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영탁 차국제병원·분당차여성병원장
글로벌 협진 네트워크로 진정한 '국제병원' 거듭날 것
"'K-MEDICAL' 걸맞게 국제 진료 관심과 지원 必"

'글로벌'은 쉬운 단어다. 조직과 단체와 기업이 저마다 세계를 외치고 세계를 지향한다. 이제는 'K'가 그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글로벌과 'K'는 쉽게 이름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그 이름만큼 '값'하기란 힘들다. 한국 의료도 'K-MEDICAL'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었지만 외국의 환자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이름이다. '국제 진료'라는 거대한 간판을 세워도 타국의 환자들은 "물어물어 겨우 병원을 찾아온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이름에 걸맞은 병원이 되겠다"고 나선 곳이 있다. 차병원이다.

분당차병원은 지난달 4일 국제진료센터를 확장 개소했다. 개소 2주 만에 하루 평균 10명이 넘는 외국인 환자가 센터를 찾고 있다. 1차 진료 역할이 큰 외국인 환자 진료 특성에 맞춰 가정의학과·내과를 중심으로 부인과·소화기내과·이비인후과·유방외과 등 진료과에서 의료진 10명을 구성해 시작했다.

분당차병원 국제진료센터는 '차국제병원'의 중심이기도 하다. 차병원 그룹은 지난해 7개 기관 국제진료센터를 통합해 국제병원을 설립했다. 전담 행정 조직도 별도로 두고 있다. 글로벌 마케팅부터 글로벌 케어 부서가 국제병원 산하다. 앞으로 조직을 넘어 실제 국제병원 건립도 구상하고 있다.

차국제병원을 진두지휘하는 김영탁 원장은 지난해 국제병원 설립과 함께 원장으로 취임했다. 차국제병원 목표는 분명하다. '국제병원'과 'K-MEDICAL'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병원이 된다는 것이다.

"'글로벌 병원' 소위 국제적인 병원은 전 세계 환자를 본다. 인종도 국가도 종교도 성별도 관계없다. 모든 환자를 보는 병원이야말로 시스템으로도 위치로도 진정 국제병원이라 할 만하다."

청년의사는 분당차여성병원에서 김 원장을 만나 차병원의 국제병원 청사진에 대해 들었다.

김 원장은 산부인과 전문의로 서울아산병원을 거쳐 분당차병원에서 30년 넘게 진료해 왔다. 차병원과 서울아산병원 국제진료센터 조직 설립에 앞장섰다. 분당차여성병원장으로 부인암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다.

청년의사는 김영탁 차국제병원·분당차여성병원장을 만나 국제병원 청사진을 들었다(사진 제공: 차병원).
청년의사는 김영탁 차국제병원·분당차여성병원장을 만나 국제병원 청사진을 들었다(사진 제공: 차병원).

- 차병원 그룹은 지난해 국제병원을 설립했다. 센터를 넘어 병원을 설립한 이유는.

차병원은 수도권 각 지역 거점에 병원이 있다. 환자가 원하는 일정과 지역에 맞춰 차병원의 진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국제 진료도 이 점을 살려야 한다고 봤다. 차병원의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진료 프로세스로 외국인 환자가 차병원 어떤 곳을 방문해도 일관성 있는 원스톱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통합 관리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규모 면에서도 국제병원이 중요했다. 차병원 전체 외국인 환자가 2023년 기준 약 1만7,000명이다. 이 정도 규모면 단지 센터를 넘어 병원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맡아야 한다. 병원 브랜드 이미지를 올리는 것은 물론 한국 의료 관광에 기여하는 기능적 조직을 갖춰야 한다고 판단했다.

- 단순히 외국인 환자를 진료한다고만 해서 국제병원이라 부르긴 어렵다.

그렇다. 환자의 신체를 넘어 정신과 문화까지 헤아려야 한다. 예를 들어 이슬람교 신자인 환자는 예배당과 할랄 푸드를 제공해야 한다. 환자 성별에 따라 의료진을 배치해야 한다. 단지 병원 시설이 편하고 통역이 잘 되는 것을 넘어서는 부분이다. 여기까지 도달해야 환자가 편안함을 느끼고 병원과 의료진을 믿고 자신을 맡긴다. 이때 비로소 전인적인 치료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병원이 생각하는 국제 진료이고 국제병원의 모습이기도 하다.

- 언어와 문화 외에 외국인 환자 진료에 어려움이 있다면.

외국인 환자는 '30분 진료'다. 환자 본인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상담하며 환자·보호자와 합의하는 의사결정 구조다. 국내 의료 환경에서는 쉽지 않다. '3분 진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의사 입장에서 말하게 된다. 의사도 환자도 여기 너무 익숙하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 환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1시간 대기했는데 진료는 3분이니 항의도 상당했다. 기본적인 수가 구조 개선이 필요한 지점이다. 의료진과 병원 차원에서도 간극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어렵다'고 하면서도 국제 진료에 앞장서 왔다.

아무래도 나는 원장이니까(웃음). 외국 연수 경험도 있고 언어도 무리 없으니 좀 더 개방적으로 환자를 대할 수 있던 것도 맞다. 분명한 건 구조적으로 외국인 진료에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라는 점이다. 모든 병원과 모든 의료진이 똑같이 외국인 진료를 할 수는 없다. 우리는 과별로 희망자가 외국인 진료를 담당한다. 선제적으로 외국인 진료 경험을 쌓고 전문성을 높이면서 우리만의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 분당차병원 국제진료센터만의 특장점을 꼽는다면.

해외에서 들어오는 환자를 위한 패스트 트랙 서비스다. 외국인은 체류 기간이 정해져 있다. 여러 차례 내원하기 어렵다. 따라서 검사와 수술을 최대한 빠르게 할 수 있는 서비스에 집중했다. 입국 전 원격협진으로 기본 문진이나 필요한 검사 처방을 미리 내린다. 환자는 입국하자마자 검사와 수술을 할 수 있다. 앞으로 현지 거점 센터를 키워 외국인 환자가 본국에서 1차 진료를 받을 기회를 더 늘릴 생각이다.

- 현지 거점 센터를 선정하는 기준이 따로 있나.

외국 즉 한국으로 환자를 보낼 역량을 갖춘 병원이 우선순위다. 규모나 접근성에서 이런 역량을 갖춘 병원을 찾고 있다. 몽골과 베트남에는 이미 '연결점'을 마련했다. 두바이나 아부다비에서도 연결점이 될 병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경제 상황도 중요하다. 국제 진료는 환자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경제적 여력이 있어야 어렵지 않게 진행 가능하다. 국가가 환자 진료비를 지원하는 시스템에서 환자는 필요한데 국가는 지원할 여력이 없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 동아시아와 중동에 이어 새롭게 목표하는 지역은 어딘가.

미국이다. 현재 그룹 차원에서 LA 할리우드 차병원(Hollywood Presbyterian Medical Center)을 보유하고 있다. 교민도 많고 미국보다는 '한국의 진료'를 원하는 환자도 많다. 우리 역량이나 수요 면에서 주요 도시에 거점 병원을 세울 수준이다. 이때 병원은 단지 환자를 국내로 이송하는 센터 역할에 그쳐선 안 된다. 병원 그 자체로서 기능해야 한다. 현지 거점 병원이 환자를 진료하고 병원 간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또 한국으로 환자를 보내 함께 진료하는 체계여야 한다. 이런 네트워크까지 염두에 두고 전체 국제 진료 시스템 선상에서 길을 모색하고 있다. 현지 병원들과도 계속 접촉 중이다.

차국제병원은 국제병원으로서 그리고 'K-MEDICAL' 주자로서 그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하겠다는 각오다(사진 제공: 차병원).
차국제병원은 국제병원으로서 그리고 'K-MEDICAL' 주자로서 그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하겠다는 각오다(사진 제공: 차병원).

- 원장으로서 앞으로 차국제병원 목표는 뭔가.

'이름 난' 국제병원이다. 한국에서 국제진료로 유명한 게 아니라 세계에서 국제진료로 유명해야 한다. 즉 이름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의료진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병원의 우수성은 결국 의료진의 우수성이다. 다른 게 아니다. 'K-POP'·'한류'라는 명칭이 통용되는 시대다. 의료도 'K-MEDICAL'이라고 이름은 지었다. 하지만 그만큼 알려지지는 않았다. 이름에 걸맞음을 보여줄 때다.

- 한국 의료가 알려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는데.

일반 대중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외 언론이 선정한 병원 순위는 의료진 대상 조사다. 일반 대중은 여전히 한국 병원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한국 의료가 필요하면 의료진에게 또는 다른 환자에게 물어물어 찾아온다. 그러니 지명도도 떨어진다. 의료진이 국제 진료 현장에서 능력을 발휘할 장 자체도 부족했다.

현재 국제 진료 분야는 우리 병원만 앞서간다고 되지 않는다. 선의의 경쟁은 해야 한다. 하지만 배타적 경쟁을 할 때는 아니다. 전체 파이를 키워야 한다. 병원마다 특장점을 살리고 자신들만의 영역을 만들어 나가려면 우선 토양이 마련돼야 한다. 의료계는 물론 사회와 정부의 시각이 넓어져야 한다.

- 제도 차원에서 정부 지원이나 개선이 필요한 분야는.

원격진료 방면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의료법상 반드시 현지 의사가 참여해 협진 형태로 진료해야 한다. 환자와 의사, 현지 의사 일정 조율에 품이 더 드는 건 사실이다. 국가 간 시차가 크면 더 어렵다. 이런 부분을 감안해 제도가 개선되면 크게 도움이 된다.

비자 간소화도 중요하다. 법무부 등 여러 정부 부처가 협동해야 하는 일이다. 국제 진료와 외국인 환자 확보가 국가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이 갖춰져야 한다.

통번역 서비스 지원도 긴요하다. 통역 서비스에 드는 비용이 상당하다. 사람 찾기도 쉽지 않다. 정부 차원에서 통합 시스템을 구축해 인력을 양성하고 파견하면 전체 국제 진료 역량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요소마다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 한국 의료의 세계화라는 포부와 비전도 있어야 하지만 실제 현장이 한 단계 발돋움할 수 있는 받침대 역시 시급하다.

- 국제 진료 중요성이 커지면서 시스템도 인프라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차국제병원이 그리는 앞으로의 국제 진료 모습은?

앞으로 국제 진료는 병원 건물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환자가 국경을 지나는 이동의 개념을 넘어설 것이다. 가상의 진료 공간에서 전 세계 의료진이 협진하고 원격 로봇 수술로 원거리에서 치료하는 시대가 온다. 차병원이 꿈꾸는 국제병원은 바로 이런 미래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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