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서울대병원 이혜진(공공의료사업단 정잭기획센터장) 교수

초고령사회가 이제 3년 앞으로 다가왔다. 국내 노인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75세 이상의 후기고령 노인이 빠르게 증가해 2040년에는 전체 노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75세를 넘기게 된다.

분당서울대병원 초고령사회연구소 이혜진 교수
분당서울대병원 초고령사회연구소 이혜진 교수

노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질병의 개수가 증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많은 노인이 건강 문제와 함께 돌봄이 필요하다. 이미 노인 대부분이 고혈압, 당뇨병 등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11%가 보청기가 필요하고 혼자서 일상생활을 다 해내기 어려운 노인도 12%에 달한다. 일상생활의 어려움은 의료기관 이용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노인 중 연간 2.5%가 아프지만 병원을 못 간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 중 18%는 거동 불편이나 이동의 어려움이 원인이었다. 이렇게 거동 불편으로 의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노인을 칩거노인(homebound older adults)이라고 한다. 의원에 오지 않아 눈에 띄지 않지만, 칩거노인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질병 관리가 잘 안되고 돌봄이 부족하면 더욱 거동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겪는다.

흔히 ‘우리나라는 10분만 걸어가면 의원이 있다’고 얘기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비교적 건강한 사람의 10분이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도 같은 10분은 아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의원에 방문해 고혈압 약을 처방 받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혼자서 걸을 수 없으므로 병원까지 이동을 담당할 보호자가 필요하다. 보호자는 반나절, 혹은 그 이상 휴가를 내야 한다. 병원에 갈 차가 준비돼도 차를 탈 수 있도록 성인이 보조해야 한다. 의원에 가서 멀리 떨어진 주차장에 주차 후 2층에 있는 의원까지 다시 모셔야 한다. 계단을 올라가려면 보호자가 2명 이상 필요하다. 진료가 끝나면 다시 차로 모셔오고 보호자 중 한 명은 약국에 약을 사러 가야 한다. 고혈압 진료가 건강한 성인에게는 간단한 것이지만 거동이 불편 노인과 그 가족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과거에는 거동 불편 노인을 관리하기 위해 양로시설 확충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하더라도 갑자기 살던 곳을 떠나 낯선 시설에 입주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다. 지난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서도 노인 83.8%는 현재 집에서 계속 거주하고 싶어 했다. 56.5%는 거동이 불편해지더라도 현재 사는 집에서 계속 거주하길 희망했다. 시설에 입소할 의지가 있는 노인은 31.3%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집에서 거주하고자 하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방안은 무엇일까? 재택의료는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나 인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다만 현재 국내의 재택의료는 걸음마 단계로, 이 시점에서 바람직한 재택의료의 모습을 잘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람직한 재택의료는 팀 기반으로…적정 수가와 교육과정 개발 필요

바람직한 재택의료는 첫째, 팀 기반이어야 한다. 재택의료는 환자가 생활하는 공간에 가서 생활감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이는 의사의 공간인 병·의원에서 만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넘어지기 쉬운 문턱, 계단, 쉰 반찬 등 병·의원에서 만나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환경들을 개선하지 않으면 환자의 건강이 좋아지기 어렵다. 따라서 재택의료는 단순히 의료의 제공을 넘어서서 주택 수리, 식사 지원 등 사회복지 서비스 연계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재택방문에서 항상 의사가 방문하는 것이 필수는 아니다. 환자 교육, 상처 관리, 약물 정리 등의 서비스는 그동안 간호영역에서 전문적으로 수행해오던 일이다. 따라서 재택의료는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팀을 이루어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효율적인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미국에서도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한 팀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규모 재택의료 제공자가 많은 일본은 의사와 간호사, 지방자치단체 소속 사회복지사가 함께 논의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국내 거동 불편 노인은 특히 의료와 장기요양 서비스 연계가 중요하다. 재택의료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은 지역자치단체와 장기요양 서비스 기관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로 재택의료는 포괄적인 주치의 역할을 해야 한다. 재택의료를 받는 환자는 병원을 이용할 때처럼 다양한 개별 과를 모두 재택으로 부르기 어렵다. 또 분절적으로 관리를 받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재택의료팀은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상태를 모두 관리하는 주치의가 돼야 한다. 포괄적인 초기 평가를 시행하고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필요한 기관으로 연계를 담당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장기적으로는 지역의 안과, 정형외과 등 전문의료기관을 포하매 병원과 협력 구조를 구축해 재택의료가 다양한 지역 네트워크의 중심이자 입·퇴원 등 이행기 관리 역할까지 하길 바란다.

셋째로 재택의료기관 간 협력을 통해 24시간 대응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재택의료가 필요한 환자 중에는 임종을 앞두고 있거나 상태가 다소 불안정한 환자도 있다. 이 환자들을 매번 응급실로 보낸다면 재택의료의 의미가 희석될 수밖에 없다. 환자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다. 일본은 재택의료 기관이 돌아가면서 야간 순번을 정하는 등 24시간 재택 방문이 가능해지면 훨씬 높은 수가로 보상을 하고 있다. 국내는 재택의료를 하는 일부 기관들이 의료진의 헌신으로 야간 방문을 하고 있어 확산이 어렵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24시간 대응이 가능하도록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

이번 하반기부터 지역사회통합돌봄의 일환으로 재택의료 시범사업이 시작된다. 새로운 사업이 시작되면 기대와 함께 우려도 존재한다. 재택의료가 활성화되려면 의사들의 많은 참여가 필요하다. 의사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경우나 야간 재택진료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고 재택의료에 대한 교육도 동반해야 한다. 특히 재택의료 교육은 국내에서 그간 이루어진 적이 없는 만큼 빠른 개발과 적용이 필요하다. 재택의료 시범사업의 성공적인 정착을 통해 국내의 거동 불편 노인들의 의료접근성이 좋아지기를 기대해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