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자 경영하던 중소병원도 올해 들어 적자로 돌아서…“환자는 줄고 인건비는 올라”

수도권에 위치한 A종합병원은 소위 ‘잘나가는 병원’이다. 500병상 규모인 A종합병원은 비슷한 규모의 다른 병원들이 경영난에 휘청거릴 때도 흑자를 이어 왔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15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적자폭도 20억원대로 예상된다. 전체 수입은 오히려 전년도 대비 7~8% 가량 증가한 것으로 추산되기에 충격은 더 컸다.

수도권 내 또 다른 종합병원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꾸준히 성장해 온 B종합병원은 올해도 작년보다 8% 가량 수입이 증가했지만 50억원대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개원 이래 초유의 사태라는 게 B종합병원 측 설명이다.

어렵다는 중소병원의 하소연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잘나가는 중소병원들마저 흔들릴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된 원인을 의료 인력난에 의한 인건비 상승으로 꼽았다. 환자뿐만 아니라 의료 인력까지 대형병원으로 쏠리면서 중소병원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42개 상급종합병원 진료비가 312개 종합병원보다 많아

대형병원 환자쏠림 현상은 건강보험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19년 상반기 건강보험 주요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상급종합병원 42개소에 지급된 건강보험 진료비(환자 본인부담금 포함)는 7조2,178억원으로, 전년 동기(5조6,206억원) 대비 28.4%나 증가했다.

특히 상급종합병원 42개소에 지급된 진료비는 전체 종합병원의 진료비보다 많았다.

올해 상반기 종합병원 312개소가 가져간 진료비는 6조9,772억원으로 상급종합병원보다 2,406억원 적었다. 진료비 증가율도 17.1%로 상급종합병원보다 낮았다(관련 기사: 올해 상반기에만 급여비 2조원 가량 가져간 빅5병원).

간호사 없어 수술실 가동 중단하는 중소병원

환자뿐만 아니다.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 인력도 대형병원으로 쏠리면서 중소병원은 인력 채용을 위해 인건비를 올릴 수밖에 없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을 확대 운영하는 상급종합병원이 늘고, 이대서울병원, 은평성모병원 등 대학병원이 규모를 키우면서 간호 인력을 흡수했다. 그 파장은 중소병원 구인난으로 번졌다.

A종합병원은 간호사 인건비가 최근 3년 동안 30% 이상 올랐으며 B종합병원도 평균 11% 인상됐다고 한다. 500병상 규모인 C종합병원은 수술실에서 근무할 간호사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수술실 9개 중 4개의 문을 닫았다.

C종합병원 원장은 “숙련된 수술실 간호사들이 대학병원으로 빠져나간 후 새로 간호사를 채용하려 했지만 오겠다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수술실 중 일부만 가동하기로 했다. 지금은 신규 간호사 채용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중소병원장은 “주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인상이 미친 영향은 크지 않다. 그보다는 대형병원들이 의료인력을 싹쓸이 하면서 인건비가 급증한 게 경영 악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간호사는 물론 의사도 구하기 힘든 중소병원

중소병원은 간호사뿐 아니라 의사를 채용하는데도 애를 먹고 있다.

전공의법 시행으로 전공의 근무시간이 주 80시간으로 제한되면서 상급종합병원들이 입원전담전문의 채용을 확대한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게 중소병원 측의 입장이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에도 입원전담전문의 채용 여부가 포함될 전망이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25일 입원의학 전담 교수를 11명에서 51명으로 증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입원의학 전담 교수가 진료하는 과도 5개에서 12개로 확대한다(관련 기사: 서울대병원의 파격…'12개 진료과 51명'으로 호스피탈리스트 확대).

상황이 이렇다보니 신경외과 전문의 1명을 고용하는데 세전 기준 연봉 4억원이 들었다는 중소병원도 있었다.

전공의 월급도 대형병원보다 중소병원에서 더 많이 올랐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공개한 ‘전국 전공의 병원평가’ 결과에 따르면 전공의 정원 100명 이상 200명 미만인 중소형 수련병원 전공의 월급은 지난 2016년 312만원에서 2019년 379만원으로 21.5%나 인상됐다.

반면, 전공의 정원 500명 이상인 대형 수련병원은 2016년 355만원에서 2019년 369만원으로 3.9% 인상되는데 그쳤다(관련 기사: 중소 수련병원 전공의 월급, 대형 수련병원보다 많아) .

“경쟁적으로 임금 올리는 병원들…악순환이다”

대한중소병원협회 정영호 회장(한림병원장)은 “대형병원 환자 쏠림으로 중소병원을 찾는 환자가 감소한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건비가 많이 올랐다”며 “예전에는 간호사만 부족했는데 지금은 의사는 물론 약사도 구하기 힘들다. 구인 공고를 내도 문의조차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의료 인력을 구하기 힘들다보니 경쟁적으로 임금을 올리고 있다. 임금을 높게 주고 한명을 고용하면 기존 인력의 임금도 올려줘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며 “의사를 구하지 못해 진료과가 문을 닫거나 질이 떨어지면 환자는 더 줄게 된다. 지금 중소병원은 이런 악순환에 빠졌다”고 했다.

정 회장은 “직접 비용인 인건비가 들썩이다보니 답이 없는 상황이다. 올해 1분기에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2분기부터 경영 상태가 급속히 나빠지기 시작한 중소병원들이 많다”며 “의료 인력 해결을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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