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이후 차관급으로 격상된 질병관리본부 수장에 한림대 성심병원 정기석 원장이 임명됐다. 정기석 원장은 호흡기감염분야 전문가로, 청와대는 진료 및 임상경험이 풍부하고 연구실적도 뛰어나 국가방역체계 구축 등 질병예방 및 통제 수준을 격상시킬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해 발탁했다고 밝혔다. 또한 병원장 시절 조직관리 능력과 추진력을 보였으며, 온화하고 소통에 능해 신망이 두텁다는 게 청와대의 임명 이유다.

이로써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정부 조직 두 곳의 수장을 의사 출신 전문가가 맡게 됐지만,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진엽 장관이 임명된 이후 의료계가 반대하는 원격의료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더니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사견을 피력하는 등 의사 출신 장관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행보를 보여온 것이 첫째 이유다. 장관이 의사 출신이어도 변한 것이 없는데, 질병관리본부장이 뭘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우려의 이유는 신임 본부장의 출신 성분이 아니라 질병관리본부의 위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질병관리본부가 신종감염병 발생 시 국가 방역체계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위와 권한이 격상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인사 및 예산권이 본부장에게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질병관리본부장에게는 인사 및 예산권이 없다. 지위만 차관급으로 격상됐을 뿐이다. 질병관리본부 조직을 장악하는 것은 물론 감염병 발생 시 지자체나 타 부처와의 관계에서 질병관리본부장이 리더십을 발휘하기란 역부족이지 싶다. 외부 인사에게는 특히 어려울 거라는 말도 나온다.

현재 질병관리본부는 그 어느 때보다 사기가 떨어져 있다. 의사 출신 공무원 등 실무자들이 무더기로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징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실무자들에게만 과도한 징계가 집중됐다는 억울함은 느낄 만하다. 따라서 신임 본부장이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은 침체돼 있는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데 있다. 특히 신종감염병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해 메르스 사태를 더 키웠던 만큼, 전문인력을 더욱 확충하고 전문인력들이 제대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메르스에 이어 최근에는 지카바이러스가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국내 확산 가능성이 낮다고는 하지만, 메르스보다 더 강력한 감염병은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청와대는 정 본부장이 조직관리 능력과 추진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수천 명의 조직을 진두지휘했던 경험과 호흡기감염분야 전문가라는 전문능력이 잘 조화를 이뤄 질병관리본부가 환골탈태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말을 제대로 경청하고 전문가의 결정을 존중하는 문화가 먼저 형성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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