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까지 유효기한 만료로 폐기 앞둔 백신만 ‘1181만 도즈’
政, 코로나19 재유행 가능성 대비해 백신접종 계획 수립·검토
김우주 교수 “3차·4차 접종 타이밍 놓쳐…앞으로가 더 문제”
엄중식 교수 “백신 공여, 우리가 부담하는 비용 클 수 있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1,181만 도즈가 8월까지 유효기한이 만료된다. 유효기간까지 소진되지 않는다면 폐기가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백신이 부족해서 접종을 못하는 것보단 폐기가 오히려 낫다면서도 3차접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2월 전부터 미리 접종계획을 세워서 대비했다면 폐기되는 백신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시작 후 최근까지 누적 폐기량은 291만5,520회분으로 이 중 폐기사유는 ‘유효기한 경과’가 288만5,243회분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13일 본지와 통화에서 “백신 폐기에 관한 비난이 나올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 공급이 초과됐을 땐 이를 기회비용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폐기를 아까워하고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한백신학회장이기도 한 고려대구로병원 김우주 교수는 “백신은 일부 폐기될 수 있다. 부족한 것보다는 낫다”면서도 “하지만 접종대상자를 미리 선별하고 정책을 잘 결정했더라면 폐기물량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질병관리청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의 ‘코로나19 백신 잔량 유효기한’ 자료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4월 11만3,000 도즈 ▲5월 4만4,000 도즈 ▲6월 122만 도즈 ▲7월 691만 도즈 ▲8월 352만 도즈가 유효기한 만료를 앞두고 있다.

백신 종류별로는 ▲화이자 711만6,000 도즈 ▲모더나 346만9,000 도즈 ▲노바백스 122만 도즈가 8월까지 만료된다.

수천만 도즈가 폐기 위기에 놓인 데는 잇따른 방역조치 완화와 방역패스 폐지, 백신 부작용에 대한 우려, 오미크론 변이가 상대적으로 경증이라는 인식, 높은 돌파감염률에 따른 비효과적이라는 인식 등 다양한 영향이 미쳤을 것으로 풀이된다.

방역당국은 가을과 겨울에 코로나19가 다시 유행할 가능성에 대비해 백신접종 계획을 수립해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 이상원 역학조사분석단장은 지난 5일 정례브리핑에서 “백신의 효과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지만 약화할 가능성도 있고 가을철에는 계절적인 영향으로 다시 유행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백신 접종은 항상 필요하다. 4차접종 외에도 가을·겨울철 재유행 가능성에 대비해서 접종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단장은 “백신이 전혀 듣지 않는 변이의 출현도 가능하지만 상당히 잘 순응하는 바이러스의 등장도 여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며 “변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있고 모니터링 하고 있다.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반영해서 예방접종 계획을 수립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백신 접종 건수가 줄어들고 폐기하는 백신이 많아지자 방역당국은 국제 백신 공급 프로젝트 ‘코백스 퍼실리티’(코백스)로부터 올해 추가로 들여오기로 했던 백신 1,748만회분을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올해 연말까지 들어오기로 했던 백신은 총 1억5,044만회분이다.

이에 대해 김우주 교수는 “작년 10월에 인구 70%가 접종을 완료해 일상회복이 가능해졌다고 자축했을 때 나는 ‘집단면역은 불가능하다. 축하할 때가 아니고 60세 이상 고령자의 3차접종을 서둘러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12월에 (델타 변이로) 중증환자·사망자 속출하자 그때서야 3차접종을 시작했고 이 때문에 접종 타이밍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제는 태반이 다 걸렸는데 접종하겠냐”며 “요양병원·시설 입소자·종사자를 대상으로도 4차접종 한다고 했을 때 이미 집단발생하고 중증환자·사망자 속출하는데 접종할 겨를이 있었겠나. 이것도 타이밍을 놓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가 더 문제다. 예전에는 백신을 선구매 안 해서 뚜드려 맞더니 지금은 백신이 차고 넘치는데 백신을 맞춰야 될 사람에게 접종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도 했다.

유효기간 만료 예정 백신 공여 두고 의견 분분

백신 대량 폐기를 우려하는 목소리와 함께 유효기간 만료를 앞둔 백신은 감염 취약 국가에 공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코로나 백신 폐기량이 앞으로 속출할 것으로 보여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감염병 시대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해 백신 외교 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야 한다”며 “여전히 접종률이 낮은 감염병 취약 국가와 난민들을 대상으로 백신 공여 등 협력 가능한 국제적 역할에 대한 신속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백신 공여가 필요하다며 공여 대상을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북한에 먼저 지원할 것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오미크론은 전염력이 빠른 대신 상대적으로 중증도가 낮다고 하지만 그건 우리나라처럼 백신 접종을 많이 하고 많이 걸려서 면역을 가진 사람이 어느 정도 있으니 중증도가 낮은 것”이라며 “하지만 북한처럼 코로나19에 걸린 사람도, 백신 접종자도 거의 없는 면역 수준이 제로에 가깝다면 오미크론은 굉장히 치명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 주민들은 면역력이 없는데다가 영양실조에 의료시스템도 좋지 않아서 코로나19 치명률이나 피해가 클 것”이라며 “이는 다음 정부에서 결정해야겠지만 백신 폐기 안 해도 되고, 동포도 살리고, 남북관계 화해에도 도움 될 수 있어서 북한에 공여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해볼만하다”고 제안했다.

백신 공여를 한다면 그 비용은 우리가 부담해야 할 수 있는데 금액이 클 수 있어서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길병원 엄중식 교수는 “백신을 우리가 준다고 해서 그 나라가 받아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보내줘야 하는데 이 비용이 생각보다 클 수 있다”며 “또 백신을 줬다 하더라도 그 나라에서 접종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개발 국가의 유행상황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이미 다 감염됐을 경우가 상당히 높고, 저개발 국가는 인구 구조상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고령층이 적다는 점까지 다 고려해야 한다”며 “‘우리가 백신이 남으니까 저개발 국가한테 주는 게 좋지 않겠나’라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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