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제도 변경에 혼란만 가중...소통 단절에 사실상 포기 상태

연명의료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4주째 접어들었지만 의료계의 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제도 시행에 대비해 수개월 전부터 자체적으로 준비를 해온 대형병원들조차 잦은 제도 변경과 복잡한 절차로 인해 사실상 연명의료를 포기한 상태다.

실제 연명의료법은 시행 전부터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기준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으며, 시행을 이틀 앞둔 지난 2일 시행규칙이 변경되면서 관련 서식을 교체해야 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연명의료정보처리시스템 상에서 전자서명 시 태블릿 PC 중에서도 안드로이드 5.0 이상만 이용할 수 있어 혼란이 일기도 했다. 서식 작성 시 마우스패드로 컴퓨터에 직접 입력이 안되고 특정 사양 이상의 태블릿 PC만 이용되는 한계가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사전 고지나 매뉴얼이 없어 불필요한 장비 교체 및 혼란을 야기한 것.

이에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은 4월부터 안드로이드 5.0 이상의 태블릿 PC도 사용가능하도록 개선하고, 담당의사가 아닌 행정직원이 서식을 입력할 수 있도록 했지만 여전히 행정적 업무가 많다는 지적이다.

A대학병원 관계자는 “전자서명 시 기존에 사용하던 아이패드는 호환이 안된다고 해서 갤럭시노트 10.1을 12대 빌려서 사용하도록 했다. 호환이 된다고 해서 진행한 것이지만 결국 안드로이드 5.0 이상만 된다고 해서 다 반납했다”면서 “최신기기를 보유하지 않으면 서명을 스캔해서 담당의사가 직접 올려야만 한다고 하더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후 시스템이 변경돼 의사가 아닌 행정직원이 대신 등록자로 서식을 입력할 수 있도록 됐지만, 의사나 간호사에 이어 행정직원도 서식받는 절차에 투입돼야만 하고 스캔파일을 수기로 입력해야하는 등 실제 업무부담은 더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에 “법 시행 6개월 전부터 병원 내에 TF팀을 구성해 준비를 해왔지만, 갑작스러운 제도 시행에 계속해서 관련 법이 바뀌다보니 사실상 제도 참여를 포기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B대학병원 관계자는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법 자체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내부적으로 어떠한 형태로 연명의료를 진행해야 할지 계속 회의를 해 나가고 있지만 쉽게 답을 찾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이 관계자는 “서식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 진료비 청구는 꿈도 못꾸고 있다”면서 “윤리위원회 소집과 관련 비용, 연명의료 수가 등 풀어야할 과제가 산더미다”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혼란에 대비하기 위해 관련 규정과 기준을 문서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관련 당국의 입장을 듣기도 쉽지 않아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C종합병원 관계자는 “국생원에서 공인인증서 로그인 문제 등 일부 개선안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혼란스럽다. 수시로 발생하는 문제를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채널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국생원에 질문을 보내면 답변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구두로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한계가 있어 서면으로 질의를 보내봤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답이 없다”면서 “일부 병원과만 소통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당장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