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주의의무 소홀해 오진하고 이후 조치도 지적
"오진 없었으면 환자 사망까지 가지 않았을 것"

주의의무를 위반해 환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며 외과의사가 업무상과실치사 유죄로 법정 구속됐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주의의무를 위반해 환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며 외과의사가 업무상과실치사 유죄로 법정 구속됐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오진으로 환자가 숨졌단 이유로 기소된 외과 의사가 법정 구속됐다. 이례적 판결에 외과계는 충격에 빠졌다(관련 기사: 환자 사망 '오진' 책임 외과의사 구속…"누가 수술하겠나"). 검찰은 의사가 주의의무를 위반해 환자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했고 의사는 과실은 없었다며 맞섰다. 유가족은 의사를 엄벌에 처해달라고 호소했다. 5년 전 그날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인천지방법원은 지난달 21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금고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A씨는 외과 전문의로 41세다.

사망한 환자 B씨는 지난 2018년 6월 11일 인천 연수구 C병원을 찾았다. B씨는 진료받으면서 "최근 4일간 대변을 볼 때 검은색 핏덩이가 나왔다"고 했다. 78세 남성인 B씨는 뇌경색을 앓았던 적이 있어 아스피린을 복용 중이었다. 외과 전문의 A씨는 환자 항문 부위 촉진 등을 토대로 급성항문열창이라 판단해 3일 뒤인 14일 수술했다.

환자 B씨는 다음 날 새벽 빈혈로 낙상해 쓰러졌다. 당직의사는 CT검사에서 뇌출혈로 보고 B씨를 인근 D병원으로 전원했지만 뇌출혈이 아닌 것으로 나타나 4시간 뒤 C병원으로 돌아왔다. C병원 CT 검사 결과는 '오래된 뇌경색, 우측 중대뇌동맥 영역'이다.

환자 B씨는 C병원으로 돌아온 지 2시간 만에 이상 증상을 보이기 시작해 다량의 피를 토하고 의식을 측정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E병원으로 옮긴 B씨는 복부골반 CT검사에서 '십이지장 내 활동성 출혈'이 확인돼 비수면내시경 검사까지 받았으나 사망했다. 사인은 상부위장관 출혈로 인한 저혈량 쇼크다.

검찰은 외과 전문의 A씨가 주의의무를 소홀히 해 환자가 사망했다면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내원 당일 B씨 진술과 아스피린 복용 사실을 들었다면 상부 위장관 출혈을 의심하고 검사·처치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B씨는 혈액검사는 받았지만 내시경 검사 등은 받지 않았다. 이날 혈액검사에서 B씨 혈색소(HB) 수치는 6.7g/dl이었다. 내원 당일이 아니라도 최소한 수술 전에는 추가 내시경 검사 등이 이뤄졌어야 한다고 봤다.

수술 후 관리도 문제 삼았다. 혈액검사 결과를 토대로 "수술 후에도 출혈이 지속되는지 의심하고 검사·처치 등을 시행했어야 한다. 진료기록지에도 혈색소 수치에 대한 주의사항이나 오더는 전혀 기재하지 않았다"며 "이 때문에 B씨가 쓰러졌을 때 당직의사가 뇌출혈로 잘못 진단해 D병원으로 전원했다"고 했다.

반면 A씨는 업무상 과실은 없었다고 맞섰다. 설령 업무상 과실이 있더라도 사망과 인과관계가 없다고 했다.

A씨는 "항문 치열로 인해 발생한 출혈이 직장 내 오래 머물면서 검은색을 띠었다고 봤다"며 "환자가 검은색 핏덩이를 봤고 이전에 위 내시경 검사를 받은 적은 없었기 때문에 우선 명백한 병변인 항문 질환 수술을 하고 빠른 시간 안에 내시경 검사를 하기로 계획했다"고 항변했다.

혈색소 수치가 정상보다 낮았지만 내원일(6월 11일)과 입원일(6월 14일) 활력징후가 정상이었고 현기증이나 어지럼증 등 출혈을 의심할 만한 다른 증상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고령 환자인 B씨 상태를 고려하면 "곧바로 상부 위장관 출혈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도 했다.

재판부 "오진에 정확한 진단 지연…업무상 과실 맞다"

하지만 법원은 A씨에게 과실있다고 판단했다. 환자 증상을 속단해 오진했고 수술 후 조치를 소홀히 해 정확한 진단이 지연되면서 환자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B씨가 복용한 아스피린은 위나 십이지장 출혈성 궤양을 유발한다. 의사는 우선 혈액검사로 빈혈 여부에 따라 수혈하고 상부위장관 내시경 검사나 혈관조영술 등 검사로 상부 위장관 출혈 여부를 확인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A씨는 내원 당일 혈액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직장 수지검사만으로 출혈 원인이 급성항문열창이라 판단해 수술을 계획했다. 내시경 검사도 권유에 그쳤다"고 했다.

재판부는 "항문치열로 발생한 출혈이 직장 내 오래 머물렀더라도 검은색 혈변이 나온다는 건 의학적으로 합리적인 추정이라 볼 수 없다"며 "최근 4일간 검은색 혈변을 봤다면 상부 위장관 출혈 여부를 우선 확인하는 게 타당한 조치"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항문열창은 상부 위장관 출혈 원인인 질환과 구별되고 일상적으로 다른 상병과 동반되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외 또 다른 적절한 이유가 없는 이상 검은색 혈변이나 빈혈에 대한 조처와 항문열창에 대한 대처는 구분돼야 한다"며 "내원 당일 B씨 상태가 항문열창 수술이 시급한 상태였다고 볼만한 사정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부 위장관 검사로 병변을 확인했다면 내시경적 지혈이나 혈관조영술, 개복술 등 적극적인 치료를 시도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치료가 제대로 됐다면 B씨가 비록 고령 환자라도 사망하지 않고 양호한 결과를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 사건 감정 의견을 바탕으로 수술 후 대처도 잘못됐다고 했다.

재판부는 "낙상으로 머리를 다치면 뇌압이 올라가면서 전형적인 구토를 한다. B씨는 낙상 후 10분 정도 지나서 구토했다. 구토 양상이나 낙상과 시간적 간격, 피 섞인 구토를 한 점을 보면 비록 기록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상부 위장관 출혈로 빈혈이 생겨 낙상했을 가능성이 조금 더 높다"고 봤다.

재판부는 "진료기록에는 뇌출혈을 의심한 이유가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지 않다. CT검사 판독소견서에도 확인되지 않는다. 단지 간호기록에 'CT상 출혈이 보인다 함'이란 기록만 있다"며 "B씨 진료와 수술을 담당한 A씨가 상부위장관 출혈을 의심해 검사를 계획하거나 이에 대해 진료기록을 남겼다면 당직의사도 낙상 조치를 하면서 CT검사와 함께 상부 위장관 출혈에 따른 현기증도 고려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C병원으로 돌아온 B씨가 이상증상을 보인 뒤에야 혈액검사를 실시했고 "이 무렵까지도 상부 위장관 출혈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는 시행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B씨가 돌아온 후라도 상부 위장관 내시경 검사 등으로 출혈 부위를 확인하고 지혈 시도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환자가 사망까지 가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며 "B씨가 내원 당일을 기준으로 최근 4일간 흑색변을 보고 그 후 4일 뒤 급격한 토혈 후 사망한 점을 비춰봤을 때 같은 부위에서 반복해서 출혈이 일어났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며 별도 병변을 고려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결국 외과 전문의인 A씨가 "환자 증상과 혈액검사 결과, 아스피린 복용 사실 등을 알면서도" 출혈 원인을 속단했고 수술 후에도 "상부 위장관 출혈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정확한 진단이 지연돼 "환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A씨는 업무상 과실이 가볍지 않고 의료 과실로 환자가 사망하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A씨는 환자가 토혈하기 전까지는 상부 위장관 출혈을 의심할 만한 사정이 없었으므로 업무상 과실이 없다는 취지로 다투고 있다"며 "피해가 전혀 회복되지 않았고 유족은 회복할 수 없는 큰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받았다. 유족은 A씨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A씨에게 업무상과실치사 유죄로 금고 1년 6개월에 처하고 법정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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