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이오산업 현장에서 듣다⑨ 바이로큐어 김만복 대표

“화장품 만들어 팔 시간이 없습니다.”

신약개발 기업을 표방하면서 화장품을 선전하는 바이오벤처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벤처뿐 아니라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중·대형 제약회사 가운데서도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음료류를 빼면 매출이 ‘휘청’이는 제약사가 있을 정도다.

장기간 많은 비용이 필요한 신약개발의 특성상 연구개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궁여지책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에선 리스크 회피를 위해 안정적인 매출에만 안주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이런 제약업계 환경을 고려하면 아무리 어려워도 화장품을 절대 팔지 않겠다는 한 신생 바이오 벤처의 선언(?)은 대견함을 넘어 아슬아슬하기까지 하다.

항암바이러스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바이로큐어(ViroCure)'는 단국대 항암바이러스 연구그룹(교내벤처)에서 시작돼 2016년 6월 설립된 직원 9명의 스타트업이다. 아직 판매 중인 제품도 없다. 가장 빠른 파이프라인이 내년 1상 임상시험이다.

그럼에도 일부 전문가들, 투자자들에게 벌써부터 적지 않은 관심을 받고 있다. 벤처캐피탈(VC) 투자도 순조로웠다. 법인이 만들어진지 한 달 만인 2016년 7월 초기(seed) 투자를 받은 데 이어 같은 해 10월과 12월 시리즈A 투자(스타트업에 대한 첫 기관투자)를 받았다.

바이로큐어는 자연에 존재하는 유익한 바이러스 종자로 암치료 등의 용도를 발견함으로서 혁신신약 및 백신 개발을 목표하고 있다. 주력 파이프라인은 어린이 분변에서 분리되는 '리오바이러스(Reoviruses)'를 이용한 위암치료제 연구다. 현재 동물실험을 마치고 2018년 서울아산병원에서 1상에 돌입할 예정이다.

과연 회사의 연구가 화장품을 팔지 않아도 될 만큼 금방 제품화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스타트업에 까다롭다는 VC투자를 손쉽게(?) 받아낼 만큼 유망한 것인지, 바이로큐어를 설립한 김만복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 대표는 캐나다 캘거리의대 종양생물학 박사과정을 거쳐 연세대 연구교수, 제일약품 이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단국의대 조교수이자 바이로큐어 CEO다.

그는 그간의 과정이 "운이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회사의 비전에 있어선 철저한 분석과 계획이 있다면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바이러스 연구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자연에 존재하는 바이러스들 중에는 인체에 해롭지 않은 바이러스가 많다. 이런 바이러스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질병을 일으키지 않아 이슈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같은 바이러스를 발굴 연구한다. 바이러스가 암을 공격하면 NK세포, T세포 등이 나와 인체 내에 면역세포들이 활성화되는 게 항암바이러스의 기전이다.

국내에서 항암바이러스를 전문으로 치료제로 연구하는 회사는 바이로큐어와 신라젠 두 곳 뿐이다. 판매 중인 제품으로는 피부암치료제로 2015년 미국 FDA 승인을 받은 다국적제약사 암젠의 티벡(제품명: 임리직)이 있다.

항암바이러스는 비교적 역사가 짧다. 많은 회사들이 개발 초기단계에 있고, 때문에 이 분야를 잘 모르는 전문가들도 많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수십 개의 회사에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관련 제품이 많이 나올 것이다.

-주력 파이프라인 리오바이러스는 무엇인가.
어린이 분변에서 나오는 바이러스다. 리오바이러스는 효능에 대한 선행연구가 캘거리대에서 시작됐다. 이후 직접 연구를 계속해 특허로 만들었다. 현재 동물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1상 준비단계에 있다. 리오바이러스는 회사의 연구 중 가장 앞서 있는 파이프라인이다. 기초연구는 많이 이뤄진 상태다.

위암치료제로 개발한 후 간암 등 다른 암종으로 적응증을 확대할 생각이다. 위암 환자 수가 많기 때문이다. (위암은) 특히 아시아에서 많고 사망률도 높다. 치료가 되지만 재발도 잘 일어난다. 그래서 1차로 위암을 타깃으로 했다.

그외 토끼에서 유래된 믹소마바이러스(Myxomaviruses), 다람쥐에서 유래된 폭스바이러스(Oncolytic squirrel poxvirus) 등도 있다. 믹소마바이러스의 경우 토끼에는 질병을 일으키지만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회사의 동물실험에서 쥐에 암을 이식해 관찰한 결과 가능성을 확인했다. 믹소마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 연구를 하는 곳은 국내에서 우리 뿐이다. 또 다람쥐 폭스바이러스 치료제 연구는 (바이오큐어 외) 전세계 어디도 없다.

-리오바이러스의 제품화 로드맵은 무엇인가.
서울아산병원에서 2018년 7월경 1상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아산병원 의료진과 한 달에 한번 미팅을 갖고 있다. 병원에서도 연구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1상은 국내에서 하고 임상 2상은 중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권 환자로 넓힐 예정이다.

위암치료제로 출시는 3상까지 기간을 고려해, 2023~2024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패스트트랙이 가능해진다면 기간은 단축될 수 있다. 개발 후에는 임상에서 바이러스-바이러스 병용이나 다른 항체신약과의 병용 등 여러 형태로 쓰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라이선스 아웃도 염두에 두고 있나.
라이선싱을 하면 가격이 비싸진다. 현재로서는 하지 않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 회사의 목표는 좋은 신약을 싸게 만드는 것이다. 향후 여러 바이러스 치료제를 개발하면 그 일부는 라이선스 아웃을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제한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고려하고 있는 해외진출 방식은 무엇인가.
외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있다. 지사가 있어야 네트워크가 생기고 전초기지로 삼을 수 있다. 현지에서 진행하는 연구와 인허가를 통하면 관련 절차에 소요되는 기간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또 현지 VC 투자자들을 만나 투자유치도 할 수 있다. 현지에서 연구개발 인력을 뽑을 계획이다. 다국적제약사들도 각국에 연구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를 위해 해외지사 및 연구소를 설립해나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Moffitt 암센터, 중국에는 염성센터에 입주가 승인됐다.

-제품 매출이 없는 상태다. 필요한 자금은 어떻게 조달할 계획인가.
먼저 반려동물 의약품으로 출시하려고 한다. 동물용의약품은 임상기간이 짧고 허가가 빠르다.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동물병원 임상시험 레포트를 내면 된다. 2020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암의 기전은 동물과 사람이 같다. 때문에 반려동물의 암치료에도 같은 치료제를 쓸 수도 있다. 다만 (보험 등의 문제로) 고가여서 사용이 많지 않을 뿐이다. 치료제를 싸게 만들면, 반려동물 암치료제 시장도 알려진 것보다 커질 수 있다. 현재 가격의 1/100정도, 즉 수십만원대로 가격을 낮추려고 한다.

매출이 필요해도 화장품 등은 판매하지 않으려고 한다. 화장품은 신약이 아니다. 바이러스 연구를 하다가 도중에 다른 연구를 하면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오직 신약, 그중에서도 바이러스만을 연구할 것이다. 일부 바이오업체들은 신약개발을 위한 자금을 만들고자 화장품 등을 판매하기도 하겠지만, 그게 본래 회사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화장품은 신약만큼의 파급효과가 나오기 힘들다. 신약을 해야 선도그룹이 된다. 화장품을 만들어 팔 시간이 없다.

일부 대기업에서도 신약을 개발하지 않고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고 있는데 분명한 것은 바이오시밀러는 바이오신약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약이어야 국가 성장동력이 된다. 이는 벤처에서 더 잘할 수 있다. 혁신신약 개발에 성공하면 10년 뒤에는 글로벌회사가 될 수 있다. 이런 비전을 향해 나아가려고 한다.

-동물용의약품 허가·생산에 대한 준비는 이뤄지고 있나.
지난해에 오송첨단복합단지에 입주기업으로 선정돼 1,700평의 땅을 분양받았다. 여기에 연구동과 함께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생산동을 건립해 제품을 만들려고 한다. 제품이 나오면 반려동물 의약품 허가(임상)준비를 시작할 것이다.

-초기 자금확보가 빨랐다. 특허가 도움이 됐나.
그렇다. 현재 회사 주력 파이프라인 3가지 바이러스에 대한 특허를 가지고 있다. 갯수로는 5~6가지로 나눠져있다. 법인을 설립하고 특허를 회사이름으로 이전하고 나니 바로 VC 투자가 들어왔다. 특허는 다람쥐 폭스바이러스가 한국에서 특허등록 됐고, 항암리오바이러스, 믹소마바이러스가 한국·중국·일본에서 특허로 등록됐다. 미국특허도 출원 중이다.

-특허 보유만으로 VC투자가 쉽게 이뤄졌을 것 같지 않다.
특허기술에 대한 원천기술개발자라는 게 알려져서다. 직접 연구해 특허를 낸 것이어서 히스토리를 다 알고 있다. 해당 기술의 처음과 끝을 모두 안다는 얘기다. 반면 후보약물을 라이선싱한 회사의 연구자들은 후속개발자가 되는데 둘의 차이는 크다. 원천기술개발자가 없으면 문제발생시 대처가 어렵다. 컴퓨터를 예로 들어보자. 에러가 나면 해당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해결할 수 있다. 후속개발자들은 자신이 처음부터 개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초기 투자는 원활히 됐지만, 앞으로 임상단계 상승 등에 따라 자금은 계속해서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국가에서 지원을 늘려주면 투자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아쉬움도 든다.

-새정부 출범과 함께 바이오육성이 강조되고 있다. 건의하고 싶은 게 있다면.
암치료는 국가프로젝트가 돼야 한다. 국민들에게 확실한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에서 지원을 많이 해줘야 한다. 특히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은 더욱 적극적으로 해줄 필요가 있다. 바이로큐어는 운이 좋아 VC투자를 받았지만 투자를 못 받는 곳들이 더 많다. 정부 역할이 필요한 부분이다.

정부 과제 선정에 있어서도 지원대상에 대기업이나 복제약, 개량신약 등의 개발은 모두 빼고 혁신신약에 특화된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 아직 한국에 혁신신약은 나오지 않았다. 한 개만 나와도 그 파급효과는 굉장히 클 것이다. 제약기업의 가장 큰 역할은 R&D다. 그래야만 신약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로큐어가 그런 역할을 해내고 싶다. 지켜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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