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사회 참여로 구색 맞춰…향후 증가 여부 관건인센티브·수가 등 해결과제 산적…만족도 높으면 원격의료에 힘 실릴 수도

[청년의사 신문 곽성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보건복지부 주도 원격모니터링 시범사업’이란 형태로 오는 9월 말부터 시작된다.

대한의사협회는 여전히 반대 입장을 밝히며 강행 시 투쟁체 가동이라는 강경 입장을 밝혔지만 일부 지역의사회가 참여하기로 하면서 복지부가 최소한의 명분은 얻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참여 의료기관과 환자 수가 적고 참여 의료기관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 아직 산적한 문제가 많아 향후 시범사업이 어디로 흐를지에 대해서는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국민들이 원격모니터링과 원격의료에 대해 경험하고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생각보다 빠르게 의료계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 산적

복지부가 이번 시범사업을 시작하면서 공식적으로 밝힌 세부 과제는 ▲원격모니터링의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 ▲원격진료의 안전성 검증 ▲원격모니터링 등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 개발 ▲원격의료의 기술적 안전성 검증 등이다.

검증은 평가위원회를 구성해 진행하고 위원회는 고혈압·당뇨 임상 전문가와 방법론 전문가, IT전문가 등을 포함한 10인 내외로, 시범사업 참여 지역의사회 추천 등을 통해 구성할 계획이다.

평가지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복지부가 예로 든 지표를 살펴보면 ▲기기적 안전성(네트워크, 정보보안 등) ▲임상적 안전성(재이용률, 건강상태 악화 여부 등) ▲임상적 유효성(목표혈압 도달율, 당화혈색소 변화량 등) 등을 점검하게 된다.

시범사업 기간은 9월 말부터 오는 2015년 3월까지 6개월로 발표했지만, 세부 과제별로 진행상황에 따라 착수와 종료시점이 조정될 수 있다. 구체적인 시점에 대해서는 ‘9월 말’이라는 것 외 정확한 날짜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같은 점들을 종합해 볼 때 확정된 것은 참여기관 수와 참여환자 수, 대략적인 시작과 종료시점 외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된다. 좋게 말하면 참여기관과 협의해 유연하게 풀어나가겠다는 뜻으로 들리지만, 한편으로는 계획없이 ‘일단 시작하고 보자’는 식이 될 수도 있다.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인센티브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참여 의료기관이 6곳인 점을 감안하면, 보건소 5곳을 포함하더라도 한 개 의료기관 당 적어도 100여명의 실험군과 대조군 환자를 관리해야 한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누구도 해보지 않았던 진료를 한다는 측면에서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도 있다. 생각보다 시범사업에 쏟아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클 수밖에 없고 이는 자칫 잘못 진행될 경우 의료기관이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복지부는 참여 의료기관과 인센티브에 대해 논의 중이며 향후 시범사업에 사용될 원격모니터링 수가가 확정되면 이를 적용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참여 의료기관과 정부 사이에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이는 시범사업의 잡음으로 작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적은 규모, 시범사업 발목 잡나

한편, 시범사업에 있어 더 큰 문제는 의료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정책의 안정성과 유효성을 판단하는 시험대로서는 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전국에서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 수는 보건소를 포함하더라도 고작 11곳이다. 이는 향후 시범사업이 복지부 바람대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고 하더라도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10년 의료계를 뜨겁게 달궜던 의약품처방조제지원시스템(DUR) 2차 시범사업의 경우 제주특별자치도 전역, 모든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진행된 바 있다.

DUR 시범사업이 의약품 처방·조제와 관련한 시범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대규모로 진행된 상황에서 국내 의료에 ‘원격’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중요한 시범사업을 고작 11개 의료기관 1,200명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의협이 아직까지 원격의료와 원격모니터링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의협의 칼날은 시범사업의 적은 규모로 향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복지부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시범사업 시작 후에도 의료기관이 참여할 수 있는 문이 열려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초 복지부와 의협이 이뤘던 의-정 합의에서 시범사업 기간이 6개월로 정해졌다고는 하지만 기간이 충분치 않은 점도 적은 규모 못지않은 불안 요소다.

실제 복지부는 이같은 방안을 공표하는 자리에서 언론들과의 질의응답 시 짧은 시범사업 기간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원격의료와 원격모니터링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목적에 맞게, 평가지표와 평가방법 등 목적에 맞게 모형을 충분히 구현하고, 시범사업 진행 경과에 따라 지속 실시 여부를 검토하면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이 복지부 입장이다.

이는 6개월로 계획하고 있지만 시범사업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뜻으로, 복지부 스스로도 6개월이 짧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범사업 성공 시 의료 패러다임 바꿀 듯

수많은 우려 속에서 시범사업이 시작되지만 성공할 경우 그동안 정부가 추진했던 어떤 정책보다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의료계는 시범사업 성공 시 ‘원격’을 이용한 의사-환자 간 진료를 수용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원격을 통한 의사-환자 간 진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고, 일반 국민들이 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다면 여론의 쏠림을 막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시범사업에서 정부는 참여환자에게 장비는 물론 임상검사비와 진찰료까지 지원하고 나선다.

한달에 한번, 많으면 세달에 한번 의사를 접하던 만성질환자가 비록 원격이지만 많게는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의사의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경험한다면 거부감을 느끼는 환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향후 시범사업이 아닌 실제 원격진료와 원격모니터링이 시작될 경우 본인부담금과 장비비라는 변수가 작용할 수 있지만, 그 금액이 크기 않다면 환자들도 수긍하고 넘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시범사업 상공은 의료기기업계에도 큰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정확히 어떤 장비가 어떤 식으로 사용 될지 알 수 없지만 원격을 통한 진료가 현실화되면 기기 사용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복지부도 시범사업에 사용할 장비와 이 장비를 제공하는 업체에 대해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파급력이 크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이미 원격모니터링과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의료계 내에서도 심각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자칫 지금까지처럼 원격을 이용한 진료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만 반복하다가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을 수도 있다.

정부의 원격모니터링 시범사업 강행으로 국민들이 원격모니터링 시범사업을 직접 경험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도 의료계가 절대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수용할 수 없다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의료계가 생각하는 원격의료의 폐해에 대해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등의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범사업 시작으로 일반 국민들이 원격의료에 대해 경험하는 순간, 시행여부는 국민들의 판단 여부에 달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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