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유발성 급성호흡곤란증후군' 환자 이야기 〈미워도 다시 한번〉
심사위원단 “이야기 통해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경험했다”

의료계 신춘문예 ‘한미수필문학상’ 23번째 대상작으로 고려대안암병원 내과 정진형 전공의(3년차)의 〈미워도 다시 한번〉이 선정됐다.

우수상은 ▲수술방의 온도(박천숙 이샘병원) ▲창 밖에 핀 여름꽃은 당신인가요(안상현 동안미소의원 원장) ▲확률과 선택 (조동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조교수)에 돌아갔다.

장려상으로는 ▲평안입니다(강준원 충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 부교수) ▲우리들의 블루스(구본대 국제성모병원 신경과) ▲평양일기(김창근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천식알러지센터) ▲마지막 소원(박관석 신제일병원 원장) ▲이번엔, 제 차롑니다(박미희 도담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진료원장) ▲밤인사(박지욱 박지욱 신경과의원 원장) ▲반찬통과 테트리스(성혜윤 정신과전문의) ▲그녀의 신발(유새빛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각자의 파란만장(이동준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 소아청소년과 신상아집중치료실 전담전문의) ▲케세라세라(장준호 경인지방병무청) 등 총 10편이 선정됐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성석제 위원장(소설가), 장강명 위원(작가), 박혜진 위원(문학평론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성석제 위원장(소설가), 장강명 위원(작가), 박혜진 위원(문학평론가)

지난 12월 3일까지 진행된 제23회 한미수필문학상 공모에는 다양한 환자 이야기를 담은 수필 153편이 응모돼 10.9대 1이라는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심사위원단은 의사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며, 인생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평을 남겼다. 담백하게 환자와의 이야기를 풀어낸 고려대 안암병원 내과 정진형 전공의(3년)의 <미워도 다시 한번>을 대상으로 선정했다.

성석제 위원장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삶의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의 면면이 잘 드러나 있다. 치열하다. 진솔하며 애틋하다”고 심사평을 전했다.

장강명 작가는 “올해도 응모작들을 읽으며 고통을 마주하는 일, 생사의 경계에 서는 직업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올해도 어떤 작품을 선택해야 할지 몹시 고민스러웠다”며 “당선자들께 축하를, 낙선자들께는 위로를, 그리고 모든 응모자들께 감사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박혜진 문학평론가는 “병원은 저마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무대다. 심사에 참여하면서 어느새 의학수필의 독자가 되어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본지가 제정하고 한미약품이 후원하는 한미수필문학상은 환자와 의사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2001년 제정됐다.

대상에는 상금 1,000만원과 상패가, 우수상 3인에게는 상금 500만원과 상패, 장려상 10인에게는 상금 300만원과 상패가 각각 수여된다. 대상 수상자는 ‘한국산문’을 통해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다.

제23회 한미수필문학상 심사평

병은 삶을 변형시킨다. 달라진 삶을 엄습하는 건 우선 고통일 테지만 그러한 고통만이 가르쳐주는 진실이 분명히 있다. 삶의 잔인함이기도 하고 삶의 자비이기도 한 진실에 노출될 때 우리는 비로소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 병원은 저마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무대다. 환자는 그 무대의 주인공이고 의사는 그들의 변화를 지켜보는 화자이자 때로는 화자인 동시에 주인공이다. 의료 현장을 배경으로 한 수필이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심사에 참여하면서 어느새 의학수필의 독자가 되어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클리셰 앞에서도 의학수필 특유의 장르적 재미를 느낄 만큼 푹 빠진 독자가 바로 나였다. 23년 동안 축적된 의학수필의 미학적 성취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제23회 한미수필문학상에 응모된 글은 총 153편이다. 그중 본심 대상작은 29편으로, 예년과 비교해 색다른 형식으로 쓰인 글이 유독 많아 심사 과정이 더 즐거웠다. 무겁고 어두운 소재를 가볍고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경쾌한 터치로 풀어내는 글도 예년에 비해 증가했다. 이는 코로나를 지나면서 의료 현장을 휘감았을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가 오히려 밝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반대 급부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짐작케 만드는 변화였다. 비극이 사회를 관통할 때 최전선에서 그 비극을 겪어 낸 영역만이 도달할 수 있는 변화이기도 할 것이다.

대상작으로 선정된 <미워도 다시 한번>은 그러한 변화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산문은 시나 소설이 아니지만 좋은 산문에는 시적인 서정도 있고 소설적인 서사도 있다. 어느 고도비만환자에 관한 기억을 소재로 한 이 글은 2년 전 ‘비만 유발성 급성호흡곤란증후군’으로 중환자실에 들어와 두 달의 치료 끝에 60킬로그램을 감량하고 살아난 환자가 2년 만에 다시 중환자실에 입원하며 시작된다. 병원에 온 이유는 단 하나, 도로 살이 쪘기 때문이다. 글의 대부분은 18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환자가 CT통에 끼어서 들어가지 않거나 아무리 진정제를 투여해도 잠이 들지 않는 등 난감한 상황에 대한 생생한 묘사다. 다음 장면을 예상할 수 없는 긴박한 전개,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 등 소설적인 재미가 컸던 이 글은 산문의 미덕이 무엇보다 높은 접근성과 가독성에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재미를 넘어서는 통찰도 빛났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심각한 문제와 비만과 다이어트라는 일상적 소재의 만남 속에서 의료 현장은 비극적인 공간만이 아니라 삶이 잘 통제되지 않는 우리 이웃들이 오고가는 희비극의 공간으로도 인식된다. 병원이라는 무대 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에 조명을 비추는 글이었다.

우수상으로 선정된 작품은 <수술방의 온도>, <확률과 선택>,<창 밖에 핀 여름꽃은 당신인가요>이다. <수술방의 온도>는 솔직함이라는 매력이 돋보이는 동시에 의사가 환자가 되었을 때, 남편이 아내의 수술 집도의가 되었을 때, 아내가 남편의 환자가 되었을 때마다 변하는 입장을 차분하게 들려준다. 한 편의 짧은 글 안에 이토록 극적인 입장의 전환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과 그럴 때마다 바뀌는 심리적 변화의 다층적 부분들이 설득력 있게 깊이를 자아낸다. 인간이 성장한다고 할 때 그 성장의 방식이란 상상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넓어진다는 뜻일 테다. 환자가 되어 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필자는 능력 있는 의사에서 환자를 품은 의사로 거듭난다. 인생의 사건을 마주하고 넘어가며 기어이 성장하고 마는 담담하고 담대한 태도가 인상적인 글이다.

<확률과 선택>은 이지적인 분석과 감성적 호소가 균형 잡힌 글이다. 망막모세포종에 걸린 아이들의 안구적출을 하면서 경험하는 한계 상황과 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50%라는 확률은 사실상 어떤 의미도 없는 숫자 그 자체일 수 있다. 충분한 근거를 제공해 주지 못하는 확률 앞에서 환자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결국 후회를 불러올 선택을 하기도 하고 아무런 선택도 못한 채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 글은 환자에게 사실상 무의미한 확률 50%가 좀 더 의미 있는 근거가 되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 고민하고 제안한다. 의사 과학자의 역할과 필요한 약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독립적인 환경이 생겨날 때, 즉 “나의 존재가 선택의 이유”가 될 수 있을 때 확률로부터의 소외는 확률이라는 정보로 바뀔 것이라는 사유에는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자만이 다다를 수 있는 전문성이 엿보인다. 더불어 의사의 존재는 환자의 근거일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는 ‘모두’가 의사를 꿈꾸는 시대에 정작 의사의 직업의식에 대한 각성이 결여된 사회를 비춘다.

<창밖에 핀 여름꽃은 당신인가요>는 잊을 수 없는 환자를 회상하는 의사의 글이다. 위암과 복막전이라는 진단을 받은 환자의 주치의가 된 필자는 거듭거듭 불행의 메신저가 된다.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에게 추가로 발견된 유방암 얘기를 해야 하는 상황도 모자라 뇌 전이가 의심되는 상황을 거쳐 끝내 뇌 전이가 확인되는 과정을 거치며 필자는 불길한 소식을 전하는 전령의 역할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끊이지 않는 불행의 연쇄와 그때마다 저승사자가 된 기분을 느껴야 했던 곤란함 때문에 그 환자를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감당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농담을 건네던 밝은 환자는 병이 삶을 변형시킬지언정 삶을 가져갈 수는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의료수필은 병으로 인한 고통, 그로 인해 얻게 된 깨달음과 성장 말고도 특징이 하나 더 있다. 병과 죽음이라는 명백한 끝 앞에서도 인간은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끝까지 끌어안는 환자들을 기억하는 것은 독자들이 의학수필을 읽는 첫 번째 이유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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