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 '전공의특별법, 세금은 내기 싫고 복지는 원하는 격' 지적


▲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김형진 기자

[청년의사 신문 정승원]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입법 추진 중인 ‘전공의의 수련 및 근로기준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전공의특별법)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대전협은 그동안 전공의들이 ‘염전노예’ 취급을 받으며 일해 왔다며 전공의특별법을 통해 수련시간을 최대 64시간으로 단축해 지금보다 전공의들의 노동 강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대한병원협회는 전공의특별법안에 포함된 별도의 수련평가기구 마련과 관련해 수련기관 반납까지 언급할 정도로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전공의특별법은 단순히 전공의들과 병원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전공의를 교육하는 교수와 그들로부터 교육을 받는 전공의들 사이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학병원 교수들은 전공의특별법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안’(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정) 개정부터 연착륙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불어 근무시간 단축은 요구하면서 대체인력으로 PA(Physician Assistant) 도입에는 반대하는 것을 두고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점차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인 것은 분명한데,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취지는 동감하지만 현실성 결여”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이 추진하는 전공의특별법 초안에는 현재 주당 최대 88시간으로 정해져 있는 전공의 근무시간을 당직 포함 최대 64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로는 주당 수련시간을 40시간이 넘지 않도록 하되 추가수련 등의 교육 목적으로 24시간까지 수련시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현행 36시간을 초과할 수 없는 연속 수련시간도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30시간을 넘을 수 없도록 했다. 또한 주당 1일(24시간) 이상 유급휴일을 주고 연장수련이나 야간(오후 10시~오전 6시) 휴일 수련 시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하도록 했고 별도 수련평가기구 설립에 대한 내용도 있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 교수들은 전공의특별법 추진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전공의특별법이 국내 의료계의 수련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A교수는 “전공의특별법은 우리가 가야 할 이상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련시간을 80시간으로 줄이는 작업부터 해야 할 때다”며 “영국의 경우는 주당 수련시간이 40시간대다. 하지만 영국이 40시간이라고 해서 우리도 40시간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의 주당 수련시간이 줄어들면 전체 전공의 수련기간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이러한 변화를 전공의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영국에서는 주당 40시간대 수련을 받아서 5년 내에 수련을 마치지 못한다”며 “국내 전공의 수련시간을 80시간대로 줄여도 퀄리티가 떨어질 텐데 그보다 더 줄이면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전공의특별법에서 정한 64시간의 수련시간은 물론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안의 80시간 근무도 현장에서는 소화하기 버겁다는 지적도 나왔다. 양산부산대병원 B교수는 “보건복지부에서 마련한 수련규칙에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이 80시간으로 돼 있는데, 미국에서도 환자 안 보는 병원의 전공의 수련시간이 80시간”이라며 “환자 수가 많은 한국에서 80시간을 넘어 64시간까지 수련시간을 줄이는 것이 가능하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시행 중인 전공의 수련규칙은 전공의들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반영한 것”이라며 “수련시간을 더 줄이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현실성이 없고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전공의특별법에서 주당 전공의 수련시간을 최대 64시간(40시간+24시간)으로 정한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의 특성상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근무시간이 정해진 것보다 길어질 수 있는데 이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충북대병원 C교수는 “수련시간을 제한해 버리면 그 시간이 지나면 수술하다 말고 나가라는 이야기인가. 환자 상태가 위급하다면 전공의뿐만 아니라 교수도 병원에 남아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맞다”며 “(근무시간 상한은) 수당으로 보상해야 할 문제이지, 시간을 한정하는 것은 스스로 전문가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줄어드는 수련시간이 전공의가 해당 진료과목에 전문적 지식과 술기를 갖춘 전문의로 성장하는 것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대병원 고위관계자는 “전공의특별법에 정해진 시간만 수련을 받고 일을 해서 한 명의 독립된 전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우려했다.

고려대의료원의 모 교수도 “지난 10년간 전체 병원들의 병상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러나 의사 숫자는 늘지 않았다”며 “구조적으로 전공의 수가 부족하도록 해놓고 전공의 근무·수련 조건을 맞추라고 하면 맞출 수 있는 병원은 없다”고 한탄했다. 그는 “전공의특별법대로라면 앞으로 1년차 전공의 외에 2~4년차도 모두 당직을 서야 한다. 그런데 각 연차가 모두 당직을 서도 안 되는 진료과도 있다”며 “결국 전공의 인력을 메우려면 의대생 수를 늘려야 하는데, 현실적이지 않다”고 했다.

“전공의는 피교육자인 동시에 노동자”

전공의특별법이 지나치게 피교육자로서의 전공의 처우개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전공의는 지도전문의의 교육을 받는 피교육자인 동시에 병원에 소속된 의료 인력인 노동자인데, 전공의특별법은 전자 쪽에만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충남대병원 고위관계자는 “수련기간 동안 전공의들에게 의사로서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의무감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한데 (수련시간을 단축하면) 그런 것 없이 의료 기술만 가르치게 된다”며 “전공의특별법이 내용대로 추진되면 전공의들에게 책임지고 환자를 돌보는 부분이 모자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공의의 업무 중 어디까지가 수련에 해당하고 어디까지가 근무인지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공의는 업무의 특성상 수련과 근무가 혼재돼 있는데 ‘수련시간’에 대한 정의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고위관계자는 “논문을 쓰거나 연구를 하는 것은 근무로 봐야 하나 아니면 수련으로 봐야 하는가. 수련과 근무를 분명히 분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충북대병원 C교수도 “전공의는 노동자인 측면과 피교육자 등 신분이 두 가지다. 주 40시간 노동을 이야기하는 것은 노동자의 권리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이 40시간 동안은 일만 해야 하며 수련은 따로 받아야 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대전협은 전공의 입장을 얘기한다고 하지만 전공의특별법대로라면 수련 받을 권리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수련을 중심으로 하면 왜 전공의를 쓰나”라며 “그런 논리라면 수련된 의사를 고용하면 된다. (수련시간이 줄어든다면) 전공의들은 일하고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실습하는 것에 대한 실습비를 내야 한다”고 했다.

세브란스병원 D교수도 “전공의특별법은 전공의들이 주당 40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하고 나머지 시간은 별도인력을 고용해 야간 근무를 시키라고 한다. 그렇다면 교수들 입장에서는 교육에 대해 실습비를 지불하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전공의들, 권리만 외치고 책임은 안 진다?

교수들은 전공의특별법이 현실성이 없다고 하는 또 다른 이유로 전공의들이 권리만을 주장하고 손해는 안 보려고 한다는 점을 꼽는다. 현재 전공의들이 누리고 있는 권리들은 내려놓지 않으려고 하면서 수련시간 단축이라는 실익만 챙기려고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고려대의료원 산하의 한 병원에서는 입국한 전공의들이 교수에게 ‘전공의 수련규칙을 준수하겠다’는 내용의 각서 작성을 요구하여, 교수들과의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사건(?)도 발생했었다.

여기에 그동안은 전공의 1~3년차에 주 100시간이 넘는 근무를 하더라도, 4년차에 전문의 시험 준비를 위해 최소 3개월 이상의 시간을 관행적으로 수련과 근무에서 제외해줬다. 하지만 전공의들의 수련시간을 줄이고자 한다면 이러한 관행을 타파해야 하는데 과연 전공의들이 이에 대해 동의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교수들의 주장이다.

세브란스병원 D교수는 “전공의특별법대로 수련시간이 제한되면 그동안 시험 준비라는 명목으로 관행적으로 교육과 근무에서 제외된 일이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전공의들도 이러한 방향에는 반발하고 있지 않나”라며 “복지는 누리고 싶은데 세금은 내기 싫어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세브란스병원은 현행대로 80시간 근무시간 상한에 맞춰 수련환경 개선 작업을 추진 중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D교수는 “외국에 맞춰 80시간 근무상한을 추진하는 것도 ‘한국이 왜 노르웨이 수준의 복지제도를 갖지 못 했나’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한국에서 실현 가능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죽을 맛’인 외과, 대체인력 지원 호소

전공의 수련시간이 최대 64시간으로 제한되는 것에 대해 외과 계열의 고민은 더욱 심각하다. 기존 40시간을 주 5일로 계산하면 하루 8시간 근무가 되며, 전공의특별법상 최대 수련시간인 64시간도 주 5일로 환산하면 하루 12.8시간 근무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수술이 많은 외과의 특성상 이러한 시간으로는 제대로 된 수련이 이뤄질 수 없다는 설명이다. 서울아산병원 외과 E교수는 “외과의 경우는 40시간 수련이 불가능하다. 수술에 따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는데 40시간으로는 답이 없다”고 토로했다. 전공의특별법에서 정한 최대 수련시간인 64시간도 마찬가지다. E교수는 현행 80시간(최대 88시간)의 근무시간 상한도 외과에서는 시행이 어렵다고 했다. 또한 이러한 상황은 서울아산병원뿐만 아니라 다른 빅5병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E교수는 “지금대로라면 서울아산병원도 어렵다. 우리 병원도 장기이식 등의 수술이 있으면 전공의 수련시간을 맞추는 문제 때문에 전공의가 제대로 수술에 참여를 못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교수들 사이에서는 전공의 수련시간 단축을 위해 대체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는 외과를 중심으로 간호사들이 PA(Physician Assistant) 역할을 하고 있지만 대전협과 의협은 강력하게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교수들은 PA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근시안적 사고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E교수는 “대체인력이 분명 필요하다. 전공의들이 수련기간 단축으로 휴식을 취하는 상황에서 PA 없이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많다”며 “지금 PA 반대를 외치고 있는 전공의들도 전공의 수료를 하고 나서 나가면 입장이 바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아산병원뿐만 아니라 서울대병원 외과도 PA뿐만 없으면 수술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PA가 아니더라도 비용이 발생하기는 마찬가지다. 입원환자 전담 전문의인 호스피탈리스트(Hospitalist)의 비용은 병원 입장에서는 더욱 부담이다. 이에 교수들은 전공의 수련시간을 제한할 경우 대체인력에 대한 비용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충남대병원 고위관계자는 “국가가 재원을 만들고 수련과정에 대해 보건의료인력 양성 차원에서 지원 제도를 만들면 병원 입장에서는 전공의를 수련 중심으로 교육하는 방안에 대해 더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며 “병원이 전문의를 고용해도 운영을 무리 없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공의들도 ‘기대 반 우려 반’

대전협이 전공의특별법 제정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것과 달리 개별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이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이들은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수련시간 64시간에 대해서는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표했다. 세브란스병원의 한 전공의는 “외과 쪽에서는 64시간으로 수련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전협에서도 64시간에 대해 전공의들의 동의를 구하거나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한 적이 없었다”며 “병원에서 전공의나 교수들이 현행 80시간 근무시간 상한에 맞추려고 노력 중인데 64시간이라는 수치가 나와서 내부적으로 혼란이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모 전공의도 “64시간으로 수련시간을 줄이면 전체 수련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지 의문”이라며 “64시간으로 줄어드는 것이 과연 좋은지 모르겠다. 80시간 수련시간도 지켜지지 않는데 마치 바겐세일 하듯, 흥정하듯 수련시간을 정한 것 같다”고 우려했다.

전공의 수련시간 단축에 따른 대체인력에 고용에 대한 비용 지원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김장우 회장은 “전공의 근무공백을 채우는 데 정부의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 이것이 (전공의 수련시간 단축)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유일한 길이라고 본다”고 했다. 김 회장은 “전공의 노동시간이 줄어든다고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며 “전공의 수련기간 동안 이수해야 할 교육항목을 각 학회 중심으로 정하고 이를 정확히 시행하는지 감시하고 평가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수련병원에 제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수련환경 평가기구 독립은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전공의특별법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다. 법안 초안이 공개됐고 각계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가 한 차례 개최됐을 뿐이다. 하지만 초반부터 병협과 교수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으며 일부 전공의들 사이에서도 실현 가능성에 의문 부호가 달린다. 이런 상황에서 전공의특별법이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시행계획을 담아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한다. 이제부터는 서로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병원, 교수, 전공의, 정부가 모여 함께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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