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상황 발생해도 나서지 말자”는 말까지 나와…“피해 걱정되면 누가 돕겠나”

한의원에서 봉침 시술을 받고 사망한 여교사를 응급처치했던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유족에 의해 피소됐다는 소식에 의료계는 들끓었다.

한의사를 돕기 위해 나섰다가 9억원대 민사소송에 휘말리게 된 가정의학과 전문의에 대한 본지 보도를 접한 의사들은 “어이없다”며 분개했다. 응급 상황이 발생해도 나서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말도 공공연하게 나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말이 현실이 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선한 사마리아인’에게 책임을 묻는 상황이 이어지면 응급환자를 돕기 위해 나서는데 주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08년 6월 응급의료법이 개정돼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조항(제5조의2)이 마련됐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이 피해를 보는 일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응급의료법에서는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해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死傷)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않으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조항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책임을 완전히 면해 주지는 않는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지난 2013년 12월 동료 의사의 부탁으로 수면내시경 검사 도중 호흡 이상 증상을 보인 환자에게 기도삽관 등 응급조치를 했던 의사가 민사소송에 휘말렸다. 이 의사는 형사처벌은 피했지만 억대 배상 책임을 져야 했다(관련 기사: “프로포폴 부작용 대처 미비로 환자 사망…의사 배상해야”).

법무법인 세승 김선욱 변호사는 “(선한 사마리아인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법 조항은 없다. 소송은 누구나 제기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하지만 책임을 지우려면 계약상 채무를 이행하지 않았든가, 일반적인 불법 행위를 했어야한다. 그런데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응급환자를 돕기 위해 간 것이지 진료를 하러 간 게 아니다. 과실 여부를 따지기가 불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도와주려는 사람이 피해까지 걱정해가면서 도와줘야 한다면 누가 나서겠느냐”며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상대로 진행되는 소송에서 원고 측이 어떤 법적 논리를 제시할지 궁금하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사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의협은 29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선의의 응급의료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의협은 피소 당한 가정의학과 전문의에 대해 법률적 지원도 진행하고 있다.

의협 방상혁 상근부회장은 “가정의학과 의사는 한의원의 잘못된 시술로 인해 생명이 위태로워진 환자를 살리기 위해 도왔는데 그런 의료행위 자체를 문제 삼으면 앞으로 어떤 의사가 나서겠느냐”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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