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병원 밖 방문의료 현장을 가다①
수가도 지원도 없지만 환자 찾아 시작
병원 진료과 연계해 꾸준한 치료 제공
"나와서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 많다"

수가도 지원도 없이 방문의료 현장이란 '맨땅'에서 환자를 찾는 병원들이 있다. 청년의사는 창간 31주년을 맞아 이들 병원의 방문진료 현장을 동행취재했다. 먼저 경기도 시흥시 신천연합병원과 목감종합사회복지관 매화복지센터 협조를 얻어 지난 27일 하루 방문진료 일정을 동행했다. 신천연합병원은 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사의련) 소속이다.

신천연합병원 방문의료센터와 목감종합사회복지관 매화복지센터는 한 달에 한 번 방문진료팀을 꾸려 병원 밖 환자를 찾아간다(ⓒ청년의사).
신천연합병원 방문의료센터와 목감종합사회복지관 매화복지센터는 한 달에 한 번 방문진료팀을 꾸려 병원 밖 환자를 찾아간다(ⓒ청년의사).

"이분은 반찬 지원 서비스 하시는 분이 추천하셨어요."

방문 환자 명단을 점검한 목감종합사회복지관 매화복지센터 이윤정 선임 사회복지사가 연립주택 현관에 들어서며 말했다. 추천한 이는 몇 달 전 자살 시도까지 해 걱정하다가 "그래도 집에 사람이 오면 좋아하신다"며 "의사 선생님을 모셔 올 수 없느냐"는 말을 듣고 이웃한 신천연합병원에 연락했단다.

27일은 한 달에 한 번 신천연합병원 방문의료센터와 매화복지센터가 함께 환자를 찾아가는 날이다. 지난 2021년 7월부터 꾸준히 해왔다. 수익은 "지금까지 쭉 0원"이다.

"병원이 다른 데서 번 돈 쓰고 있어요." 왕진 가방을 든 신천연합병원 송홍석 기획처장(소화기내과 전문의)이 웃었다. 12만~14만원 수준의 수가가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과 달리 병원급 의료기관은 방문진료 관련 수가는 물론 정부 시범사업조차 없다.

우선은 방문의료 서비스를 알리고 "집에 고립된 숨은 환자 찾기"를 소득으로 삼고 있다. 이날 첫 환자였던 박상철(가명) 씨도 그 중 하나다. 넉 달에 한 번 세브란스병원에서 '관절약'을 타는 게 박 씨가 받는 의료 서비스 전부다.

박 씨는 "기어다녔다"고 할 정도로 극심한 통증과 고립에 "(삶을) 그만두려고"도 했단다. 눈시울을 붉힌 박 씨를 묵묵히 지켜보던 송 처장이 그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이제 우리 병원에서 정형외과 치료도 받으시고요. 저희가 또 오겠습니다."

송 처장이 무릎 통증을 살피는 동안 김옥분 기획총괄실장(간호사)은 이 복지사와 욕실을 살피고, 송 처장이 냉장고 문을 열어보는 사이 박 씨에게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상의했다. "환경을 전체적으로 한번 정리해야 돼요. 청소 서비스도 알아봐야죠."

그러나 '집 밖' 환경 정리는 쉽지 않다. "계단이 좁아요. 넘어지시면 큰일인데." 집을 나선 이 복지사가 아래를 보며 걱정했다. 김 실장은 2층부터 뒤돌아 내려왔다. 박 씨처럼 무릎이 좋지 않을 때 그나마 편한 자세다. "난간이 안 미끄러운 게 다행이네요."

구석구석 골목이 많고 경사진 매화동은 박 씨 같은 저소득 고령층 비율이 높다. 오래된 연립주택 단지를 돌아본 송 처장이 "한 집 한 집 다 가도 된다"고 말할 정도로 방문진료가 필요한 환자가 많다. 하지만 대개 사회안전망에서 소외되고 집에 홀로 "갇혀 있어" 반찬을 배달하다가 경로당을 돌다가 "찾아낼 수밖에 없다."

송홍석 기획처장(왼쪽)이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이윤정 사회복지사(오른쪽)는 환자 생활 환경을 점검하고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확인했다(ⓒ청년의사
송홍석 기획처장(왼쪽)이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이윤정 사회복지사(오른쪽)는 환자 생활 환경을 점검하고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확인했다(ⓒ청년의사

두 번째 환자 황진숙 씨(가명)는 소화기내과 전문의인 송 처장 단골 환자다. 전반적인 건강 상태는 나쁘지 않지만 거동이 불편하고 혼자 사는 데다 당 수치가 유독 높아 방문진료를 결정했다. 송 처장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말 이상하게 높으시단 말이야."

문은 같은 단지에 사는 아들이 열어줬다. "방금 전에 빵 드셨어요." 식사는 하셨느냐는 물음에도 아들이 대신 답했다. 황 씨는 청력이 나쁘다. '이상한 당 수치' 해답도 아들 입에서 나왔다. 송 처장과 이 복지사가 식후라도 지나치게 혈당이 높아 걱정하자 "'잼' 발라 드셔서 그렇다"고 했다. "잼이요?" "네. 저기 어머니 옆에 있네요." 황 씨 옆에 놓인 잼 병을 보고 방문진료팀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때문이구나!" 작지 않은 사과잼 병이 반 넘게 비어 있었다.

잡곡밥으로 식사하길 권하자 황 씨는 "예"하고 답하면서도 빵이 더 좋은 눈치였다. 송 처장이 알아채고 가방을 챙기며 당부했다. "정 빵이 드시고 싶으면 잼은 조금만 발라 드세요. 듬뿍 말고 얇게 펴 발라서. 아셨죠?" "예." "대답은 잘하신다니까."

황 씨 집을 나서자 벌써 반나절이 지났다. 신천연합병원 방문진료팀은 보통 하루에 3~5 가정을 돈다. 진료 시간은 한 집당 30분에서 1시간. 사이사이 이동시간까지 더하면 오후 내내 병원 밖을 돌아다니는 셈이다.

피곤하지 않느냐고 묻자 송 처장은 "매일 나오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 돌아가서 다시 진료 봐야 하는 것도 아니니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송 처장 혼자 하는 의원이거나 병원에서 유일한 내과 의사였다면 지금보다 더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 신천연합병원에서 외래와 방문진료를 병행하는 의사는 4명이다. 백재중 원장(내과)과 홍승권 이사장(가정의학과)도 방문진료를 나간다. 방문진료 전담인 김나연 과장(가정의학과)이 연수로 자리를 비웠지만 큰 무리는 없다. "김 선생님은 계시면 한 집에 한 시간 넘게 있기도 하세요. 얘기하면서. 가서 그 집을 다 보고 오죠."

환자 상태에 따라 현장에서 관련 기관 서비스를 연계하고 본격적인 진료가 필요하면 신천연합병원으로 치료가 이어지기도 한다(ⓒ청년의사).
환자 상태에 따라 현장에서 관련 기관 서비스를 연계하고 본격적인 진료가 필요하면 신천연합병원으로 치료가 이어지기도 한다(ⓒ청년의사).

이날 마지막 방문가정인 오성희 씨(가명) 집을 찾았다. 지난 봄 손자가 결혼해 독립한 후 혼자 살고 있다. 동네 경로회장이 방문진료 대상자로 추천했다.

집 문을 연 김 실장이 기자에게 "한번 보시라"고 했다. 앞서 두 집보다 깔끔했다. 욕실 시설은 낙상 위험 없게 갖췄고 워커도 있다. 요양보호사가 주 5회 3시간씩 방문하는 집이다. 황진숙 씨는 주 3회 말벗 역할로 생활지원사가 온다. 박상철 씨도 주 3회 정신건강복지센터 방문 서비스를 받지만 요양보호사나 생활지원사는 아니다.

요양보호사가 정리해 둔 약 상자에서 진통제 뭉치를 집어들자 오 씨가 불평했다. "그거 안 먹는다고 빼달라고 하는데도 맨날 끼워주요." 서울 사는 딸과 "큰 병원"에서 타오는 약이다. "맞아요. 안 드셔도 되는 약이에요." 송 처장이 덧붙였다. "오히려 박상철 환자분께 필요한 약인데. 정말 강한 진통제거든요."

오 씨는 또 "어지러워서 못 걷겠다"고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아들 올 때 아니면 거의 앉아서 지낸다. 송 처장 손을 잡고 몇 걸음 떼더니 바로 휘청였다. 우선 작업치료사 방문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다. "우리 병원 실장님(작업치료사)이 댁으로 한번 와보실 수 있을까요?" 잠시 생각하던 김 실장이 답했다. "제가 일정 확인해볼게요." "가급적 실장님이 와보실 수 있게 해주세요."

일정은 매화복지센터에 마무리됐다. 방문진료팀은 진료 내용을 복기하고 당장 할 일과 다시 상의할 항목을 점검했다. 이 복지사는 식사를 자주 걸러 저혈당인 박상철 씨에게 먹기 쉬운 사탕부터 가져다주기로 했다. 송 처장과 김 실장은 정신건강 분야 지원 방법을 고민했다. 지역 기관과 연계할 수도 있지만 "우리 병원에서 정형외과 치료를 받으면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까지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잘 될 지는 아직 모르죠." 갈 길은 멀지만 "어쨌든 와보지 않았으면 시작도 못 했을" 일이다.

왕진 가방을 멘 그대로 퇴근길에 오른 송 처장이 문득 미소 지었다.

"어쩐지 사과잼이 문제였어. 영영 몰랐을 뻔했네."

방문진료를 마치고 다음 가정으로 이동하는 신천연합병원과 매화복지센터 방문진료팀. 이들은 골목골목을 누비며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환자를 찾아내고 또 찾아간다(ⓒ청년의사).
방문진료를 마치고 다음 가정으로 이동하는 신천연합병원과 매화복지센터 방문진료팀. 이들은 골목골목을 누비며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환자를 찾아내고 또 찾아간다(ⓒ청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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