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우리는 지금 MBA로 간다보통 인터뷰는 이렇다. 예의바르고 스스럼없는 태도로 기자는 묻고, 취재원은 대답한다. 때로 기자는 ‘마지막으로 (~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이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 답답했을 상대에 대한 배려일 때도 있지만, ‘아무 거나 하나만 더 걸려라’ 하는 무책임한 투망질일 때도 있다. 물론 모든 인터뷰가 그런 건 아니다. 상대가 언뜻 내보인 속내에 흐뭇해 돌아나올 때도 있고, 기자가 대책 없이 무장해제 당해 있는 말 없는 말 다할 때도 있다. 그럼 이번에 만난 세 의사와의 만남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인터뷰를 청하기 위해 건 전화에서 “우리 그날 만날 건데, 오세요.”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말하자면 자기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인터뷰도 겸사겸사 해치우겠다는 심산이다.

예상대로 인터뷰는 엉뚱한 데로 빠지다가 제자리 찾기를 반복했지만, 애써 질문하지 않아도 서로 궁금한 점을 물어대는 이들과 보낸 한 시간 남짓은 도전이 즐거움이란 사실을 새삼 확인한 시간이었다.




모두 다르지만, 같은 한 가지

안성신, 배지수, 정승원. 세 사람은 미국 MBA과정에 입학하기 위해 곧 우리나라를 떠난다. 모두 다른 곳으로 흩어지지만 지금만큼은 세 사람이 ‘쉽지 않은 길을 택했다’는 동질감으로 묶여있는 듯하다. 나이, 성별, 현재 위치가 모두 다른 세 사람의 공통점은 연구실이나 진료실을 벗어나 좀더 큰 시스템에서 일하고 싶어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다른 분야에 도전해 보라는 권유를 받아왔다는 사실이다.

일테면 안성신 씨처럼 ‘넌 환자도 잘 보지만 병원 경영 같은 거 해도 잘할 거야’라는 말을 듣는다든가, 배지수 씨처럼 사람과 만나고 알아가는 것이 좋아서 정신과를 지원했다든가, 정승원 씨처럼 임상의사 역할에 진작에 실망하고 일찌감치 경영전략 컨설턴트 세계로 뛰어든 이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MBA 입학허가를 손에 넣기까지의 과정은 저마다 다르다. 펠로까지 마친 안성신 씨는 식구들을 설득하고 유학 결정을 내리기까지 하도 오랜 시간이 걸려서, 처음 MBA하겠다고 말했을 때 식구들 반응이 기억도 안 난단다. 올해 전문의를 딴 배지수 씨의 경우는 지도교수가 추천서를 써주고, 입학용 에세이는 정신과 동료들이 돌아가며 피드백 해줬다. 임상의사의 길을 오래 전에 떠난 정승원 씨는 MIT에 합격했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가 오히려 격려했단다. 의대를 졸업하고 컨설팅회사에 들어갔을 때는 그렇게 반대하던 분인데 말이다.

“처음에는 얘가 병원을 떠나 회사 다니더니 이제 공대까지 가는구나, 하셨대요. 공보의 마치고 컨설팅회사 들어갈 때 이미 절 포기하셨거든요.”

이어지는 폭소, 부모에 대한 미안함이 숨어있는 듯 편치 않은 웃음이다.

같이 떠나지만 모두 다른 선택

MBA과정을 밟기로 한 이유는 뭘까. 그것도 이제 조금씩 자리 잡을 시기에.

“대학원에서 의공학을 잠시 하게 됐는데, 공대 출신 프로그래머들이 10억 넘는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메디컬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더라구요. 그런데 의사들은 50만원 하는 MRI하나 찍는 것도 고민하잖아요. 전 큰 범위에서 시스템 메이킹을 하고 싶었어요.”

배지수 씨의 말은 병원 내 의사의 위치를 말해준다. 의료의 주체임에도 전문성이 의학에만 집중돼 있으니 실질적인 권한은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헬스케어 인더스트리 프로그램이 따로 있는 Duke대 The Fuqua School of Business로 떠난다.

안성신 씨도 마찬가지. 2000년 의사파업 당시 펠로를 막 마친 상태였던 그는 자리비운 전공의를 대신해 환자를 진료하느라 고생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것 외에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 많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안성신 씨가 가는 곳은 Universty of Chicago Graduate School of Business. 전통적으로 finance가 강한 곳이라 나중에 하고 싶은 실버 비즈니스를 위한 수업을 착실히 받을 수 있을 듯하다. 관심 있는 부분이 엔터프리뉴어십(entrepreneurship, 벤처창업정신 또는 기업가정신)이라 따로 지원했고, 운 좋게 장학금도 받게 됐다.

정승원 씨는 대다수 의사들이 병원 체계에 불만은 많으면서 아무도 행동을 보이지 않는 상황을 바꾸고 싶어 컨설팅회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의사라는 장점을 살려 제약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제약회사에서 일을 해보니, 좋은 약 하나 개발하면 환자 몇 백만 명을 살리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려면 좀더 국제적인 수준에서 일을 해야 할 것 같고, 세계 각국 사람이 모여 일하고 공부하는 MBA에서 수준을 더 높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이런 이유로 그는 테크놀로지를 개발하고 새로운 사업기회를 여는데 강점이 있는 MIT Sloan school of Management를 택했다.

인생에서 갖는 의미?

MBA가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될까. 자신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들은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글쎄요, 의사하기 불안해서 MBA간다, MBA해서 뭘 할 수 있나, 그런 것부터 생각한다면 그만두는 게 좋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MBA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노하우를 선택한 거지, MBA라는 타이틀을 위한 선택은 아닙니다.”

‘그래도 의산데 되지 않을까’라는 식의 안일한 자세로는 Top MBA 합격은 불가능하다는 것부터, 모두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이 모이는 곳이니만큼 그들이 가진 기본은 똑같이 갖춘 후에야 의사라는 게 장점이 된다는 사실까지, MBA를 준비하는 의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많다. 한해에 세 명이 떠나는 것은 처음인 만큼 자신들의 궤적이, 뒤따를 후배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지 생각하면 부담도 된다. 하지만, 그만큼 운신폭도 넓다는 생각이다. 어렵게 조달한 유학경비가 아깝지 않을 만큼 2년간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다.

떠날 때까진 잠정적 백수라고 자처하는 세 사람에게 계획을 물었다. 우선은 사람을 만나는 것. 신세진 사람부터, 친구들, 같이 떠날 사람들까지. 그리고 두 남자는 ‘혹시’ 몰라서 맞선도 몇 번 볼거란다. 정승원 씨의 대답이 특이하다.

“그 사이에 살을 좀 빼야 하지 않을까…”

“지금도 괜찮은데~, 몸매 괜찮았던 모양이지?”

“그렇지~.”

“잘 생각했어, 몸매가 중요해, 남자도.”

사람도 몸매가 중요하고 병원도 몸매가 중요하다. 군살 없이 효율성 있게 움직이면서 때로는 인간적인 냄새도 풍길 줄 알아야 한다. 세 사람이 2년간의 경영 트레이닝을 마치고 돌아오면 우리 병원들은 최소한 다이어트 할 준비는 돼있지 않을까.■

김민아 기자 licomina@

사진 김선경 기자 po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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