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영의 모노태스킹

[청년의사 신문 박재영] 우리나라 한의사는 참 독특한 위상을 갖고 있다. 전통의학이 몰락한 대부분의 나라들과 달리 독립된 면허 체계를 갖고 있고, 의사와 비슷한 수준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나마 국민건강보험의 혜택까지 받고 있으니 말이다. 전통의학 시술자를 양성하는 대학에 최상위권 학생들이 진학하는 현상도 이례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한의사가 ‘이중국적’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때로는 의사 행세를 하고, 때로는 전통의학 시술자 행세를 한다. 마치 한국에서는 한국인 행세를 하고 미국에 가서는 미국인 행세를 하는 이중국적자와 같은 모습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진짜 이중국적자들과는 달리 그들은 같은 시공간 내에서도 편의에 따라 자의적으로 두 개의 국적 중의 하나를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75%의 교육 과정이 비슷하다면서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게 해 달라거나 한의학의 과학화가 필요하다면서 연구비를 신청할 때 사용하는 국적과, 현대 과학의 잣대로 한의학을 재단하지 말라면서 검증을 회피하거나 오랜 역사가 곧 증거라면서 한약에 대해서는 임상시험도 필요 없다고 주장할 때 사용하는 국적이 다르다. 진단할 때는 현대의학의 용어를 쓰고 치료는 한의학적 방식으로 하는 경우처럼, 동시에 두 개의 국적을 내밀기도 한다. 이건 뭐 두 얼굴의 야누스가 따로 없다.

한의사가 처음부터 이중국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혼란스럽던 한국전쟁 시기에 한의사 제도가 확립된 것부터가 잘못 꿰어진 첫 단추였지만, 한동안은 이중국적 문제가 불거지진 않았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지고 한의사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그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고, 그 결과가 제도의 빈틈을 노린 이중국적의 취득이었다.

맘에 들진 않지만, 여기까지는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미우나 고우나 같은 의료인이고, 적어도 아직은 그들을 원하는 국민들이 일부 있고, 사람이 아니라 기묘한 제도를 탓해야 하는 구석도 있었으니 말이다. 예외적인 경우엔 진짜 이중국적도 허용하는 나라이니, 그 정도가 너무 심하지만 않으면 그러려니 눈감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그들이 난데없이 ‘난민’ 행세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게 해 달라, 그걸 사용하지 못해서 한의학의 과학화가 어렵다, 더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하기 위해 필요하다, 당연히 쓸 수 있어야 하는데 의사들이 핍박해서 못 쓴다, 이렇게 쉬운 걸 왜 못 쓰게 하느냐는 주장을 당당히 하고 나선 것이다. 조금 있으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천부인권’이라는 주장도 나올 기세다.

말은 바로 하자. 그들은 난민이 아니다.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사상적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해 탈출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난민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으며, 학문적 난민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들은 학문적 배경의 차이로 인한 박해를 받은 적이 없고, 오히려 배우지도 않은 학문까지 자신들의 배경으로 활용하며 엄청난 권리를 누려왔다. 결코 피해자가 아니란 말이다.

전통의학 시술자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든지, 차라리 의료일원화를 갈구하든지, 두 개의 국적 중 하나를 정리하는 것이 시급한 이 시점에, ‘난민 코스프레’를 하면서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갖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함의 극치다. 두 개의 국적으로도 부족하여 세 번째 ‘난센여권’까지 달라는 건가?

그들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거다. 한의협 회장이 골밀도 측정기 시연 해프닝을 통해 온몸으로 증명했듯이, 의료기기는 게임기가 아니며 한의사는 의사가 아니다. 한의사들의 이중국적을 마지못해 묵인해 왔던 의사들은 이제 막 깨달았다. 묵인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것을, 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잘못된 것을 일거에 바로잡을 시기가 도래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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