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성 지닌 의료사고 별도 절차 마련해야"
의료감정 교육·자격 제도 필요성 제기
급증하는 의료사고 소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의료감정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감정전문가 양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외과학회가 지난 3일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개최한 2023년 추계학술대회에서 의료사고로 인한 형사소송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외과 신동우 교수는 이날 의료사고에 대한 민·형사소송 건수가 증가하면서 의료감정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의료감정을 진행하는 곳은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과 전문의학회, 한국의료분쟁조정중중재원, 한국소비자원, 국내 대학병원·종합병원, 사설 유료 감정업체 등이 있다. 이 중 소비자원은 진료기록에 대한 수탁감정이 아닌 전체 사건에 대한 감정을 맡는다.
신 교수에 따르면 감정 업무 처리 건수는 매해 1,000건 이상을 넘기고 있다. 의협 의료감정원에는 지난 2018년 2,447건, ▲2019년 2,227건 ▲2020년 2,177건 ▲2021년 1,799건 ▲2022년 1,688건이 접수됐다.
신 교수는 “의료감정을 하면서 다양한 사례를 분석한 결과 수술이라는 침습적 치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가피한 합병증이나 악결과에 대해 형사소송이라는 극단적 분쟁 해소 방법이 선택되고 있다”며 “불가능한 환자의 상황을 신격화한 의료기술로 치료하지 못했다고 의심하는 감정 의뢰 내용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의료감정에 대해서 극도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며, 단순한 의학지식을 넘어 의료감정에 대한 전문성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나 감정제도의 한계로 부적절한 감정이 이뤄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신 교수는 “감정의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의료감정 제도상 의사 혼자서 감정하고 동료 의사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사설감정기관의 경우 전문가인지 비전문가인지 구분이 어렵고, 비전문가가 감정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 제도로는 전문의라면 의료감정은 누구나 할 수 있기에 감정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이들이 나서는 것을 막을 법적인 제한이 없다”며 “의사를 대상으로 의료감정을 열심히 교육할 수밖에 없으며 교육 받은 이들이 감정에 참여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자발적으로 감정에 참여하지 않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전문적이고 공정한 감정을 위한 교육과 자격을 검증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전문의라면 누구나 감정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르고 공정한 감정을 위한 교육과 자격 검증 제도가 필요하다”며 “또한 빠른 감정 회신을 위해 감정 과정의 전산화, 의료인의 자료 전달 및 회송 과정 등 행정업무의 단축, 감정인의 신속한 감정 처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계가 의료감정절차에 적극 관여해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대학병원의 한정된 의료감정 인력 풀(Pool)을 확장하고 법원의 전문심리위원제도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법무법인 반우 정혜승 변호사는 "법원과 피해자들은 주로 대학병원에 의료감정을 요청한다”며 “그러나 대학병원의 의료감정 인력 풀은 매우 제한적이다. 어떤 병원은 세부진료과목이 없어서 의료감정이 어렵다며 반송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이어 “일부 병원에서만 의료감정을 받다 보니 다른 병원에 전문성이 있는 교수가 있음에도 감정 의뢰가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또한 대학병원 교수의 감정료가 50만원에서 100만원이다. 교수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서 많은 시간을 들이는 만큼 비용에 대한 현실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회 차원에서 법원 전문심리위원제도에 의사들이 참여하도록 독려해 의료현장의 현실과 전문성을 소송절차에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전문심리위원제도는 지난 2007년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제도로 의료 등 전문 분야의 분쟁 해결을 위해 외부 전문가를 소송 절차에 참여시키는 제도다. 전문심리위원은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소송절차에서 설명하거나 증인신문기일이나 감정인신문기일 당시 질문 혹은 현장 조사도 수행 가능하다.
2016년부터는 상임 전문심리위원제도가 도입돼 서울을 포함한 지역 고등법원에 의사들이 상근직으로 위촉되고 있다. 정 변호사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에는 의료분야 위원 5명을 상근직으로 채용한 상태다.
정 변호사는 “전문심리위원들은 조정 절차에서 판사 대신 들어와서 쌍방의 의견을 조율하며 적극적으로 조정을 이끄는 역할도 한다”며 “이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의사들이 적극 참여하도록 학회 차원에서 도움을 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또한 수사기관 혹은 법원과의 간담회 등 소통창구를 마련하고 법원의 의료전담재판부 교육에 현장 의사들이 참여해 전문성 강화 교육 시 의료지식과 더불어 의료현장의 실제상황을 전달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사고 수사 전 사실 조사, 과실주장 공개 등 별도 절차 필요"
특수성을 지닌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별도의 형사절차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특히 최근 의료분쟁이 발생할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으로 의료진 과실을 추정한 다음 이를 기반으로 보복 감정으로 형사고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처럼 ‘뭐라도 걸리겠지’식의 투망식 수사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 변호사는 “우리나라 형사절차는 상당히 경직돼 있다. 예컨대 한 의사가 환자에 대한 처치를 잘했지만 악결과가 나와 환자에게 고소를 당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환자가 다른 경찰서에 새로운 사실이 나타났다며 다시 고소하면 경찰은 절차상 조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국민적 합의와 입법을 통해 의료사고에 있어 별도의 형사 절차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고소가 접수됐을 때 바로 절차를 개시하는 게 아니라 사실관계를 충분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한 수사기관의 비전문성을 극복하기 위해 의료기관 등에 과실주장 내용을 공개하고 의견을 수집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정 변호사는 “별도의 절차를 마련할 수 있다면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소송이 개시되기 전에 사전 조사하는 절차가 생겼으면 한다. 보복 감정으로 의료에 관여한 모든 사람을 다 고소하는 경우가 있다. 의사뿐 아니라 인턴, 전공의, 간호사까지 다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형사절차의 경우 고소장만 공개되며 구체적인 과실 주장은 법원 재판 때 비로소 공개되기 때문에 사실상 ‘눈 감고 코끼리 다리 만지기’와 다를 바 없다”며 “그러나 전문성이 필요한 의료사고에 한해 경찰 수사 단계에서 과실주장을 공개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적극 수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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