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인기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메디 큐브’라는 의료시설이 등장한다. 입원 병상은 물론 수술실에 감염병 환자를 격리할 수 있는 음압 시설까지 갖춰져 있는 이동식병원(mobile hospital)이다. 이 메디 큐브는 현실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다.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이동식병원은 외래진료 중심의 텐트형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이 관리하고 있으며 지난해 네팔 지진 현장에 일부 시설이 사용되기도 했다. 이 이동식병원은 해외의료지원을 위해 외교부가 마련한 것이다.

이와 별개로 국내 재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이동식병원 도입도 진행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예산 50억원을 편성 받아 100병상 규모로 올해 연말에는 도입할 계획이다. 국내용 이동식병원에는 간단한 수술이나 분만이 가능한 시설을 갖출 계획이지만 이 또한 드라마 속 메디 큐브와는 차원이 다르다.

현실 속에서 메디 큐브를 볼 수 없는 1차적인 이유는 비용 문제다. 드라마에 나온 메디 큐브와 같은 시설을 갖춘 이동식병원을 마련하려면 150억원 정도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한계도 있다. 예산을 투입해 메디 큐브를 마련한다고 해도 이를 옮길 수송기가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수송기는 C-130기종인 군 수송기로, 이미 도입된 해외용 이동식병원도 이 수송기를 기준으로 마련됐다. 국내용 이동식병원이 해외용보다 큰 규모로 추진되는 이유도 이송 제약이 해외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료분야 공적개발원조(ODA) 초점이 긴급 구호에 맞춰져 있는 것도 메디 큐브 도입을 제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는 장기 지원보다는 단기 지원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관련 시설들도 빠르게 수송할 수 있는 부피와 규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하드웨어만 문제는 아니다. 메디 큐브를 갖춰도 이를 활용할 의료인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이 지난 2009년부터 ‘해외긴급구호 보건의료교육’을 실시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으며, 국내 재난 현장 투입을 위한 ‘재난의료지원팀(DMAT)’도 구성돼 있다. 하지만 이 둘을 연계하는 시스템이 없다보니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전국 의료기관에 흩어져 있는 인력들을 교육시켜 해외 재난 현장에 파견하기 위한 협조체계도 미흡하다.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던 우리나라는 지난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으로 승인받았다. 그러면서 정부는 ‘한국형 ODA 모델’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렇게 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본 외국에서 나중에 혹시라도 메디 큐브 지원 요청을 하면 우린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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