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환자·시민단체·노동계 "질본 독립시켜야" 한 목소리김용익 의원 "복지부동 드러낸 졸속 개편안, 전면 재검토하라"

[청년의사 신문 송수연] 정부가 국가방역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종식을 선언한 지 한 달여 만이다.


신종감염병 국내 유입을 차단하고 초기 즉각 대응체계, 환자 격리시설 및 전문치료체계를 구축하고 병원감염 방지를 위해 의료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게 골자다. 관심을 모았던 조직 개편은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하는 선에서 끝났다.

보건복지부 정진엽 장관은 지난 1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메르스 발생 이후 대응과정, 국회 특위에서 제기된 메르스 발생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현장간담회, 공청회, 감염병관리위원회 등을 통해 현장 경험자, 각계 전문가 및 관계자 등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했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이어 “고민 끝에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시켜 독립적으로 인사권과 예산권을 갖고 있는 독립된 기관으로 만들자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질병관리본부의 청 독립은 장점도 있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여러 유관기관들과 긴밀한 협조를 구해야 하는데 청으로 독립했을 때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조금 있었다”고 했다.

의협 "차관급 자리 하나 늘리는 것 이상 의미 없다"

하지만 의료계는 물론 환자, 시민사회단체 등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하지 않고 본부장을 차관급으로 올린 것에 대해 ‘땜질식 처방’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강청희 상근부회장은 “민간협의체를 만들어 개선 방안을 논의하자고 요구했는데 정부가 너무 졸속으로 안을 마련한 것 같다”며 “특히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독립시키지 않고 복지부 산하에 묶어 놓는다면 차관급 자리 하나 늘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의협 신현영 홍보이사 겸 대변인도 “결국 질병관리본부 독립이 불발됐다”며 “메르스 사태의 원인이나 책임 소재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한 방안이어서 실망스럽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신 대변인은 “질병관리본부가 독립하지 못하고 차관급으로만 승격했을 때 신종감염병에 독립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과 우려가 있다”며 “앞으로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전문가단체와 협의해서 조정해 나갈 수 있는 융통성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연대 "정부조직법 개정해 질병관리청으로 격상시켜야"

의료계와 환자단체,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이 모인 ‘메르스 극복 국민연대 준비위원회’(이하 국민연대)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거시적인 대안 제시가 결여돼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며 “질병관리본부를 차관급으로 격상시키겠다고 했는데 단순히 기관장의 자리 하나를 승격시켜 정부가 기대하는 대로 전문성과 자율성이 확보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연대는 “고질적이고 폐쇄적이라 할 수 있는 공무원 조직에서 부족한 전문성과 자율성을 이식해 배양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이고 엄격한 정부조직법에 의거해 조직 시스템과 인사 및 예산권을 부여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국민연대는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격상시키고 독립된 인사권과 예산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연대는 “가능한 빠른 시일 내 정부조직법을 손질해서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격상시키는 동시에 인사권과 예산권을 개편된 조직의 손에 쥐어주어야만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전문성과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청으로 독립해 직접 지휘하는 산하 지역거점 조직을 갖고 있어야 유사시 지방 정부와 유기적인 연계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대는 이어 “장관 취임 후 불과 나흘 만에 발표한 대책을 신임 장관이 충분히 검토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국가방역체계 문제를 일회성, 단편적 대안으로 그치지 말고 조속한 시일 내에 민관 합동 형태의 (가칭)‘대통령 직속 보건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중장기적 대안 마련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계도 부정적이긴 마찬가지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이날 논평을 통해 “메르스 사태 확산 원인과 초기대응에 실패해 국가방역체계가 뚫린 점, 역학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것에 대한 진상규명이 빠져 있다”며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시키겠다고 했는데 단순히 기관장의 자리 하나를 승격시키는 것으로 전문성과 자율성이 확보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는 몇 가지 임기응변식 대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할 것이 아니라 각계각층 전문가와 관련 단체들과 폭넓은 대화와 논의를 통해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메르스 극복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도 "복지부동만 드러낸 졸속 개편안, 전면 재검토해야"

야당에서도 졸속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은 “메르스 사태의 교훈 잊은 채 조직이기주의와 복지부동만 드러낸 졸속 개편안”이라며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김 의원은 “정부가 발표한 개편안은 복수차관제와 질병관리청 설치를 거부한 것”이라며 “정부와 여당이 감염병 예방의 국가적 역량을 강화하라는 요구에 관료조직의 기득권만을 유지하는 방안으로 답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메르스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주무부처가 엄청난 국가적 재난을 야기한 것에 대한 반성은커녕 ‘자기조직 챙기기’와 ‘고위직 자리 늘리기’로 활용하고 있다”며 “정부가 후속대책을 마련하면서도 끝내 감염병전문병원 등 공공의료 확충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이 정부가 공공의료 강화에 아무런 관심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도 했다.

김 의원은 이어 “국회와 국민의 뜻에 반하는 메르스 후속 대책에 우리 당은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다”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정부조직개편을 포함한 감염병 대응체계 개편안을 전면 재검토하고 여야가 합의한 국회 메르스특별위원회 논의 결과와 전문가들의 정책제안을 적극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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