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청년의사 신문 김은영]

“평소 수술이 많은 편이라 이렇게 모이기가 힘든데, 딱 맞춰 오셨네요.”

수술도 많고 워낙 바쁜 탓에 다 같이 얼굴 맞대고 모이기가 쉽지 않은데 날짜를 잘 잡았다는 4년차 의국장 반명진 선생. 의국대신 외래병동 강의실로 안내하는 길에 반 선생은 “날짜도 잘 잡았지만, 사실 이비인후과가 ‘단결력’이 뛰어나다”며 은근슬쩍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12명의 의국원들을 보고나서야 반 선생 어깨에 힘이 들어간 이유를 알았다. 이제 막 의국입성에 성공한 1년차 김진원, 김환, 나민석, 한지혁 선생, 1년차의 악몽에서 벗어나 조금은 여유를 찾은 듯 보이는 2년차 김다희, 김정민, 심남석 선생, 의국의 ‘살아있는’ 만담꾼인 3년차 이전미, 배성훈, 서지영, 하종균 선생, 듬직한 매력의 4년차 안상현, 반명진 선생과 함께 의국생활을 들어 봤다.

가족 같은 분위기? ‘밀착형 멘토링’ 덕분

인터뷰 내내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는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오고가는 대화도 죽이 척척 맞고. 허물없는 선후배 사이의 ‘좋은 예’를 보여주듯 세브란스 이비인후과 의국 분위기는 돈독했다. 비결은 ‘밀착형 멘토링’에 있었다.

“이비인후과는 기관절개술, 편도절제술, 환기관삽입술 등 수술이 많은 편인데, 술기를 배울 때 굉장히 재밌게 배워요. 선배들이 수술할 땐 후배들은 옆에서 주의 깊게 관찰하고, 후배들이 직접 칼을 들었을 땐 선배들은 책임지고 관리 감독 해주는 과정에서 실력이 늘거든요.”

수술이 많은 탓에 피도 많이 본다. 특히 응급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이나 기관절개술을 시행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도 발생한다. 이 때문에 상하 관계가 분명해야 하고 엄격한 규율도 필요하지만 그 보다 선후배 사이 ‘끈끈한 가족애’가 먼저라고 강조한다.

3년차 이전미 선생은 2년차가 됐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고생 끝에 2년차로 진급한 이유도 있지만, 4년차 선배와 1박 2일 진급 축하 여행은 아직까지 애틋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1년차에서 2년차로 올려주셨던 4년차 선배들이 3년차 선배들을 당직으로 세우고는 저희를 데리고 1박2일 여행을 함께 갔었는데, 그 때 기억은 여전히 뭉클해요. 이비인후과 들어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세상에 공짜는 없어

가족 같다지만 젊은 청춘들이 모여 있는 의국 아닌가. 회식 문화가 궁금해졌다. 회식 이야기가 나오자 ‘보은턱’ 이야기를 꺼낸다.

“이비인후과를 대표하는 전통이 있죠.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멘토링에 대한 보답의 회식, 바로 ‘보은턱’이 있답니다.”

보은턱은 매년 아랫 년차가 수술을 하게 되면 수술을 도와준 윗 년차 선배들에게 ‘보은(報恩)’의 의미로 대접하는 이비인후과의 전통이다.

“평소에는 선배들이 내지만 보은턱을 낼 때는 아랫 년차들이 모두 부담해요. 먹고 죽자는 분위기는 아니고 호텔 뷔페에서 ‘우아한 분위기’를 한껏 내고 오기도 하죠.”

하지만 아주 가끔은 광란의 밤을 보내기도 한다. 가장 잊을 수 없었던 회식 에피소드 얘길 꺼내자 듬직해 보이던 4년차 안상현 선생의 장난기가 여과 없이 드러난다.

“한 번은 000 선생이 남자친구와의 이별의 아픔을 노래로 아름답게 승화한 적이 있었죠. 마이크를 안 놓던데요. 어후~ 그 때는…”

안 선생의 폭로에 이전미 선생이 깔끔하게 마무리 했다.

“이별이 있을 때도 보듬어 주고 함께하는 가족 같은 의국이라고요.”

고립된 생활이 많은 1년차 때는 이별이 많다고. 누구보다 그 아픔을 이해하는 선배들과 동기들이 있어 서 선생은 그 뒤로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단다.

잘나가는 이비인후과, 흑역사(?)는 잊어줘

사실 세브란스 이비인후과의 의국 분위기가 이토록 좋아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반 선생의 증언에 의하면 과거 이비인후과는 악명 높기로 소문났었다고. 응급 상황이 많아 수술도 많고 긴박하게 상황이 돌아가다 보니 일은 힘들고 분위기도 험악해 지기 일쑤였다.

“대단했었죠. 의국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았어요. 상명 하복식의 고압적인 분위기도 한 몫을 했고, 폭력이 난무하기도 했죠. 최근에는 그런 흑역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를 정도로 좋아졌어요. 정말 많은 노력도 필요했고요.”

반 선생은 의국 분위기가 180˚ 바뀔 수 있었던 중심에 ‘배려와 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지적하기 급급했다면 지금은 서로 문제점을 같이 풀어나가려고 노력해요. 서로 배려하고 대화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해결되니까 갈등이 줄어들었죠.”

실제 몇 년 전만해도 이비인후과에 전공의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반면 올해는 17명이나 지원한 것은 그만큼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반증이다.

분위기가 좋다고 해서 일할 때 술렁술렁 넘어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혼이 날 땐 따끔하게 혼이 나요. 일 할 때 태도가 마음에 안 든 다고 혼내는 일은 없지만, 후배들이 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꼼꼼하게 보거든요. 환자 안전과 관련되기 때문에 혼자 해결 못할 일들은 선배들에게 빨리 알리는 게 중요해요. 이런 과정을 통해 습득하는 거죠.”

의국원들에게 이비인후과의 매력에 대해 묻자, 이런 다이내믹함이라고 답한다. 또 긴박하게 돌아가는 의국 생활에서 가족같이 따뜻한 의국원들은 서로 기대 쉴 수 있는 든든한 쉼터라고.

아픔과 성숙은 동시에 오지 않는다. 세브란스 이비인후과는 ‘배려와 대화’를 통해 성숙의 단계로 한 층 올라선 듯 보인다. 이비인후과 의사에 앞서 ‘의사’가 되고 싶다는 이들에게 지금의 의국생활이 든든한 밑거름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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