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강혜련 교수, "피라지르 도입 후 위급 상황 관리 용이해져…검사 비급여는 아쉬워"
마르쿠스 마겔 교수, "유전성혈관부종 환자는 급성발작 대비한 치료제 2회분 소지해야"

최근 국내 유전성혈관부종 치료에 새로운 변화가 일었다.

체내 'C1-에스테라제 억제제(C1 esterase inhibitor)' 결핍 혹은 기능이상으로 손, 발, 복부, 혹은 후두부의 조직들이 붓는 유전성혈관부종(hereditary angioedema)은 5만~15만명 당 1명 꼴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이면서, 'SERPING1' 유전자 변이가 우성형질로 유전돼 부모 중 한 사람만 앓고 있어도 자녀에게 유전되는 유전성질환이다.

문제는 유전성혈관부종은 환자에게 급성발작이 발생하면 기도폐색(후두부), 장폐색 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급성발작 대처를 위한 대증요법과 예방요법을 중심으로 치료가 이뤄져 왔다.

하지만 최근 급성발작 자가투여 치료제의 사용이 확대되며, 대증요법과 예방요법 외 중간 단계에서도 치료가능하다는 내용이 국제 가이드라인에도 반영됐다.

국내에서 2014년 6월 허가를 받아 지난해 9월 급여등재된 유전성혈관부종 치료제 '피라지르(이카티반트 아세테이트)'에 대한 내용이다.

프리필드 피하주사제로 환자의 투여 편의성 개선한 이 약제가 급여 등재되기까지 학계의 노력도 있었다. 그만큼 환자들에게 절실한 치료제였다는 의미다.

최근 방한해 국내 의료진을 대상으로 '피라지르를 이용한 유전성혈관부종 급성 발작의 최신 글로벌 동향'이란 주제의 강연을 한 독일 베를린 샤리테 대학교병원 피부과 마르쿠스 마겔(Markus Magerl) 교수와 국내 유전성혈관부종 치료 전문가인 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 강혜련 교수를 한 자리에서 만나 유전성혈관부종 진단 및 치료 등에 대해 들었다.

-국내 유전성혈관부종 유병률은.

서울대학교병원 알레르기내과 강혜련 교수

강혜련 교수(이하 강 교수) : 유전성혈관부종은 얼굴, 손발이 붓고 심한 복통이 반복되거나 후두가 좁아져 숨을 못 쉬기도 하는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만, 평상시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다. 때문에 환자들 중 증상이 없어지면 병이 나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또 증상의 빈도나 강도가 심하지 않는 경우에는 환자나 의사 모두 유전성 혈관부종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는 아직 유전성혈관부종에 대한 유병률이 조사된 바 없다. 외국에서는 보통 5~15만명 당 1명 꼴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 명임을 고려하면 유전성 혈관부종 환자는 약 1,000명 이상 있어야 하지만, 실제 진단된 환자는 그렇지 않다.

3년 전 국내 모든 대학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전성혈관부종 환자는 65명이었다. 현재 서울대병원에서는 25명의 환자가 진료 받고 있으며, 새롭게 진단받는 환자는 1년에 1~2명 정도다.

-몸이 붓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증상이다. 유전성혈관부종이 의심되는 특징을 꼽는다면.

강 교수 : 유전성혈관부종은 증상이 신체 전신에서 부종이 나타나기보단 국소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입술, 눈 주위와 같은 안면 부위가 흔히 붓는다. 한쪽 손, 발만 붓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갑자기 신발이 한 쪽만 잘 들어가지 않거나, 펜이 잘 안 쥐어질 정도로 한쪽 손이 심하게 붓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면 유전성혈관부종을 의심해봐야 한다.

또 별다른 이유 없이 마치 출산하는 것처럼 심한 복통이 나타났다가 하루 이틀이 지난 후 통증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 반복되는 증상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피라지르의 도입부터 급여 적용까지 학계의 많은 노력이 있었다고 들었다.

강 교수 : 환자가 소수이고 치료제가 고가여서 보험 적용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와 유전성혈관부종을 진료하는 전문의들이 '전문가 입장에서 보았을 때 유전성혈관부종의 치료에 피라지르가 꼭 필요하다'라는 청원서를 심평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의료진들이 청원서까지 제출할 정도로 필요한 약이었나.

강 교수 : 우리나라에서 최근까지 유전성혈관부종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약은 남성호르몬제밖에 없었다. 남성호르몬제를 복용하면 C1-에스테라제 생성이 증가해 증상을 완화시키지만, C1-에스테라제 생성을 증가시키는데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응급 상황에는 쓸 수가 없다.

즉, 국내에선 피라지르 도입 전 응급 시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환자들은 항상 갑작스러운 부종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과 위험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이제서야 국내 환자들이 평상 시와 응급 시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모두 갖춰진 셈이다. 이는 국제지침을 충족하는 치료이기도 하다.

-독일에서도 최근 관련 가이드라인이 바뀌었다고 들었다.

독일 베를린 샤리테 대학교병원 피부과 마르쿠스 마겔(Markus Magerl) 교수

마르쿠스 마겔 교수(이하 마겔 교수) : 최근 유전성혈관부종 치료는 과거에 비해 장기적인 예방요법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또 예방요법과 대증요법 외에도 중간 단계의 치료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인정하고 있는데, 이런 내용들이 새로운 가이드라인에 반영됐다.

자가투여제의 등장으로 본인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환자들이 두 가지의 치료법을 전환하며 사용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예컨대 대증요법을 사용하던 환자가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급성발작 증상이 나타날 수 있음을 예견하고 예방요법으로 치료법을 전환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환자가 예방요법으로 완전히 치료법을 전환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중간 단계의 예방요법(Intermediate prophylaxis)'으로 부른다.

-스트레스와 같은 유전성혈관부종 급성발작을 일으키는 유발인자(Trigger)가 있나.

마겔 교수 : 환자들에 따라 급성발작 유발인자는 다 다르다. 약 80%의 환자가 일반적 스트레스 외에도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감정이 고조된 상황서 급성발작이 일어난다고 했다. 어떤 환자는 경미한 물리적 트라우마에도 반응한다. 최근 고기압과 같이 날씨 변화에 의해서도 급성발작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었다.

이러한 요인들은 급성발작 발생에 있어 필요충분 조건은 아니며, 환자에 따라 개인차가 존재한다. 자신의 유발인자가 무엇인지 안다면 이를 피하는게 도움이 되겠지만, 이를 피했다고 해서 항상 급성발작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정된 가이드라인에서는 급성발작을 위한 약물치료에 어떤 치료제를 권고하나.

마겔 교수 : 급성발작에 사용할 수 있는 옵션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C1-에스트라제 억제제를 이용해서 칼리크레인과 키닌의 시스템을 제대로 잘 억제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부종을 일으키는 브래디키닌 수용체를 차단하는 방법이다.

현재 가이드라인 상에서는 두 가지 접근 모두 적합하다고 말하고 있다. 혈장 유래의 C1-에스트라제 억제제 혹은 유전자 재조합을 통한 C1-에스트라제 억제제 그리고 피라지르까지 모두 급성발작에 적합한 치료제라고 권고하고 있다.

다만 C1-에스트라제 억제제는 분자가 크기 때문에 정맥주사(IV) 투여해야 한다. 반면 피라지르는 분자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아 프리필드실린지 형태의 피하주사가 가능하다. 또 생체 이용도가 빠르게 달성될 수 있으며, 자가투여 치료도 더 용이하다.

현재 독일의 치료 가이드라인에선 급성발작 시 대증요법으로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를 최소 2회분 소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나의 치료제에 문제가 생겨 주사를 제대로 투여하지 못할 시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추가적으로 중증의 급성발작, 통증이 있는 발작 이외에도 모든 종류의 급성발작을 치료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치료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발작에 대해서 최대한 빠르게 치료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때문에 같은 자가투여라도 정맥주사보다는 피하주사가 응급상황을 대처하는 데 용이하다. 정맥주사는 주사법을 배우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릴 뿐더러 투여 과정 자체도 복잡해 숙련도가 높은 환자라 하더라도 약을 준비하고 투여하기까지 약 15분 정도가 소요된다.

반면 피하주사는 한 번의 시범으로도 환자가 바로 자가투여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오남용 및 투약 실패의 확률이 매우 낮아 위험도가 경미하며, 부작용을 우려할 만한 상황도 많지 않다. 따라서 피하주사로 자가투여를 할 경우, 준비 단계부터 투여 완료까지 10분 미만이 소요된다.

-독일 가이드라인에서는 환자가 최소 2회분의 급성발작 치료제를 구비해야 한다고 권고한다는데, 한국에선 급여 기준상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

강 교수 : 현재 피라지르는 발작이 생길 것을 대비한 1회분 처방에만 급여가 적용된다. 하지만 응급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치료제이다 보니 실수로 바늘이 휘는 등의 문제가 생겨 투약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고 또 심한 경우에는 한 개로 증상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아 추가 투약이 필요할 수 있다. 현 보험기준에서 아쉬운 부분으로,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급여 확대가 필요하다.

-국내에서도 유전성혈관부종 치료 가이드라인 제정에 대한 움직임이 있나.

강 교수 : 국내에는 유전성혈관부종 환자수 자체가 적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많지 않고, 관련 치료약이 제대로 구비되지 않을 뿐더러 치료경험이 제대로 데이터화 돼 있지 않아 치료 가이드라인 제정이 늦어지고 있다.

다행히 3년 전 조사된 65명의 유전성혈관부종 환자에 대한 자료와 이후 발병한 환자의 자료들을 모두 수집했다. 그리고 피라지르 도입 이후 관련 임상 경험들이 증가하고 있어, 내년 정도에는 유전성혈관부종에 대한 국내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질환에 대한 인지도나 진단율을 높이는 활동도 필요할 것 같다.

강 교수 : 유전성혈관부종은 의사들에게도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 질환에 대한 의료진의 인지도가 낮으면, 환자를 만났다 하더라도 바르게 진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학회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교육 세션, 심포지엄 등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또 유전성혈관부종에 대한 환자 레지스트리(Registry) 구축 사업이 진행 중이다. 주요 대학병원에도 유전성혈관부종 환자가 의심될 경우 검사를 하거나 검사 의뢰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유전성혈관부종 환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질환의 임상적, 유전적 특징에 대한 자료를 축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이 자료가 의사들을 대상으로 질환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 진단율을 높이기 위한 관련 진단검사에도 급여 적용이 필요하다.

의사들은 유전성혈관부종이라는 의심이 들더라도 비용 등의 문제로 환자에게 적극적으로 검사를 권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독일에선 유전성혈관부종의 진단율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마겔 교수 : 독일 등에서 수년 새 유전성혈관부종의 환자가 진단율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의사들뿐만 아니라 환자 및 일반대중의 질환 인지도 상승이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일반인 대상의 신문, 잡지 등 대중매체에서 유전성혈관부종을 활발히 소개함에 따라 환자들이 직접 본인의 증상을 확인하고, 병원에 내원하는 사례들이 증가하면서 진단율도 함께 높아졌다.

또 유전성혈관부종은 유전성 질환이기 때문에 환자 한 명이 있다면 분명 그 환자 주변에 또 다른 환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해당 환자의 가계도 분석이 중요해 증상의 유무와 상관없이 해당 환자의 친지, 가족에게 검사지 작성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유전성혈관부종의 진단 및 치료 개선을 위해 조언한다면.

강 교수 : 의료진들이 조금 더 쉽게 환자들에게 검사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검사를 권고할 수 있도록 유전성혈관부종의 진단검사 비용에 대한 급여 적용이 돼야 한다. 또 환자가 유전성혈관부종이 의심될 경우 찾아볼 수 있도록 정확한 질환 정보 보급도 필요하다.

마겔 교수 : 한국에서도 피라지르와 같이 용이하게 자가투여 가능한 치료제를 허가하고, 급여 적용까지 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진일보라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자가투여가 많아질 경우 치료제 컨트롤 주도권이 의사에서 환자로 넘어가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자가투여의 증가는 여러 국가, 다양한 질환에서 대해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환자 자신들이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병원 방문 횟수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