 자격시험은 의사나 간호사, 의료기사처럼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서 시행하고 관리한다. 한국언어재활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언어재활사 국가자격증이 시행된 후 현재까지 1만명이 자격증을 취득해 언어재활사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도 복지부 고시에는 ‘언어치료사’로 돼 있다. 이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비급여이기 때문에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심평원 관계자는 “신의료기술로 신청하고 비급여로 결정되면서 행위정의처럼 남아 있는 내용이 있지만 이를 새로 업데이트 하는 절차는 없다”며 “급여로 해달라는 신청이 접수되지 않는 이상 검토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고시에는 ‘언어치료사’가 해야 한다고 돼 있는데 ‘언어재활사’가 했다고 불법이라는 주장인데 코미디가 따로 없다”는 말도 나왔다. 대한의사협회와 학회 차원에서 대응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한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황당하다”며 “복지부 고시 행위정의에 분명히 언어치료사에 의해 시행된다고 명시돼 있다. 고시가 제정됐던 당시에도 언어치료사는 의료법상 의료인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시가 제정된 이후 언어치료사가 언어재활사로 이름이 바뀌었고 국가자격으로 국시원이 관리하고 있다”며 “법적으로 전혀 문제없이 시행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문제제기를 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언어치료’ 의료행위 아니라며 소송 제기한 손보사도
법원 “의학 지식 기초로 한 치료행위” 손해배상 청구 기각

손해보험사가 언어치료비를 문제 삼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7년에는 C손해보험사가 한 소아청소년과의원을 대상으로 3억9,634만의 부당이득금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C손해보험사는 소청과의원이 발달장애나 발달지연 아동을 대상으로 시행한 ‘인지, 심리, 행동치료 등의 통합 치료프로그램’이 ‘장애아동복지지원법’에 따른 발달재활서비스에 해당할 뿐 의료법상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해도 임의비급여로 법정 비급여인 것처럼 환자를 속여 부당하게 진료비를 받았다고 했다.

문제가 된 프로그램에는 언어재활사와 미술심리치료사, 학교심리사, 사회복지사가 참여하며 이들은 모두 자격증을 취득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부산지방법원은 지난 2019년 5월 C손해보험사가 청구한 손해배상을 모두 기각했다. 소송 비용도 원고인 C손해보험사가 부담하라고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프로그램을 시행 받은 아동들이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등록된 장애인임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이 사건 프로그램은 장애아동복지지지원법에 따른 발달재활서비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이 사건 프로그램은 발달장애 또는 발달지연을 가진 아동들을 상대로 언어와 의사소통, 사회성 등 다양한 영역의 발달을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이라며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한 경험과 기능으로 시행된 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복지부 고시를 근거로 “언어치료와 인지치료, 행동치료는 각 법정 비급여 진료행위로 규정돼 있다”며 임의 비급여 주장이 근거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언어치료사를 통해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사회적, 직업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비정상적인 행동을 학습이론에 따라 증상을 해소하고 건설적인 행동으로 다시 학습하게 하는 치료행위”라며 “고시에서 정한 법정 비급여 대상인 언어치료(MZ006)와 행동치료(NZ006)에 해당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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