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지난달 17일 세월호 사고 1주기를 맞아 ‘재난과 정신건강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날 컨퍼런스는, 지난 1년 동안 심리지원단의 성과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재난 심리지원 사업이 얼마나 취약했는지 고백하며 반성하는 자리에 가까웠다.

세월호 사태에 있어 처음부터 심리지원이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사고가 나자마자 ‘범부처 심리지원단’을 구성하며 재빠른 대응책을 마련했었다. 또 피해자와 유가족 및 지역주민 등을 위한 ‘통합재난심리지원단’도 마련한다고 거의 즉시 발표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원들 170여명도 안산지역으로 달려가 심리지원을 했다. 당시 지원 나온 한 정신과 교수는 이런 복지부의 대응을 보며 ‘건국 이래 최초의 일’이라며 칭찬했다.

하지만 체계화되지 못한 국내 심리지원 시스템 하에서는 봉사자들의 노력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심리지원을 총괄할 컨트롤 타워도,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실용적인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지적되자 국회의원들은 정신보건법을 개정해 ‘국립트라우마센터’를 설립해 중앙 컨트롤 타워로 삼자며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여야가 충돌하면서 사실상 백지화된 상태다. 중앙 컨트롤 타워가 없다보니 실무적인 매뉴얼 작성 작업도 자연스레 요원해졌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큰 재난을 계기로 더 철저히 대비책을 만든 경우가 많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1995년 한신대지진 이후 정신적 트라우마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의료진 및 봉사자들을 위한 상황별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놓았다. 지금은 어떠한 재난 상황에도 거의 즉시 배포가 가능하도록 한 상태라고 한다. 실제로 동일본 대지진 때에는 불과 3일 만에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필요한 곳에 매뉴얼을 널리 배포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9·11 테러를 겪은 피해자를 14년째 심리추적 관찰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예정이라고 한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국민들에게 정신적 트라우마의 심각성을 크게 부각시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들은 그 사실을 잊고 있는 상태다. 많은 정신과 전문의들은 ‘세월호가 남긴 트라우마는 장기적인 심리지원이 필요하다’며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서 체계적인 심리지원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당장 국립트라우마센터를 만드는 것이 어렵다면, 현재 세월호 관련해 심리지원을 하고 있는 의료기관만에 대해서라도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학회 등을 통해 재난상황을 대비한 매뉴얼 준비를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세월호가 남긴 귀중한 교훈들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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