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철 인제대 해운대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1

그는 어머니에 대해 쉴 새 없이 물어본다. 어머니가 깜빡깜빡 하는 게 요새 들어 심해졌다며 MRI를 찍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좋은 약이 새로 나온 것이 없느냐고, 차라리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보는 것도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어머니가 기력도 약해지고 식사도 하지 않고 엉뚱한 말만 해서, 이억장이 무너진다고. 질문이 황당하기도 하고 무례하기도 하지만, 그의 심정이 이해되기는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답변을 할 틈은 주어야 할 텐데.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자신의 말만 끊임없이 이어 나간다. 애초에 그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을 해주고 싶었던 마음은 이제는 온데간데 없어져 버렸다. 나는 이미 피로하고 권태로워져 버린 것이다.

이제는 진료의 대상이 어머니인지 그인지 헛갈릴 정도이다. 차라리 그가 외래 접수를 하고 진료를 받았으면 좋겠다. 아, 그런데, 그는 눈치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동안 친절한 미소로 감추어두었던 짜증은 나의 얼굴에 여기저기에서 베어 나오고 있음에도, 그는 그것을 느끼지도 못하나 보다. 그의 황당한 질문은 점점 도를 더해 간다. 급기야 양파가 피를 맑게 한다는데, 어떤 양파가 좋겠냐고 한다. 아, 이제는 그가 그만 진료실에서 나가 주었으면 좋겠다.

“치매치료제의 역할은 손상된 부분을 회복시켜주는 것은 아니고 손상되지 않고 남아있는 건강한 부분을 지켜내어 더 이상의 손상을 막아내는 것입니다. 어머님께서 요사이 진행이 빨라지셨다면, 우선 치매치료제의 용량을 늘려보면서 지켜보도록 하시지요. 그래도 어머님은 치매 환자분들에 비하면 경과가 나쁘지는 않은 편이랍니다. 염려되시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차분히 기다려 보시죠. 다음에 또 뵐게요.”

나의 정리 멘트가 효과가 있었는지 그가 할 말을 다해서인지 구분은 안되지만, 그는 문손잡이를 돌리며 진료실을 떠나려 한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권태로움을 몰아내려 한숨을 내쉬어 본다. 진료실을 떠나는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다음에는 그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래본다.

2

어머니는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반겨준다. 오랜만에 만난 막내아들에게 그저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엄마가 우리 아들이 훌륭한 의사로 쓰임 받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하고 있어. 항상 밝고 긍정적으로 생활하렴. 그래야 우리 아들이 환자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해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우리 아들을 귀하게 여겨줄 거야.’

어디다 적어놓고 외우시는 건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하던 진부한 얘기도 이제는 들을 수가 없다. 어머니는 그저 조용히 미소만 띠고 앉아만 있을 뿐이다.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휠체어에 앉아 있는 어머니는 나에겐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어머니가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지셨던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괴롭기만 하다. 어머니의 쾌유를 염원하던 나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전두엽 전반에 걸쳐 뇌경색이 발생되었다. 이런 빌어먹을. 이제는 나도 세상살이라는 것을 조금 해보니, 어머니와 속 깊은 얘기를 나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뒤늦게 부모 마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은데, 그래서 어머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나에게는 더 이상 그럴 기회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나의 이런 아쉬움은 사치스러운 것일지도 모를 게다. 지금의 어머니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먹지도 씻지도 그 무엇도 할 수 없으니까.

어머니가 이렇게 되기까지 도대체 나는 뭘 한 걸까, 의사랍시고 자랑만 했지, 나는 왜 어머니에게 한 번쯤 MRI를 찍어보자고 강권하지 않았을까, 나는 왜 어머니의 담당의에게 더 좋은 치료법을 찾아달라고 재촉하지 않았을까. 왜, 왜, 왜.

내가 죄책감이라는 끈적끈적한 웅덩이에 갇혀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할 즈음, 어머니는 내게 조그마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작고 어눌한 목소리로.

“아, 들,,, 안, 녕.”

“아들안녕.”

무심하게도 뇌경색은 내게서 어머니의 많은 부분을 앗아갔지만, 어머니의 모습 중 조금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을 테니. 아직 막내아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고 행복했던 감정이 어머니의 마음 속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있을지도 모를 테니. 그것이 구체적이고 명료한 형태의 기억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불쌍한 분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예의 바르고 현명하고 자존감도 높았고 강인한 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막내아들이 의사가 된 것을 자랑스러워 하셨다.

이제 두 돌을 조금 지난 딸이 잠에서 깨자마자 싱긋이 웃으며 ‘아빠’라고 한다. 한 동안 감기에 걸려 골골하는 모습이 애처로웠는데, 지금은 건강해져서 기분이 좋은 지 싱긋이 웃는다. 딸아이의 귀여운 웃음을 바라보다, 어머니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을까,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3

진료실을 나가려고 문손잡이까지 잡았던 그가 갑자기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는 또 물어본다. 생강이 치매에 명약이라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리고 요새 줄기세포로 치매도 낫게 한다는데 언제쯤 해 볼 수 있겠느냐고. 나는 피식 웃어버리고 만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그의 모습은 어디선가 많이 봐왔던 누군가의 모습이었으니까.

“염려가 많이 되시죠. 힘내세요. 그래도 어머님은 지금 드시고 있는 약을 잘 드시는 게 중요해요. 봐서 괜찮은 약 있으면 더 추가해 볼게요. 그리고 괜히 다른데 가서 돈 쓰고 몸 힘들여 가며 고생하지 마시고, 당분간은 제 외래에 착실히 오세요. 다음에 또 봬요. 그리고 아드님도 너무 어머님에게만 매달리지 말고 쉬기도 하고 그러세요.”

슬픔은 ‘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예고 없이 너무 갑자기 찾아온다. 많은 책들은 그 ‘슬픔’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그 슬픔에 대해 함부로 말한다는 것은 엄청난 만용인 것 같다. 다만 그 슬픔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 슬픔 속에서도 우리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위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한 번쯤은 어머니와 그분에 대한 내 감정을 글로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활자화되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맴돈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너무 민망한 일이다. 특히나 이 글은 내 감정의 민감한 부분을 다루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내 글이 신세한탄처럼 보이면 어쩌나 하는 염려 또한 떨쳐내기가 힘들다. 표현이 너무 투박하고 간결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에 글을 읽다가 어딘가에 숨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럼에도 너무 큰 바람일지는 모르겠으나, 혹시라도 이 글을 통해, 가족의 질병으로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는, 그 누군가가 아주 작은 위안이라도 스스로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면 더 큰 바람이 없을 것 같다.

'그날' 이후 황망한 마음을 견딜 방법이 없어서 이런 상황을 견디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없을까 하고 검색을 하던 중에, 사실상 국내에는 관련서적이 전무하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허탈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 뇌졸중 환자 가족의 심리적 안녕을 위한 자기도움 도서(self-help book)를 번역이라도 해야 되겠다고 결심을 했었는데, 그간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엄두도 내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 수상이 그 번역작업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는 계기가 되도록 하고 싶다.

이번 기회를 빌어서,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묵묵하게 견뎌내어 주시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올리고 싶다. 'In my flesh shall I see God'이라는 성경구절이 진실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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