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향대 부천병원 영상의학과 이은혜 교수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7월 23일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당정은 2022년부터 10년간 의과대학 정원을 늘려 총 4,000명의 의사를 추가로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보건복지부는 2024년 3월 국립공공의대 설립을 목표로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49명)을 활용하기 위해서 입법을 추진 중인데 전라남도는 이미 국립공공의대 유치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당정안은 ‘의학교육’과 ‘의료체계’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고 있으며, ‘공공의료’의 본질을 왜곡하고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희망고문하는 포퓰리즘적 정책이다.

결론부터 말해서 현재의 의료전달(환자의뢰)체계와 수가체계를 정상화하지 않은 채 당정안을 강행한다면 ▲국민 의료비 증가 ▲의사 및 의료기관의 수도권 집중 ▲ 비인기 진료과 기피 등의 문제가 더 악화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의학교육 및 의사의 수준은 하락하고, 국민들의 혈세만 낭비될 것이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이은혜 교수
순천향대 부천병원 이은혜 교수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의대 정원 10% 감축, 의·치대 신설 제한, 의대 설립기준 강화를 추진했고, 2003년부터 2007년에 걸쳐 의대 입학정원을 3,300여명에서 3,058명으로 감축했다. 그 당시 복지부는 OECD 자료를 근거로 인구 10만명당 의대 입학정원이 일본 6.1명, 캐나다 6.2명, 미국 6.5명인데 한국은 6.9명(한의사 포함하면 8.5명)이므로 의대정원을 감축하지 않으면 의사 과잉배출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부담(건강보험료)이 증가하고, 의사유발수요(physician-induced demand)로 인해 비급여 및 전체 의료비가 증가하며, 의학교육 부실화로 인해 과거 사회주의 체제의 동유럽 국가들처럼 의료수준이 저하된다고 주장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집권세력이 너무나 급작스럽게, 무리하게 강행하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의료인력 공급상황과 보건의료정책의 목표달성 정도

2018년 현재 우리나라의 의사면허 등록자 수는 12만3,173명이다. 그 중 현업 종사자는 10만2,471명이다. OECD 평균보다 의사 수가 적다(표 참조). 그런데 의대 졸업생 수(7.56 vs. 13.10)와 인구 천명당 병원의사 수(1.20 vs. 2.09)는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인 반면, 활동의사 수는 상대적으로 차이가 적다(2.34 vs. 3.42). 이것은 의대 졸업생이 현업에 종사하는 비율(83.2%)이 높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반면에, 젊은 의사의 비율(52.9% vs. 43.0%)과 인구대비 의사증가율(2.51 vs. 1.42)은 OECD 평균보다 높다.

한국과 OECD 국가의 의사 공급 비교(2017)
한국과 OECD 국가의 의사 공급 비교(2017)

보건의료정책의 최종 목표는 건강관련 삶의 질 향상이고, 중간 목표는 보건의료 접근도 향상, 의료의 질 향상, 의료비 절감이다. 그런데 의사 수가 적다고 해서 우리나라 국민이 건강하지 않거나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며, 의료의 질도 낮지 않다.

국가별 건강수준은 기대여명(82.7 vs. 80.7), 표준화사망률(654.2 vs. 796.8), 영아사망률(2.8 vs. 3.7) 등으로 비교하는데 모두 OECD 평균보다 높다. 보건의료의 접근도는 예방접종률(DPT 97.0 vs. 94.4; 홍역 97.0 vs. 94.5; B형 간염 98.0 vs. 91.1; 인플루엔자 82.7 vs. 43.7), 건강검진율(유방암 68.8 vs. 58.3; 자궁경부암 57.1 vs. 59.5), 의료이용도(연간 일인당 외래 방문건수 16.6 vs. 7.1; 일인당 입원일수 3.14 vs. 1.35; 평균재원일수 18.5 vs. 8.4)) 등으로 비교하는데 거의 대부분 OECD 평균보다 높다. 의료의 질적인 면에서도 급성 뇌졸증 사망률(출혈성 16.9 vs. 23.8; 허혈성 3.2 vs. 8.6) 등 급성질환과 주요 암종의 5년 생존율(유방암 86.6 vs. 84.6; 자궁경부암 77.3 vs. 65.6; 대장암 71.8 vs. 62.1; 위암 68.9 vs. 29.7; 폐암 25.1 vs. 17.2) 등 중증질환의 치료성적은 OECD 평균보다 높다. 반면에 일차의료, 정신질환, 환자안전은 OECD 평균보다 낮다.

그렇지만 일인당 진료비(US$ 3,192 vs. 3,992), GDP 중 경상의료비 분율(8.1 vs. 8.8) 등 의료비 지출은 OECD 평균보다 적다. 즉, 우리나라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보건의료 목표의 달성도가 높고, 가성비는 전세계 최고이다.

그런데 환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의료기관에서 진료받기 위해 대기하는 이유를 의사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전문의가 진료하는 일차의료기관이 지척에 널려 있다는 사실은 체감하지 못한다. 이것은 의료이용자가 원하는 수요와 의학적 필요도의 차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충족의료 비율은 2007 22.4%에서 2018 8.7% 감소했다.

그러므로 단순한 숫자비교로 의사를 공급하기 보다는, 국내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미래의 적정 의사 수를 추계해야 한다. 여기에는 인구구조 상병구조의 변화가 반드시 고려돼야 하고, 국민의 의료비 부담도 고려돼야 한다. 왜냐면의사 증가=의료비 증가인데 인구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사 수의 증감이 실현되려면 최소 10년이 걸리므로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2000 제정된보건의료기본법 의해 보건복지부 장관이 5년마다보건의료발전계획 수립하고 시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20 동안 보건의료발전계획을 한번도 수립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의대정원 확대정책을 강행하기 전에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고, 계획에 입각하여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지금처럼 의료계를 완전히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코로나19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의료진 덕분에 외치면서 동시에 당정안을 강행하는 것은 전투 중인 군대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무장해제를 유도하는 행위이다.

"공급확대" vs "구조개선"…최선의 공공의료 확충 방법은?

공공의료란 국공립병원 같은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의료가 아니라, 공적 재정(건강보험료)으로 제공하는 의료이므로 ‘공공의료=건강보험의료’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의료 확충(보장성 강화)을 이유로 의대 정원 확대 및 국립공공의대 신설을 주장하고 있지만, 공급위주의 정책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이것은 이미 실패한 간호대 정원 확대 정책에서 알 수 있다.

간호사 수는 2000년대 중반까지 약 20만명이었는데 간호사 부족을 이유로 간호대 정원을 확대하여 약 10년만에 간호사 수를 배로 늘렸다. 2018년 기준으로 간호사면허 등록자 수는 39만4,627명이지만 그 중 현업 종사자는 19만5,314명(49.5%)에 지나지 않는다. 즉, 간호대 졸업생 수는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지만(99.85 vs. 44.96), 활동간호사 수는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표2 참조). 이것은 간호수가가 너무 낮기 때문이다. 교대근무(특히 야간근무)와 결혼·임신·출산·양육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근무강도에 비해 급여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의료현장을 떠나는 것이다. 한편, 인구대비 병원간호사 수는 그나마 OECD 평균에 근접하지만(3.1 vs. 3.2), 병상대비 병원간호사 수는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이다(0.36 vs. 1.26). 이렇게 열악한 상황인데도 간호사들은 코로나19 전쟁의 최전선을 사수했다. 안쓰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한국과 OECD 국가의 간호사 공급 비교(2017)
한국과 OECD 국가의 간호사 공급 비교(2017)

병원의사와 병원간호사의 부족은 병상과잉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천명당 총 병상수(12.27 vs. 4.73), 급성기 병상수(7.14 vs. 3.59), 노인대비 장기 병상수(36.71 vs. 3.63) 등이 모두 OECD 평균을 훨씬 웃돌고 있으며, 일본과 함께 전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것은 의료비 증가를 이유로 지난 20년 간 의대정원을 규제했지만(허가제), 병원이나 병상수는 규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신고제). 병상과잉은 불합리한 수가구조와 붕괴된 의료전달(환자의뢰)체계 때문이다. 1977년 건강보험제도를 시작할 당시 국민소득이 1천달러에 불과했으므로 국민과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헤서 ‘저부담-저수가-저급여’ 방식을 택했다.

그 후 1989년 전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의료이용이 증가했는데 2000년 건강보험 재정통합으로 인해 의료전달(환자의뢰)체계가 붕괴되었다. 의료이용을 통제하지 않는 상황에서 저수가를 극복하는 방법은 박리다매와 비급여 진료였으므로 비급여 진료가 유리한 대학/대형병원을 중심으로 병상수가 계속 증가하면서 의원과 병원이 경쟁하는 구조로 변했다.

간호사 공급정책 실패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하면

집권세력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이며

공공의료 확충하겠다는 진정성이 없는 것

또한, 병원과 병상수의 증가로 인해 의대 졸업생 수보다 전공의 선발정원이 훨씬 많아졌기 때문에 수가가 낮아서 미래가 불투명한 비인기과에 지원할 이유가 없어졌다. 즉, 현재의 불균형 현상은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저부담-저수가(급여수가, 간호수가)-저급여’정책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만약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공공의료 확충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먼저 의료전달(환자의뢰)체계를 회복하고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제한하여 병상수 감축을 유도하는 구조개선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의사 공급확대는 그 다음에 사용할 카드이다. 불균형의 구조적 원인을 방치한 채 공급만 확대하는 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간호사 공급정책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한다면 집권세력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이며, 공공의료를 확충하겠다는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공공의료 공급을 위해서 별도의 공공의대가 필요한가?

보건복지부는 2006년부터 의대 정원이 3,058명으로 동결되었기 때문에 지역 간 의사 수 불균형과 특수분야 의사 수 부족현상이 발생했다면서, 의료인력이 부족한 취약지(지역의사 연간 300명), 특수분야(역학조사관, 감염내과, 중증외상 등 연간 50명), 의과학자 양성(제약•바이오 등 연간 50명)에 약 4,000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역의사는 면허취득 후 지역 의무복무 10년(전공의 수련기간 포함, 군복무 제외)을 조건으로 무상교육을 받지만, 의무 불 이행시 장학금 환수 및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한다.

이것은 비현실적이고, 개인의 특성과 선택의 자유를 말살하는 정책이다. 현실에서는 인턴과정을 마칠 때까지도 본인의 적성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은 무사히 전공의 수련을 마치지만 일부는 적성에 맞지 않아 중도에 포기한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지역의사, 특수분야, 의과학 분야로 나눈다면 누가, 누구를, 어디에 배정할까?

조국 전 장관과 추미애 장관의 사례를 보면 ‘그들’은 지인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통해서 특수분야나 의과학분야가 아닌 지역의사에 자식을 배정할 것이며, 그 중에서도 개업이나 봉직에 유리한 진료과에 배정할 것이고, 온갖 수단과 편법을 동원하여 자식을 수도권으로 빼돌려서 의무복무 기간을 채울 것이다. 다른 학생들은 지역에서 의무복무 기간만 채운 후 수도권과 대형병원으로 탈출할 것이다.

또한, 공공의대 설립안은 기존 의대(국립대 포함)를 차별하는 정책이다. 기존 의대에서 공공의료(건강보험의료)를 제공할 의사를 교육하고 있으므로 기능적으로 공공의대의 역할을 이미 수행하고 있는데 공공의대를 별도로 만든다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전혀 없다.

집권세력의 논리에 의하면 49명 정원의 공공의대가 5천만 국민의 공공의료를 커버해야 하는데 이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공공의대 졸업생이 공공의료(건강보험)를 담당한다면 기존 의대 졸업생은 민간보험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데 단일보험 하에서 공공의료와 민간의료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우리나라에는 공공의료만 존재하며 건강보험이 바로 공공의료인 것이다.

49명의 공공의대가 5천만명의 공공의료 커버 못해

단일보험 하에서 공공의료와 민간의료 분리 불가능

공공의대, 의학전문대학원처럼 실패가 예약된 정책

지역의사나 일차의료의사는 의대교육에서 일차의료 과정을 강화하고, 일본처럼 퇴직의사를 활용하면 된다. 역학조사관은 유명무실한 공중보건의사 제도를 개선하면 된다. 감염내과나 중증외상만 별도로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인기 진료과 기피현상은 수가를 정상화하면 된다. 수도권 집중현상은 의료전달(환자의뢰)체계를 개선하면 되는데 문재인 케어는 의료전달체계를 완전히 망치는 정책이다. 제약•바이오 분야에 의사를 투입해도 현 정부의 반기업•반시장 정책 하에서 주 52시간 근무규정을 지키려면 아무 것도 만들어 낼 수 없다.

이처럼 논리적 근거도 없이 급조된 공공의대가 제공하는 의학교육의 수준이 어떠할지는 폐교된 서남대 사태에서 예측이 가능하다. 한편,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의료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다방면의 의학자를 양성한다는 취지로 기존 의대의 의전원 전환을 강요했다. 예산지원에 낚여서 41개 의대 중 27개가 의전원으로 전환했지만 원래 목적과 달리 의학자는 양성되지 않았고, 기초의학 부실은 오히려 심화됐다. 뿐만 아니라, 의학교육과 전공의 선발 및 수련과정에서도 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거의 모든 의전원이 의대로 회귀했다. 그러므로 공공의대는 의학전문대학원처럼 실패가 예약된 정책이다.

결론적으로, 공공의료라는 파랑새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건강보험의료가 바로 공공의료이다. 그러므로 공공의료의 개념을 호도하는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을 폐기하고, 공공의료를 건강보험의료로 확실하게 재정의해야 한다.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은 공공의료 확충이 아니라, 오히려 왜곡하는 정책이다. 공공의료 확충과 의료비 증가억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의료전달(환자의뢰)체계를 개선하고 급여수가와 간호수가를 현실화함과 동시에, 불필요한 의료이용과 과잉병상을 감소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장기적인 계획 하에 의료계와 같이 의대정원을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보건복지부는 복지부로 변질된 상태이고, 이를 수행할 능력과 의지가 없으며, 의료계로부터 신뢰를 상실했다. 그러므로 먼저 보건부를 독립시킨 후,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하고, 그 후에 의사인력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이다. 만약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을 강행한다면 공공의료 확충에 대한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국민을 볼모로 잡은 채 그들의 잇속을 챙기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마지막으로, 집권세력과 고위공직자들, 국회의원들, 지자체 단체장들과 시도의원들은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비난만 하지 말고, 지역 및 일차의료기관을 우선적으로 이용하는 솔선수범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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