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대학병원, 수도권 B대학병원 등 준비설 돌아…복지부 “새 병원 선정 없을 수도”

가천대 길병원으로부터 억대 뇌물과 향흥을 제공받은 혐의로 전 보건복지부 공무원 H씨에 8년의 징역형이 선고되자 길병원 자리를 눈독 들이는 병원들이 있어 주목된다.

길병원의 연구중심병원 지정이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며 벌써부터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 병원계 일각에서는 서울의 A대학병원과 수도권 소재 B대학병원이 이미 준비작업에 착수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

길병원 빈자리 노리는 병원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는 지난달 27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구속기소 된 H씨에게 징역 8년과 벌금 4억원을 선고하고 추징금 3억5,000여만원을 함께 부과했다.

법원은 “병원을 관리·감독해야 할 복지부 공무원이 평가 대상인 병원 관계자로부터 접대를 받고 법인카드를 사용했다면 직무집행이 불공정하게 이뤄질 것이라 보기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설령 병원 측에서 연구중심병원 지정에 관해 명시적으로 청탁한 바가 없더라도 수수한 이익과 직무 사이에 관련성과 대가관계가 인정된다”면서 “H 전 국장도 수수할 때 직무 관련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에 병원계에서는 길병원의 연구중심병원 지정 취소를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법원이 길병원과 H 전 국장 간 뇌물 혐의를 인정한 상황에서 연구중심병원 지위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란 지적이다.

병원계 한 인사는 “법원이 수수한 이익과 직무 사이에 관련성과 대가관계를 사실상 인정했다. 이에 길병원의 연구중심병원 지정이 취소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벌써 A대학병원과 B대학병원이 연구중심병원 선정을 위해 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연구중심병원에 선정 된 10개 병원 중 길병원을 포함한 8개 병원이 정부지원 연구과제를 맡아 한해 수십억원에 달하는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일선 병원들이 길병원의 빈자리를 노릴 이유는 충분하다.

법원 판결≠길병원 지정 취소

하지만 정작 복지부는 길병원에 대한 연구중심병원 지정 취소에 대해서도, 길병원 지정 취소가 결정된다면 그후 새 병원 선정에 대해서도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길병원 지정 취소와 과련해서는 H 전 국장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이 내려졌지만 법원이 길병원과 H 전 국장 사이에 오간 뇌물에 대해 ‘연구중심병원 부정 지정과 직접 연관된 것’이라는 명확한 결론을 내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 복지부 한 관계자는 “(길병원이 H 전 국장에게 뇌물을 준 것이) 영향을 줘서 (연구중심병원 선정이) 안될 곳이 됐는지 여부가 지정 취소 판단 기준인데, 판결을 통해 이런 부분이 드러났는지를 봐야 한다”며 “아직 복지부에서는 판결문을 입수하지 못했다. 언론보도만 접한 상태여서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H 전 국장이 연구중심병원 선정을 담당한 과의) 전 과장이었으니 당연히 상식적인 의심을 할 수 있다”며 “상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지정 취소를 결정할 때는 (의심이 아닌) 정확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법원 판결문을 아직 보지 못했지만) 언론 보도 내용 등을 보면 뇌물죄는 적용됐지만 연구중심병원 선정과 관련해 따로 뭔가 했다는 부분은 명확하지가 않다”면서 “추정만으로는 지정 취소가 어렵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길병원 취소 후 새병원 지정 없을 수도

복지부가 길병원 연구중심병원 지정을 취소한다고 해도 새 연구중심병원 선정은 별개라고도 했다.

이 관계자는 “2013년 당시 첫 연구중심병원을 선정할 때 기준을 정하고 선정해보니 10개가 된 것이지 10개라는 수는 선정 기준이 아니었다. 그 때 5개나 15개가 선정됐다면 그게 유지됐을 것”이라며 “때문에 빈자리가 생긴다고 해서 수를 채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길병원 지정 취소를 예상하고 연구중심병원 선정 준비를 하는 병원들이 있다는 설에 대해서는 “아직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다만 길병원 지정 취소나 취소 후 새 병원 선정 등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갈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만약 길병원이 지정 취소되고 새 병원을 선정한다고 하면 그 과정은 2013년도 연구중심병원 선정과 동일한 과정이 될 것”이라며 “그때가 되면 병원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길병원의 연구중심병원 지정이 취소될 경우 그동안 길병원에 지원된 금액은 모두 환수조치 된다.

이 관계자는 “길병원은 2014년부터 정부지원과제 2개를 진행 중인데, 이에 따른 정부 지원액이 매년 약 45억원 정도 된다”면서 “지정 취소가 결정된다는 것은 애초 지정부터 잘못됐다는 의미기 때문에 만약 길병원이 지정 취소되면 지원받은 금액 약 180억원은 환수조치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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