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이어 2심서도 업무상과실치상·의료법 위반으로 ‘징역’ 선고
재판부 “대동맥박리 조기 진단 기회 상실…허위기재 죄질 불량”
응급의학의사회 “응급환자 진료, 개인 형사책임 감면 도입해야”

전공의 시절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해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응급의학과 의사에 대해 법원이 징역형을 선고 했다(ⓒ청년의사).
전공의 시절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해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응급의학과 의사에 대해 법원이 징역형을 선고 했다(ⓒ청년의사).

전공의 시절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해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응급의학과 의사. 그는 당시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해 환자에게 중한 상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항소심에서도 징역형을 받았다.

법원은 해당 전공의가 업무상 과실을 숨기기 위해 진료기록부에 허위 사실을 기재했다며 의료법도 위반했다고 봤다.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서울중앙지방법원 제9형사부는 지난 17일 업무상과실치상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의사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며 1심 판결을 유지했다.

A씨는 서울 소재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1년차였던 지난 2014년 응급실에서 근무하던 중 안면부 감각 이상과 식은땀 구토와 함께 흉부 통증을 호소하며 내원한 60대 B씨를 진료했다.

A씨는 문진을 통해 B씨가 대동맥박리 호발연령에 속하며, 뇌경색 진단 경험과 고혈압 병력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에 A씨는 흉부 통증을 호소하던 B씨에게 심전도와 심근효소 검사 등을 실시했으나 별다른 이상 소견이 확인되지 않자 급성 위염에 의한 통증으로 진단했다.

하지만 검사 1시간 뒤인 새벽 3시 30분경 B씨의 통증은 더 심해졌고 이 병원 간호사였던 보호자 C씨가 심장내과 의사 진찰을 요청했으나 A씨는 이를 거절하고 진통제를 투여했다. 대동맥박리 등 여부 확인을 위한 흉부 CT 검사 등은 시행되지 않았다.

진통제를 투여 받은 B씨의 증상이 완화되자 A씨는 별다른 조치 없이 B씨를 퇴원조치 했다. B씨의 응급실기록의 퇴원계획에는 ‘경증의 의학적 문제만 있는 환자(응급의료센터 진료 후 퇴원에 어려움이 예상되지 않는 환자), 치료 후 상태 호전 시 귀가’라고 기록됐다.

하지만 같은 날 오전 10시경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 온 B씨는 대동맥박리 진행으로 인한 양측성 다발성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B씨는 인지기능 소실과 사지마비의 뇌병변 장애를 입었다.

A씨는 지난 2021년 11월 1심에서 업무상과실치상과 의료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으며, 항소심에서도 1심 판결이 그대로 유지됐다.

2심 재판부는 B씨가 응급실 내원 당시 흉부 CT검사 등 추가 진단검사를 통해 수술적 치료가 이뤄졌다면 조기 진단해 뇌병변 장애를 입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며 A씨가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A씨가 흉부 CT검사를 권유했으나 B씨 보호자가 이를 거절했다는 내용으로 의무기록을 허위 작성했다며 의료법 위반으로 적시했다.

재판부는 “B씨는 가슴 통증을 호소하면서 오심이나 식은땀을 흘리는 증상을 보이면서 대동맥박리 위험인자인 고혈압 병력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으며 심비대 증상이 있었으므로 A씨는 흉부 CT 검사 등 추가적인 진단 검사를 할 필요가 있었음에도 이를 시행하지 않아 대동맥박리 조기 진단 기회를 상실케 했다”고 말했다.

또 “초기 빠른 수술 시행은 환자 예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B씨가 이 병원에서 대동맥박리를 진단받고 바로 적절한 수술 등의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현재와 같은 뇌병변 장애 상태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당시 B씨의 대동맥박리 수술을 담당한 타 병원 의사는 수술 전 심한 저혈압(쇼크)과 심장마비가 저산소성 뇌손상의 주요 원인으로, 처음 내원한 병원에서 수술을 진행했다면 이후 의식저하 저혈압, 심장마비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또 재판부는 진료기록부 허위 작성에 대한 의료법 위반 여부도 자세히 들여다봤다.

A씨가 B씨의 경과기록을 작성한 시점은 B씨가 응급실을 퇴원한지 13일이 지난 9월 24일이었다. A씨는 ‘미비기록 작성’이라고 기재하고 간헐적 통증으로 흉부 CT 검사에 대해 보호자에게 설명 했다는 내용을 기록했다. 하지만 진료기록부에 기재된 흉부 CT 검사 시행 여부에 대한 A씨의 진술과 보호자 C씨의 진술은 엇갈렸다.

재판부는 C씨가 해당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로 상당한 의학적 지식이 있고 B씨와 응급실에 내원했을 당시에도 고혈압 병력 등의 이유로 A씨에게 먼저 심장내과 협진을 요청한 점 등을 보아 흉부 CT 검사를 권유 받았다면 거부하지 않았을 거라고 판단했다.

더욱이 재판부는 A씨가 흉부 CT 검사를 보호자에게 두 차례에 걸쳐 권유한 게 사실이라면 B씨를 급성 위염이 아닌 다른 중한 질환으로 의심했다는 의미로 봐야하지만, 퇴원계획서에는 ‘경증의 의학적 문제만 있는 환자, 치료 후 상태 호전 시 귀가’라고만 기재돼 있다며 A씨가 경과기록에 허위 사실을 기재한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A씨가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으로 피해자에게 뇌병변 장애라는 중한 상해가 발생했다. 또 자신의 업무상 과실을 숨기기 위해 B씨에 대한 진료기록부에 허위 사실을 기재한 것으로 보이므로 그 죄질이 심히 불량하다”며 양형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응급의학의사회 “응급의학과 ‘사망선고’ 같은 판결”

하지만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이번 판결을 두고 응급의학과 존립 자체를 흔드는 ‘사망선고’와 같다며 반발하고 있다. 응급실 수용거부를 심화시키는 것은 물론 젊은 의사들이 응급의학과를 기피하게 되는 원인이 될 거라는 이유에서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즉각 성명을 내고 “의사의 과실이 인정되려면 결과발생을 예견할 수 있고 회피할 수 있었는데 이를 예견 또는 회피하지 못한 점이 인정돼야 한다. 하지만 응급실은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환자들이 다양한 이유로 방문하는 곳이며 당연히 향후 경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응급실에서 완전무결한 최종진단을 하지 못했다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응급의학과 자체가 존재의 의미가 없으며, 2,500명 응급의학 전문의들과 460명 전공의들은 모두가 범죄자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이 판결은 응급의료에 대한 사망선언으로 응급실 수용거부는 더욱 심해질 것이며 향후 더 많은 환자들이 병원을 떠돌다가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이 같은 판결을 내린 사법당국에 있다”면서 “전공의 지원율 하락으로 향후 정상적인 응급의료체계 운영 또한 불가능해질 것”이라고도 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무조건적인 응급환자수용 강제 법안을 즉각 철회하고 응급환자 진료에 대한 개인의 형사책임 감면과 국가책임보험을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응급의료전달체계 논의와 응급실 수용거부금지 논의에서 법적 책임에 대한 문제해결 없이는 더 이상의 논의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해당 논의체 위원직을 사퇴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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