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욱의 진료실의 고고학자, 이발소에서 만난 외과의 역사 4


[청년의사 신문 박지욱]

2005년에 있었던 ‘줄기세포 파동’ 덕분에 이제 우리 국민도 유명한 과학 저널journal 이를테면, ‘사이언스Science’와 ‘네이쳐Nature’등의 이름에 아주 친숙해졌다. 의학계에서도 이에 버금가는 세계적 저널 세 개가 있다. 미국에서 나오는 ‘뉴 잉글랜드 의학 저널New England Joural of Medicine(NEJM)’, ‘미국 의사협회 저널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JAMA)’ 그리고 영국에서 나오는 ‘란셋 The Lancet’이다. 학문과 연구에 뜻이 있는 의사라면 이 셋 중 하나에 논문이 실리는 것을 일생일대의 영광으로 여긴다. 여성잡지에 실리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 대표적인 의학잡지 중 하나인 란셋지

NEJM 은 영국이 아니라 미국 동부 보스턴 매사추세츠 의학협회 Massachusetts Medical Society에서 발행한다. JAMA 는 미국 의사협회에서 출판하기 때문에 그런 긴 이름이 붙었다. NEJM에서 뉴잉글랜드는 미 동북부 메인주, 매사추세츠주, 뉴햄프셔주, 코네티컷주, 버몬트주, 로드 아일랜드를 가리키는 것으로 영국에서 건너온 필그림 파더들이 초기에 정착하면서 해안선이 영국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그렇다면 저널 란셋의 이름은 어디서 온 것일까. 방혈에서 사용하던 뾰족 침, 란셋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영국 의사들이 존중했던 방혈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1823년에 이 저널을 창간한 웨이클리Thomas Wakley의 설명을 통해 연유를 들어보자.

“란셋은 빛을 향해 열어주는 아치형의 창문이 될 수도, 불순물을 솎아내는 날카로운 수술기구도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우리의 잡지가 그 두 가지 모두의 의미로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 뾰족한 창(窓) 끝이 창(槍)끝을 닯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란셋>이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들은 란셋을 모두 포기하게 됐다. 1830년 무렵 프랑스 의사 루이Pierre-Charles-Alexandre Louis가 의학에 통계학을 도입했고 곧이어 영국에서 발진티푸스가 대유행을 하게 된다. 의사들은 통계학을 통해 방혈 시술을 받은 환자들이 안 받은 환자들보다 경과가 나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불필요하게 피를 빼낸 환자들이 기운이 빠져 병을 견디기 힘들었던 까닭이다. 이후 의료계에서는 방혈이 퇴출된다.

효험도 없는 방혈이 무려 2,500년 동안 의학계에서 중요한 치료 기술로 손꼽힌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아무리 날뛰는 환자라고 해도 일단 피를 뽑고 나면 잠잠해졌고, 또 환자 자신이 뭔가 ‘어찔함’ 을 느끼면 병이 나은 듯한 기분이 들어서가 아닐까 추정해본다. 결과적으로 의사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질병을 통제한다는 느낌과 환자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일 것이다. 의료 행위라는 것이 때로는 의사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시도되기도 한다는 좋은 본보기가 된 셈이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Art [is] long,

vitality [is] brief,

occasion precipitous,

experiment perilous,

judgment difficult.

서양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격언편aphorism’에 남긴 말이다. 후배, 즉 의학도들에게 남긴 말이니 art 는 예술이 아니라 의술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학 기술 technicque of medicine이 아니라 의학의 예술 art of medicine 이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가 아니라 이런 뜻이 아닐까.

삶은 짧고

의술은 길고

기회는 잠깐이고

경험은 위험하고

판단은 어렵다.

무슨 뜻일까? 삶은 짧고, 익혀야할 의술은 많고, 익힐 기회는 부족하고, (부족한) 경험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한데, 그나마 경험도 없는 일을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마 의술을 터득하는 일이 힘들고, 확실한 것은 거의 없으므로 늘 배우고 익히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오래된 선배님의 말씀이 아닌가 한다. 그러고 보니 동양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이노학난성)

一寸光陰不可經 (일촌광음불가경)

- 권학문주자훈(勸學文朱子訓)

묘하게도 이 경구를 처음 본 곳은 이발소이다. 밀레의 만종을 본 곳도, 푸시킨의 위로를 받은 곳도, 히포크라테스 선생님의 격언을 만난 곳도 그렇다. 그러고 보니 외과 의사들이 이발사와의 오랜 동거를 끝내고 가출할 때 말씀의 유산은 그냥 빠뜨리고 나왔나보다. 그래서 이발소에 가면 그들이 남겨놓은 글귀를 만나나 보다. 이제라도 의사라면 ‘예술은 어쩌구 인생은 어쩌구’ 하는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나 저나 내가 운영하는 병원이라도 그 이발소 그림을 찾아다가 걸어둬야겠다. 언제 한번 날 잡아서 오일장에라도 한 번 나가봐야할 것 같다.


▲ 이발소에서 쓰이는 면도용 도구들

현대식 장비로 무장한 종합병원 외래와 검사실에서 흔히 보는 하찮은(?) 란셋, 수술받은 환자의 손에 붙어있는 혐오스러운(?)거머리, 그리고 네거리 한 켠에서 천천히 돌아가는 이발소 삼색등, 의사와 비슷한 가운을 입는 이발사, 수술 칼을 닮은 면도칼. 결국 이 모두가 외과 의사들의 잊혀진, 아니 어쩌면 잊고픈 역사를 들려주는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가 될 것 같다.

'이발소에서 만난 외과의 역사' 첫 연재글에서 냈던 퀴즈 두 개를 기억하시는지.

①"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말을 남긴 인물은 누구일까? 정답은 ㄱ)푸슈킨

②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란 말을 남긴 인물은 누구일까? 답은 ㄱ)히포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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