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정신장애인가족협회-정신의학회 “환영”
불안한 유가족들 “국가 항소하지 말아 달라”
정신의학회 “중증정신질환 급성기치료 필수의료”

법원이 중증정신질환자 안인득 방화·살인사건의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적극적 예방책임이 있는 국가에게도 손해의 40%에 해당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법원이 중증정신질환자 안인득 방화·살인사건의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적극적 예방책임이 있는 국가에게도 손해의 40%에 해당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중증정신질환자 안인득의 방화·살인 사건에 대해 국가에도 손해의 40%에 상응하는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예방책임을 인정한 최초 사례다. 소송을 시작한 지 2년만이다. 이같은 판결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반겼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5일 ‘안인득 방화·살인사건’ 피해자이자 유가족인 원고 4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소송에는 유가족 뿐 아니라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정가협)와 정신의학회도 함께 했다.

이들은 17일 온라인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은 방화·살인 사건을 저지른 것은 안인득 개인이지만 국가에게도 손해의 40%에 상응하는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며 “치료 중단 이후 자·타해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 의심자에 대해 경찰이 법과 매뉴얼을 준수했다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본 최초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중증정신질환자 안인득은 지난 2019년 4월 17일 새벽 경남 진주 한 아파트에서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하고 17명에게 상해를 입혔다.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안인득은 지난 2010년 공주치료감호소 입소 당시 조현병 진단을 받았지만 2016년 7월 이후 치료가 중단됐고 2018년 9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인근 주민들에게 오물투척, 욕설, 폭력 행사 등을 지속해 8차례 경찰에 신고가 접수됐다.

또 안인득 형은 검찰청 민원실, 시청, 주민센터 등에 비자의입원 가능 여부를 묻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안내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상해를 입은 주민들도 출동한 경찰에게 피해상황을 설명하며 격리를 호소했지만 당시 경찰은 행정입원 절차를 잘못 설명하거나 심지어 보복할 수 있으니 참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안내하기도 했다.

법원은 안인득의 반복된 범죄를 수사하던 경찰이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행정입원 신청을 요청했다면 치료적 개입이 이뤄졌을 개연성이 상당하고 적어도 공격적 행동이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국가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 오지원 변호사(법과치유)는 “처음 국가 책임이 30%라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진행 과정에서 자료를 분석해 보니 국가 과실이 너무 컸다. 이에 국가 책임을 50%로 청구 취지를 확장했다”며 “그 중 40%가 인정됐고, 청구 금액으로 보면 75% 승소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족 측이 지난 2021년 국가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5억4,000만원이다.

오 변호사는 경찰이 ‘현재 위험이 없더라도 과거 흉기휴대나 112 신고 난동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지속가능성이 있는 경우 행정 및 응급입원 조치를 검토’하도록 한 경찰청 매뉴얼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을 법원이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반복적으로 이뤄졌던 폭행 등 신고 이력이 검토됐다면 대책 마련 가능성이 높았을 거라는 것이다.

오 변호사는 “법원은 이 사건 신고 당시 출동한 경찰관이 달랐던 것은 사실이나 출동 내지 사건 처리를 담당한 개별 경찰관이 다른 경우 담당자나 부서 간 협력 또는 상급자의 연관성 검토를 통해 종합적 대책을 마련해야 했지만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고 했다.

오 변호사는 “특히 파출소장은 해당 파출소 근무일지를 확인하고 사건사고 내용을 점검하는 등 관리 감독 의무가 있지만 이 사건의 경우 비교적 단기간인 2주 내 안인득으로 인한 5회의 112 신고와 출동이 이뤄졌고 특이한 신고내용이 반복됐음에도 단편적인 개별 사건으로 취급하고 재발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 변호사는 “정신질환자에게 자·타해 우려가 나타날 때 치료 연계를 통해 범죄를 예방함으로써 사회와 본인을 모두 보호하는 게 비자의입원제도 목적이고 치료연계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게 경찰”이라며 “이 판결은 경찰이 관련 법령과 매뉴얼을 준수했다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명시하면서 법적 책무와 역할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1심 판결로 유가족들이 승소했지만 여전히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국가를 향해 항소하지 제기를 하지 말아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하기도 했다.

정가협 김영희 정책위원은 “1심 판결이 내려진 지 3일째다. 2주 안에 국가 측에서 항소 여부를 결정할 텐데 간곡하게 호소 드린다”며 “2심이 진행되면 몇 년이 갈지 모르겠다. 유가족들은 다시 긴 소송을 견뎌야 한다. 법무부 측에서 항소하지 않았으면 한다. 법무부에 면담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신의학회 “중증정신질환 급성기 치료 필수의료 지정해야”

정신의학회는 중증정신질환자 치료 시스템 개선을 촉구했다. 중증정신질환자의 고통을 당사자와 보호자에게만 책임 지운 보호의무자제도 폐지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증정신질환 급성기 치료와 지역사회 케어를 필수의료로 지정해야 한다고 했다.

정신의학회는 “중증정신질환으로 자·타해 위험이 있어도 보호의무자 입원이 있다는 이유로 지자체와 경찰, 소방이 행정입원과 병원 이송에 소극적이었던 그간 관행이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상으로도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정신의학회는 “경찰과 소방에 대한 적극적 정신건강교육과 응급입원 시 병상 확인을 위한 안내시스템, 정신건강전문가 핫라인 등 지원체계를 보상해야 한다”며 “더 나아가 중증정신질환에 대한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와 선진국 수준으로 현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하는 사회적 논의가 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했다.

정신의학회는 “진주 방화·살인사건 이후 4년이 경과했지만 올해 서현역 사고 등 똑같은 비극을 반복하고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커다란 비극 뒤에는 제대로 도움 받지 못하는 아픔이 수많은 환자와 가족에게 반복되고 있다”며 “중증정신질환의 급성기 치료와 지역사회케어를 필수의료로 지정해 후진적인 치료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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