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요암요④] 유창훈 교수 "효과적인 표적항암제 사용 여건 안돼"
소라페닙 이후 사용해야 하는 현실…허가사항을 법조문처럼 해석"
"환자들 치료 기회 놓쳐…급여는 차치하고 사용 허가부터 시급"

혁신적인 항암 신약의 개발, 유전자 기술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바이오마커의 발견 등 최근 항암 치료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그 어느 분야보다 ‘맞춤형 치료’가 현실화되는 모습인 것.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는 국내 암 환자 치료 환경이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청년의사는 코리아헬스로그와 함께 4명의 국내 암 전문가들과 좌담회를 개최했다. 암 전문가들로부터 국내 항암 치료의 현실과 개선점, 그리고 필요한 환경 변화에 대해 들어보는 ‘암요암요’(암 전문가가 요구하는 항암 치료 환경 변화의 요점) 시리즈를 4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주>

간세포암 1차 치료에 아테졸리주맙(제품명 티쎈트릭)+베바시주맙(제품명 아바스틴) 병용요법이 표준요법으로 자리잡았으나, 이후 질병이 진행된 환자에게는 후속 치료요법이 부재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유창훈 교수.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유창훈 교수.

대한간암학회와 국립암센터가 2022년 6월 개정한 '간세포암종 진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1차 전신치료에서 간암 환자가 수술 또는 국소치료의 적응증이 되지 않는 경우, 아테졸리주맙과 베바시주맙 병용요법 또는 더발루맙(제품명 임핀지)과 트레멜리무맙(제품명 임주도) 병용요법을 우선 선택한다고 권고했다. 현재 국내에서 트레멜리무맙이 허가를 받지 못해, 현실적으로 사용가능한 표준요법은 아테졸리주맙과 베바시주맙 병용요법뿐이다.

두가지 병용요법을 선택하기 어려운 경우, 소라페닙(제품명 넥사바) 또는 렌바티닙(제품명 렌비마)치료를 고려하도록 했다.

문제는 아테졸리주맙과 베바시주맙 병용요법이 2020년 상반기부터 사용됐기 때문에 1차 치료 실패 후 2차 치료에 대한 생존율을 확인하는 무작위 대조연구(randomized controlled trial, 이하 RCT) 혹은 전향적 대조연구, 전향적 대규모 코호트연구 등 관련 연구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유창훈 교수는 "현재 아테졸리주맙 병용요법을 1차로 쓰고 난 후 사용할 수 있는 2차 요법에 대한 임상 연구가 많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상황에서 RCT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설사 2차 요법 RCT 연구를 하더라도) 소라페닙과 1대 1로 비교해야 하는데 소라페닙은 이미 다른 약제들에 비해 효과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RCT를 위해 환자에게 낮은 효과의 약을 사용하는 것도 비윤리적이고,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아무도 시도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창훈 교수는 "국가에서 정말 RCT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국가 차원에서 임상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며 "다른 암종과 달리 국내에서 간암 환자가 많기 때문에 아테졸리주맙 병용요법 사용 후 2차 요법을 위한 임상시험을 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리하면 현재 국내에선 면역관문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인 아테졸리주맙 병용요법을 1차 요법으로 사용한 뒤 표적치료제(Tyrosine Kinase Inhibitor, TKI)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내에서 허가받은 표적항암제는 ▲소라페닙 ▲레고라페닙(제품명 스타바가) ▲카보잔티닙(제품명 카보메틱스) ▲라무시루맙(제품명 사이람자) ▲렌바티닙 등 5가지다.

유창훈 교수는 "국내에서 허가사항을 법조 문구처럼 해석되고 있는 것도 문제"라며 "소라페닙이 처음 승인됐을 때는 다른 항암제가 없었기 때문에 1차 치료에 사용한 것인데 지금 1차 표준요법이 바뀐 상황에서 RCT가 없다는 이유로 소라페닙을 강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유 교수가 아테졸리주맙 병용요법 사용 후 소라페닙만 사용이 가능하다고 지적한 이유는 1차 치료로 가능한 렌바티닙이 2차 치료 관련 적응증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아테졸리주맙 병용요법을 1차로 실패한 환자는 우선적으로 소라페닙을 사용한 뒤 다른 표적항암제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가천대길병원 종양내과 안희경 교수(오른쪽)

유창훈 교수는 "소라페닙 등장 이후 개선된 표적항암제가 개발됐지만 허가사항에 따라 과거 약제인 소라페닙을 먼저 써야하는 상황"이라며 "결국 환자 입장에서 소라페닙을 쓰는 동안 상태가 악화돼 다른 표적항암제로 치료할 기회가 사라진다"고 현 상황을 지적했다.

유 교수는 "데이터가 없으면 없는대로 후향적 연구라든지 전문가 자문을 받아서 글로벌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표준 요법을 고려해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아테졸리주맙 병용요법 사용 후 2차 치료로 환자에게 사용하는 치료 선택권이다. 다른 표적항암제의 급여까지는 차치하더라도고 사용 허가라도 됐으면 싶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가천대길병원 종양내과 안희경 교수는 "이 같은 문제는 변화하고 있는 치료 환경을 반영하지 않고 옛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허가사항을 법전 문구처럼 해석하면 개선된 약으로 치료받기 위해 옛날 약을 어쩔 수 없이 맞아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공감했다.

유창훈 교수 역시 "이렇게 불필요한 절차로 인해 발생하는 의료는 결국 비용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암종별로 안 쓰거나 치료효과가 떨어지는 항암제를 파악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첨언했다.

한편, 이러한 간암 2차 치료에 대한 미충족 수요 해결을 위해 대규모 RCT는 이뤄지고 있지 않지만 후향적 연구들인 이어지고 있다. 미국임상종양학회 위장관종양 심포지엄(ASCO GI 2021)에서 아테졸리주맙과 베바시주맙 병용요법 실패 후 2차 치료에 대한 다국가 후향적 연구가 발표됐다.

아테졸리주맙과 베바시주맙 병용요법 후 소라페닙, 렌바티닙, 카보잔티닙으로 2차 치료를 받은 49명의 환자를 분석한 해당 연구에 따르면, 참여 환자 중 29명은 소라페닙, 19명은 렌바티닙, 1명은 카보잔티닙으로 치료를 받았다. 중앙 무진행생존은 3.4개월이었고 중앙 전체생존은 14.7개월이었다.

렌바티닙 치료군이 소라페닙 치료군에 비해 중앙 무진행생존(mPFS) 6.1개월 대비 2.5개월로 유의하게 길었으며 전체생존기간(OS)은 렌바티닙이 16.6개월, 소라페닙이 11.2개월로 집계됐다.

또 유럽종양학회 아시아 학술대회(ESMO Asia 2022)에서 유창훈 교수는 면역관문억제제로 1차 치료를 받은 간암 환자에서 2차 치료로 카보잔티닙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분석한 2상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면역관문억제제를 1차 치료로 사용한 48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했으며 이 중 19명(40.4%)이 아테졸리주맙 병용요법으로 치료받은 환자였다.

연구 결과, 중앙추적관찰 11.2개월 시점에서 mPFS는 4.1개월 반응률은 6.4%로 집계됐으며 부분반응(PR)과 안전병변(SD)은 76.6%로 확인됐다. mOS는 9.9개월이었으며 1년 전체생존율은 45.3%였다.

아테졸리주맙 병용요법으로 치료받았던 환자군은 mOS가 14.3개월, 1년 전체 생존율은 50.7%였다. 그외 면역관문억제제로 치료받은 환자군은 mOS 8.9개월, 1년 생존율은 42.0%로 집계됐다.

유 교수는 "이 같은 후향적 연구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결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또 정부가 RCT가 아닌 연구를 근거로 허가사항을 변경해줄지도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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