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근의 지구생각


[청년의사 신문 이명근]

아프리카 하면 부족 간의 끊임없는 내전으로 주민들은 굶주리고, 어린 아이들은 뼈가 드러나도록 마르고 배만 불룩한 채 유난히 큰 눈으로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장면을 주로 연상한다. ‘검은 대륙’으로 상징됐던 미지의 대륙 아프리카는 글로벌 시대를 맞아 많이 개방됐으나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발전이 더딘 미개척의 땅이다.

유럽인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 아메리카 대륙의 플란테이션 농장으로 강제 이송됐던 아프리카인들은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어 지금까지도 어려운 생활고를 겪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 내 상존하던 종족과 문화, 종교적 차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오직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던 서구 열강세력의 분할정책은 아프리카 부족들 간의 정치적 갈등뿐 아니라 종교적인 갈등을 야기했다. 그 결과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된 현재에도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은 제국주의의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서구 제국들 사이의 식민지 쟁탈전이 한창이던 1913년,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중앙아프리카의 가봉지역으로 의료선교 봉사활동을 떠났다. 이러한 슈바이처의 용기 있는 선행은 의료선교활동에 관심을 두었던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귀감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는 ‘아프리카의 성자’로 불리며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어린이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그는 의료선교활동의 동기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역설한 적이 있었다.

“당신이 선교에 대해 말하는 지금, 나는 이러한 메시지를 전해 주고 싶다. 우리는 신문에서 읽은 우리의 모든 참혹한 악행들에 대해 참회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정글 속의 어둑한 침묵에 가려져 있어 신문지 상에 보도된 적이 없는, 우리가 저지른 여러 범죄들에 대해서도 참회해야만 한다.”

필자가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선배 의사 중에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활동을 열정적으로 펼쳐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분이 있다. 이 분은 10여 년 동안 그 곳에 체류하며 말라리아, 콜레라, 장티푸스 등의 풍토병을 치료하고 그 외의 외과질환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현지 주민들을 수술해 주는 등 매우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셨다. 최근 그 선배님과 만날 기회가 있어 해외의료봉사를 주제로 가벼운 담소를 나누다가 뜻밖의 말을 들었다. 선배님은 현지에서 오랜 기간 의료봉사활동을 수행하면서 보람도 많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회한도 깊어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것이다. 이미 환갑에 가까운 연세에 접어들어 고국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말씀은 충분히 이해가 됐지만 이야기를 계속 나눈 결과 회한의 실제적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배님은 아프리카 현지에서 고군분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치료와 시술, 약품의 처방까지 모든 진료행위를 혼자서 도맡아 하는 열성을 발휘했다. 결국 당신 홀로 의료봉사활동의 전 영역을 관할하고 그 업무를 직접적으로 수행하다 보니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현지의 의료사정이 악화될까 두려워 현장에서 선뜻 떠나오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한국인들에 의해 이뤄지는 장기 해외의료봉사 활동은 다른 개발지원 사업에 비해 활성화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순수한 열정과 사명감을 갖고 현지에 파견된 의료인들은 현지의 열악한 사정이 안타까워서 눈앞의 환자들을 돌보는 데만 관심을 집중하게 되고,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의료봉사활동의 계획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많게는 하루 백명 이상의 환자들을 진료하는 의료인들은 정작 자신의 몸은 돌보지 못해 과로로 인해 일찍 세상을 뜨게 되는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돌발변수가 발생하여 예기치 않게 봉사현장을 떠나게 되는 일도 발생한다.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면 본인의 비극이기도 하지만 현지의 의료사정 역시 순식간에 악화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의료 봉사자들은 의료활동을 수행하면서 무엇보다도 현지에서 의료보조원을 양성하고 현지 의사들과 돈독한 협력관계를 맺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 국제보건에서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지속성과 현지 의료인 역량강화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의료봉사활동에도 가장 잘 들어맞는 말이다. 지속가능한 의료봉사를 위해 현지 외과 의사들과 긴밀히 협력하여 그들에게 의료 매뉴얼을 표준화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수술 관련 의학적 기술을 전수해야 한다. 한국의 의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내가 무엇을 직접 해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지역사회의 역량을 높이고, 스스로 의료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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