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양금덕] 몸속에 강력한 합성 약물(CPH4)을 넣은 채 운반자 역할을 하게 된 루시(스칼렛 요한슨 분)는 납치 도중 폭행으로 약물이 몸속으로 퍼진다. 그로 인해 뇌의 모든 감각이 살아난 그녀는 납치범을 제압하고 인근 병원 수술실에 진입한다. 총을 든 그녀는 수술받고 있는 환자를 쏴 죽이고 그 자리에 앉아 의사에게 총구를 겨누며 당장 뱃속의 물질을 꺼내라고 협박한다.

이는 최근 개봉된 영화 <루시>의 한 장면이다. 잠든 뇌를 깨운다는 ‘CPH4’라는 마약물질은 가짜이며 수술실에 총을 든 민간인이 들어오는 것 역시 영화이니 가능한 일이다.

경찰과 민간인이 서울 강남의 한 병원 수술실에 들이닥친 사건을 이와 비교하면 무리일까? 물론 사람이 죽지도 총을 든 이도 없었지만, 수술 집도의가 느낀 공포와 당혹감은 영화 못잖았을 것이다. 당시 이 의사는 수면마취 상태의 27세 여성의 코 수술을 집도하고 있었다.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언론은 경찰과 공단 직원이 수술실을 오가며 마약대장, 집기류 소독여부를 물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수술이 8분여간 중단됐단다.

본지 또한 이 사건의 정황을 정확히 파악코자 서초경찰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부, 서울지역본부 등과 접촉을 시도했다. 수술실에 난입(?)한 당사자들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지는 못하고, 그들을 관리·감독하는 이들에게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는 말을 들었다.

이들은 되레 기자에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일이냐”며 “어떻게 일반인이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겠냐. 수사관들도 막무가내로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취재결과 경찰의 압수수색에 십여명의 보험사 직원이 동행했고, 이 중에는 병원을 신고한 당사자도 포함돼 있었다. 경찰은 수술이 임박한 환자의 진료차트까지 압수해갔다. 의사가 경찰서까지 찾아가 차트를 되돌려달라고 했는데, 직접 복사하라며 차트를 건네준 건 경찰이 아닌 보험사 직원이었다고 한다.

수술실 무단침입에 경찰 사칭까지, 논란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경찰이 이례적으로 해명자료를 배포하기도 했지만 되레 의혹과 반감만 부추기고 있다.

경찰의 주장대로 이 병원이 실제로 보험사기와 연루됐을 가능성도 있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보험사기를 잡겠다고 수술실, 그것도 수술이 진행중인 수술실에 민간인까지 대동하고 들어가 환자의 인권과 의사의 진료권을 짓밟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경찰관, 그보다 높은 사람이라고 한들 수술실에는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던 공단 관계자,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던 경찰서 관계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상식’이 통하는 수술실 환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진실규명과 재발방지를 약속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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