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과의 ‘희노애락’, <라이브 진료실>로 담아낸 삼성서울병원 성지동 교수


[청년의사 신문 김은영]

[청년의사가 만난 사람]

얼굴은 아니라지만 필력만큼은 의료계 ‘Top5’로 손꼽히는 이가 있다. 바로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성지동 교수다. 그의 필력은 이미 PC통신 시절 ‘하이텔’에 ‘재즈맨(Jazzman)’으로 올린 글을 통해 입증되기도 했다. 그의 글을 성지순례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도 꽤 됐다고. 그 시절 하이텔에서 재즈맨을 모르면 간첩이었다니 말이다. 그런 그가 생애 첫 신간 <라이브 진료실>을 들고 나타났다.

이번 신간에는 그의 전문영역인 고혈압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그저 그런 질환 설명서를 상상했다면 아마 책을 펴든 순간 깜짝 놀랄 것이다. 생생한 환자들의 이야기가 책장을 쉬이 놓지 못하게 할 테니 말이다. 최근 성 교수가 <라이브 진료실>을 들고 청년의사라디오 ‘나는의사다’에 출연했다. 책 속에 녹아 있는 환자와 질환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8년째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이야기까지 펼쳐보였다.

라이브 진료실을 탄생시킨 ‘3분 진료’

그가 <라이브 진료실>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의 ‘3분 진료’ 현실에 있다. 질환 치료를 위해 환자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3분 진료 현실에서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진료실에서 못 다한 얘기를 책에 담아냈단다.

“고혈압은 환자 교육을 잘 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그렇지만 진료실에서 얘기를 다 못하죠. 3분 이상 환자를 볼 수 없는 우리네 진료현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환자에게 해줄 얘기는 많은데 해주지 못하니 이 내용을 책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쉽고 재미있게 고혈압을 다룬 책을 꼭 쓰겠다고 결심 한 순간은 바로 서점에 가서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고혈압 책 쓰려고 서점 갔다가 오히려 혈압 오르는 줄 알았다고. 시중에 판매되는 고혈압 서적들 중 정확한 지식을 잘 전달한 책도 있었지만, 부정확한 얘기들을 뻔뻔하게 주장하고 있는 책들도 부지기수였단다.

“이 책을 쓰기 전 굉장히 많은 고혈압 책을 찾아봤어요. 크게 두 가지 분류로 나뉘는데요. 정확한 지식을 잘 전달하는 책들은 재미가 없는 게 문제고, 다른 하나는 ‘혈압약 먹지 말아라’ 같은 정말 자극적인 말들을 해요. 저자들이 알면서도 이런 말을 할까 화가 났죠.”

그는 혈압약을 복용하지 않고도 혈압을 조절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혈압약 복용 없이 혈압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10명 중 1명도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책들이 무책임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혈압약을 복용하지 않고 혈압을 조절하기란 현실적으로 정말 어려워요. 저도 가끔은 환자들에게 약을 끊고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혈압을 조절해보지 않겠냐고 권하지만 무작정 혈압약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 있게 얘기하는 것만큼 무책임한 건 없습니다. 오히려 환자에게 좌절만 안겨줄 뿐이지요.”

고혈압 오해를 깨부수다

책은 고혈압에 대한 단단한 오해를 깨부수어 준다. 한 번 약을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할지, 20대인데 벌써 혈압약을 먹어야 할지, 약으로도 조절 안 되는 고혈압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임신 초기 혈압약을 복용한 임산부의 고민 이야기까지. 진료실 의사에게 미처 듣지 못했던 혈압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망라돼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환자들이 혈압약에 대한 오해를 먼저 풀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많은 환자들이 혈압약은 나쁘다고 오해를 해요. 그렇게 되면 정말 치료를 위한 답이 안 나오죠. 항상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약은 좋아서 먹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하면 써야 한다고요. ‘좋다, 나쁘다’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약을 안 쓰고 혈압 조절을 해보려고 하면 정말 어렵거든요.”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술술 잘 읽힌다는 것이다. 아마도 고혈압 진료를 하면서 환자들과 함께 한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그대로 풀어 놓은 것이 소설책 같이 재미있게 느껴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혈압 조절이 힘든 환자가 엉엉 울며 하소연 하던 통에 30~40분 진료가 밀린 적도 있다고.

“혈압 약을 처방해 줬는데 혈압 조절이 잘 안 되는 환자였어요. 그간 별 일 없었냐는 안부질문에 왈칵 눈물을 쏟으며 남편과 사이가 별로 안 좋다며 하소연하는 거예요. 사실 어떤 말이든 위로하려고 아무 말이나 던졌던 기억이 나요. 아마 참지 말라고 했던 것 같아요. 다음 번 왔을 땐 표정이 나쁘지 않아 해피엔딩이지 않을까 해요. 어떻게 됐는지 묻진 못했거든요.”

8년째 자전거 타고 출근하는 남자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를 벌써 8년째다. 네이버 ‘자출사(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회원이란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으로 이사한 후 횟수는 줄었지만 여전히 열심히 패달을 돌린다고. 그가 사는 부암동에서 삼성서울병원이 있는 일원동까지는 25km 가량 먼 거리지만 왕복으로 내달리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환자들에게 운동하라고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기 때문.

“환자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끝없는 폭풍 잔소리를 해야 하는데 정작 제가 운동을 안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운동 열심히 하라고 마음 놓고 얘기 하려면 제가 하는 수밖에요. 부암동에서 일원동까지 거리가 상당해 요즘은 일주일에 2번 왕복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집이 산동네이다 보니 출근할 땐 마음의 부담이 적은데 퇴근할 땐 아득해져요. 산꼭대기를 기어 올라가야 하니. 하하.”

그렇다고 환자들에게 꼭 자전거를 추천하지는 않는단다. 운동은 개인의 형편에 맞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자전거 타기 자체가 유산소 운동이에요. 운동으로선 훌륭한 운동이죠. 그래도 운동은 개인의 형편에 맞게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자전거가 차도에서 타야하는 부담도 있어서 모든 이들에게 권하지는 않아요. 개인의 취향이나 여러 가지 것을 고려해서 형편에 맞게 해보라고 권하죠.”

마지막으로 환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생활습관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사실 몰라서 못 지키는 것은 아니에요. 술 많이 먹지 말라. 싱겁게 먹어라. 운동해라 등의 상식적인 얘기에요. 그런데 이를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려면 걸림돌이 많거든요. 그럴 땐 의사와 상의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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