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 김도형·최진호 매니저, 메이커 스페이스와 스마트수술실에서 출발

의료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분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병원 안으로 들어와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서울아산병원이 지난 2013년 설립한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는 서울대 공학박사 출신인 김재학 센터장 외에도 산업디자이너와 UX(User Experience) 전문가인 공학도가 함께 일하고 있다. 구성원 8명 중 나머지 5명은 간호사와 행정 업무를 보던 직원으로, 이들이 호흡을 맞춰 ‘혁신’을 만들어 내고 있다.

병원 밖에서 일하다 안으로 들어와 새로운 시각으로 의료현장에 혁신을 심는 사람은 김도형 디자인 매니저와 최진호 UX 디자인 매니저다. 이들은 청년의사와 명지병원 주최로 오는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HiPex 2019 컨퍼런스(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2019, 하이펙스)’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한다.

서울아산병원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 김도형 디자인매니저(왼쪽)과 최진호 UX 디자인매니저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그들이 꿈꾸는 병원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했다.

산업디자이너가 보여주는 병원의 미래

김도형 디자인 매니저는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Central Saint Martins)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런던 MSP(Michael Sodeau Partnership UK) 디자인 컨설팅 회사 등 산업디자인 분야 전반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다.

김 매니저는 서울아산병원이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를 설립한 이듬해인 2014년부터 구성원으로 합류했다. “디자이너의 시각에서 인간 중심, 환자 경험 등을 고민해 혁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도전 의식이 산업디자이너인 그를 병원으로 이끌었다. 병원들이 서비스 디자인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한몫했다.

그가 서울아산병원에서 처음 시작한 ‘작업’은 수술 전 불안감 감소 프로젝트다. 수술이 진행되는 모든 과정에 대한 정보를 환자에게 충분히 제공해 불안감을 최소화하는 프로젝트로 지난 2015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을 찾는 외국인 환자들을 위한 ‘헬로우 프로젝트’도 그가 맡아 진행했다. 외국인 환자들이 낯선 땅에서 편안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환자 경험을 다시 디자인했다. 대표적인 게 ‘손으로 집어서 말해요’다. 영어권이 아닌 나라에서 온 환자들과 통역사 없이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만든 책자다. 외국인 환자가 손으로 집어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자주 쓰는 말들을 적어 놓았다.

“입원 생활에서 자주 하게 되는 말들을 7개국어로 정리해 놓은 책자다. ‘물을 주세요’ 등 간단한 말들을 알아듣기 위해 통역을 기다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손으로 집어서 아날로그식으로 번역(통역)이 가능한 책자를 디자인해서 배포했다.”

지금은 서울아산병원 구성원들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에서 그가 주도하고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인 ‘아이디어 팩토리’가 그것이다.

서울아산병원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내부 인트라넷에 있는 제안 뱅크를 통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제안된 아이디어들 중 실현 가능성이 높은 내용은 제안자를 직접 만나 구체화한다. 그리고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 안에 마련돼 있는 ‘작업실’에서 프로토타입을 만든다. 프로토타입은 상품화에 앞서 성능을 검증·개선하기 위해 핵심 기능만 넣어 제작한 기본 모델이다. 이 과정에서 산업디자이너인 그의 능력이 빛을 발한다.

R&D사업화지원실과 연계해 특허나 상품 등록도 한다. 현재 7개의 아이디어가 특허등록까지 마쳤으며 9개는 제품으로 생산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병원에 온 UX 전문가, 혁신에 안전성을 더하다

김 매니저 만큼 최진호 UX 디자인 매니저도 병원 종사자로서는 ‘낯선 이력’을 갖고 있다. 최 매니저는 11년간 삼성전자에 근무했다. 삼성전자 모바일사업부에서 휴대폰, 웨어러블, 카메라 등 다양한 기기의 UX를 기획하고 디자인했다.

최 매니저는 지난 2017년 4월 서울아산병원으로 적을 옮겼다. 얼핏 더 작은 시장으로 온 것처럼 보이지만 최 매니저는 오히려 영역이 확장됐다고 했다.

“기존에는 디바이스 자체 사용경험만 디자인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사용자경험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이 많아 오히려 IT 디바이스에서 확장됐다. 환경과 IT 디바이스, 정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UX 디자인의 결과물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차이는 있었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기업문화와 달리 병원은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안전성도 중요했다. 그는 “병원은 환자의 생명과 연관돼 있어서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안된다. 유지보수와 관리에 최적화돼 있어야 하는 조직”이라며 “혁신이나 개발은 좌충우돌하는 과정에서 나오지만 병원은 오류 없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야 한다. 병원에 맞는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중간 정도의 선을 찾아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아산병원 맞춤형 스마트수술실을 개발하는 과정이 그랬다. 안전하고 정확한 수술이 가능한 수술실을 원한다는 정형외과의 의뢰가 있었다.

의뢰를 접수한 그는 수술실을 이용하는 의료진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설문조사도 실시해 필요한 사항들을 파악했다. 의사들은 수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반복적인 업무가 많은 간호사들은 효율성이 높은 시스템을 원했다. 또 전력을 필요로 하는 장비들도 많아 안전한 전선 정리가 필요했다.

요구 사항들을 파악한 그는 ‘정확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스마트수술실을 디자인했다. 얼굴 인식으로 환자를 파악하고 집도의에 맞춰 장비들을 자동세팅한다. 또 수술실 내·외부를 연결해 컨퍼런스를 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췄다.

하지만 이 스마트수술실은 현재 서울아산병원에 없다. 정형외과를 대상으로 가능성과 방향성을 확인한 후 ‘철수’해 다음 단계로 넘어간 상태다. 어렵게 만든 스마트수술실을 현장에 적용하지 않은 이유는 안전성을 검증해 최적화할 필요가 있다는 ‘신중함’ 때문이다.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테스트용 제품이어서 현장에서 바로 쓸 수는 없었다. 목표는 상용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시키는 것이다. 지금은 감을 잡고 안테나를 세워서 방향을 찾는 과정이다. 스마트수술실이라고 상용화된 제품들이 있지만 서울아산병원 맞춤형은 아니다. 비싸게 구입해 장착한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서울아산병원의 특징에 맞는 수술실을 만들고자 한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시작된 혁신이 의료 전반으로 확산되길

이들은 서울아산병원에서 불기 시작한 혁신의 바람을 한국 의료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게 목표다.

김도형 매니저는 서울아산병원 이노베이션디자인센터 아이디어 팩토리를 한국 의료 메이커 스페이스를 대표하는 곳으로 만드는 게 꿈이다.

“일반 기업 중에는 메이커 스페이스를 운영하는 곳이 있지만 국내 의료기관 중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병원 메이커 스페이스는 기업과는 다르게 고객이 병원 안에 있다. 현재 맡고 있는 영역을 확장, 발전시켜서 전문화해 헬스케어 분야 메이커 스페이스의 대표가 되고 싶다.”

환자경험을 바꿔보고 싶어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는 최진호 매니저는 그 변화가 서울아산병원에서 시작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의료계 내에서는 1등 병원의 모범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 국내 의료기관 중 선두에 있는 서울아산병원의 문화가 바뀌면 우리나라 전체 환자경험 문화도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 서울아산병원의 암통합진료가 그 좋은 사례다.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으로 의료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환자경험을 바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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