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입원제도’ 도입 요구하는 정신의학계, 여전히 부정적인 복지부
윤일규 의원도 ‘사법입원제’ 도입 촉구…“이대로라면 또 일어날 것”

정신질환자에 의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조현증 정신질환자인 안인득의 방화 및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초등학생과 노인, 부녀자 등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이번 안인득 사건은 강제입원 규정을 강화했던 임세원법이 국회 통과과정에서 한발 후퇴해 제역할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던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제2의 안인득 사건을 막기 위해서 ‘사법입원제도’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수차례 난동에도 안인득은 왜 정신병원 입원이 안됐나

정말로 안인득 사건을 미리 막을 수 있었던 방법은 없었던 것일까?

18명의 사상자를 낸 안인득의 형은 안인득의 입원을 위해 2주전까지 경찰은 물론 병원, 관할 행정기관에 도움을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병원에서는 안인득의 입원을 거부한 것일까.

현재 정신건강복지법 상 형은 보호의무자인 직계가족이 아니다. 현행법에서는 생계를 같이 하지 않는 경우 보호의무자 입원은 불가능하게 돼 있다. 따라서 병원에서는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상 본인 동의없이는 안된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수십차례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경찰은 안인득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나.

경찰 또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통해 강제입원 시킬 권한이 없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로서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사람은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이 정신의료기관에 강제입원(행정입원)시킬 수 있지만 정작 위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또는 정신건강전문요원에게 진단과 보호신청만 할 수 있을 뿐 행정기관에 의한 강제입원 조치의 주체에서 빠져 있다.

그렇다면 정신의료기관에 강제입원(행정입원)을 시킬 수 있었던 지자체 장은 왜 안인득의 형의 호소를 외면한 것일까.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에 시군구청장에 의한 행정입원이 있디거 하더라도 보호의무자가 있는 상황에서 지자체장이 이를 책임지고 진행하는 경우는 거의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정신과 전문가들은 말도 안되는 법과 현장의 상황에서 이같은 비극이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는 “(안인득의) 형은 입원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모두 안된다고 하니 포기했다고 한다. 단언컨대 입원만 됐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지금같은 후진국형 정신건강시스템으로 이런 비통함을 막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백 교수는 특히 “정신과 비자의 입원과 퇴원을 시군구청장이 결정하고 책임지거나 가정법원 판사가 결정하는 국가책임입원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게 정신과 의사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이게 의사만을 위한 주장인지 묻고 싶다”고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백 교수는 “적지않은 30~40대 남성 조현병 환자들 중 적지않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않고 혼자생활하는데, 부모는 고령이고 형제 자매와는 따로 사는 상황”이라며 “지금과 같은 제도를 그대로 두면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제2의 ‘안인득 사건’ 막는 방법은 ‘사법입원제도’뿐

이에 제2의 안인득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다시한번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이 나섰다.

더욱이 정신의학계에서는 사법입원제도를 통해 국가가 이 문제에 적극 개입하지 않으면 안인득 사건과 같은 일이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과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22일 오전 국회에서 '사법입원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22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과 함께 ‘故 임세원 교수 사건과 진주 방화살인사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신경정신의학회는 입원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 방치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윤 의원이 ‘정신질환자를 대상 사법입원제도 도입’을 담아 대표 발의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개정안은 ‘중증정신질환자로 국한된 현행법의 정신질환자 개념을 확대하고 환자의 치료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지우는 보호의무자 제도를 폐지, 비자의입원 심사절차를 통일하고 가정법원을 거치도록’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또한 심사 없이는 입원기간을 연장하거나 강제입원을 시킬 수 없도록 했으며 필요한 경우 퇴원 후에도 외래치료명령제를 통해 지속적으로 치료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정신질환자를 향한 차별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책으로 보험상품 및 서비스 제공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정신질환자를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복지부장관이 차별행위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신설했다.

신경정신의학회 권준수 이사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지난 임세원 교수 사건 후 재발방지를 위해 수많은 법이 발의됐는데 그 중 가장 핵심은 윤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이라며 “외래치료명령제 등은 법을 통한 공적 영역에 들어와야 제대로 작동한다”고 강조했다.

권 이사장은 “가장 핵심적인 개정안이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계류돼 있다. 소위 논의 당시 복지부에서 부정적 입장을 밝혔는데, 이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비슷한 사건이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 이사장은 “(안인득 사건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있다고 여러번 이야기 했는데, 이 정도면 정부 시스템이 가동돼 문제 여부를 판단하고 문제가 있다면 치료하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며 “이 시스템이 없다. 치료명령은 할 수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 이사장은 “입원도 마찬가지다. (안인득 사건의 경우) 가족들, 특히 형이 입원시켜달라고 여러번 이야기 했는데, 문제는 형이 요구한다고 입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모든 것이 현행법이 잘못됐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앞으로는 이런 일을 법원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권 이사장은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을 가족과 의사들에게 떠넘기면 안된다. 국가가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 국가에서 판단해달라”며 “(사법입원제도에 대해) 지난번 소위에서 복지부가 반대 입장을 밝혔는데, 국민을 위해 전향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법입원제도에 부정적인 복지부

하지만 복지부는 여전히 사법입원제도 도입에 대해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법입원제도가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는 게 복지부의 입장이다.

사법입원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현재 시행 중인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를 통한 입원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우선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관계자는 “우선 안인득 사건의 경우 사법입원제도 도입 필요성과 관련이 없는 사건으로 보고 있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경찰이 (안인득에 대해 신고받은 후) 정신건강복지센터나 보건소 등에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연락을 하지 않았다면 경찰 권한으로 응급입원을 시켰으면 되는데, (안인득이 정신질환자인지) 몰라서 안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렇다고 해도 (안인득이) 지역사회에서 관리가 안된 것은 문제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를 통한 입원이라는 제도를 시행한 지 이제 1년 남짓됐다. 때문에 개선해야 한다면 어떤 점이 문제가 있는지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검토 후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 문제점을 사법입원제도가 보완할 수 있는지 등을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위원회를 통해 하는 것 보다 사법입원제도를 통한 입원이 더 낫다는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위원회를 통한 입원에 대한 면밀한 평가가 필요하고, 평가 후 검토를 통해 사법입원제도 도입에 대한 입장을 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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