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류 시간 짧은 응급실, 식사 제공 안돼
응급실 격리병상 코로나 환자, 배달로 식사 해결
“응급실은 재난 상황,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응급실에 ‘음식 배달’이라는 새로운 업무가 추가됐다. 응급실 격리병상에 입원해 있는 코로나19 환자들 때문이다.

응급실은 체류 시간이 짧은 곳이어서 원칙적으로 환자들에게 식사가 제공되지 않는다. 하지만 입원 병상을 배정 받지 못한 코로나19 환자가 응급실에 머무는 날이 길어지면서 식사가 문제가 됐다. 감염 우려 때문에 보호자의 도움을 받지도 못한다.

병원 측에 요청해 응급실 격리병실에 입원한 코로나19 환자에게 임시로 식사를 제공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마저도 힘든 상황이다. 시스템상 응급실은 식사가 금지돼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결국 응급실 의료진이 나섰다. 식사를 해야 하는 코로나19 환자에게 배달 앱을 이용하도록 안내하고 음식이 오면 의료진이 직접 격리병상에 있는 환자에게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식사가 끝난 뒤 남은 일회용품 등을 치우는 일도 의료진의 몫이다.

중환자 병상 부족 사태가 심각했던 지난해 12월에는 일주일 넘게 응급실 격리병상에 입원해 있는 환자도 있었다. 그나마 최근에는 상황이 나아져 3일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서울 지역 A대학병원 응급실 전공의는 “응급실은 장기 체류하더라도 식사 제공이 원칙적으로 안된다. 식사를 할 수 있는 코로나19 환자가 응급실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내부적으로 프로토콜을 마련했다”며 “환자에게 배달 앱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보호자에게 연락해서 응급실로 음식을 주문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그리고 음식이 오면 의료진이 환자에게 가져다 준다”고 말했다.

경기 지역 B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 간호사들은 배달 음식이 오면 환자에게 가져다주고 다 먹고 나면 치우는 일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진료 인력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보상도 없다”며 “응급실 의료진은 코로나19 환자를 많이 보지만 보상이나 지원 대상에서는 제외돼 있다. 최근 들어 응급실 의료진의 불만족도가 커지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이 정도는 약과라고 했다. 응급실은 이미 아비규환으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격리 해제된 후 상태가 악화돼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도 많다고 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한림대성심병원)은 “응급실에는 요즘 하루 100통이 넘는 전화가 온다. 전화를 받을 수조차 없다”며 “응급실을 통해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환자 10명 중 9명은 격리 해제된 경우다. 재택치료라고 하지만 격리 기간 제대로 관리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격리 기간에는 119를 불러도 보건소가 승인해주지 않으면 출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현재 응급실은 재난 상황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상급종합병원 과밀화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어떤 대책도 효과가 없다”며 “상급종합병원 병상이 비어 있어서 응급실에 온 중환자를 살릴 수 있다. 입원할 병상이 없는 상황에서는 응급실 환자 적체 현상은 나아지지 않고 살릴 수 있는 중환자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그러나 현 정부는 물론 새 정부도 응급의료체계 개선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성의 없는 대책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지금 힘들어도 앞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면 버티겠지만 그런 기대도 사라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