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진료계약 넣는 '민법 개정안' 제안
정보제공의무, 설명의무, 손해배상의무 등 규정
"의료분쟁 시 환자 증명 부담 완화될 것 "

대한변호사협회는 9일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의실에서 '진료계약의 민법 편입 개정을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9일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의실에서 '진료계약의 민법 편입 개정을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환자와 의사 간 맺는 ‘진료계약(의료계약)’을 민법에 넣어 의료분쟁 시 환자 증명 부담을 완화하고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행위에 대한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변호사협회가 9일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의실에서 개최한 ‘진료계약의 민법 편입 개정을 위한 심포지엄’에서는 진료계약에 대한 법적 안정성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환자가 의사 또는 의료기관에 진료를 의뢰하고 이에 응해 치료행위를 개시하는 경우 진료계약이 성립된다. 진료계약은 비전형 계약으로 민법 형태로 규정되지 않아 쌍방 간 합의에 의해 성립되는 계약으로 여겨진다.

이에 당사자가 상대방에 위임해 사무 처리를 위탁하고 이를 승낙하는 위임계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위임계약은 무상계약이 원칙임에도 의료기관이 진료비를 유상으로 받고 있다는 점 등으로 위임계약에 준용하는 게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박호균 변호사는 이같은 입법 환경 때문에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비전문가인 환자가 의사의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와 채무 불이행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환자의 손실을 회복하기에 법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게 박호균 변호사의 주장이다. 박 변호사는 변협 진료계약 TF 위원장을 맡고 있다.

박 변호사는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심사한 진료 건수는 13억6,000건으로, 비급여까지 포함하면 연간 13억6,000건을 상회하는 진료계약이 체결되고 있다고 추산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환자 측에 추상적인 요건인 과실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이 가중되고 있으며 재판에서도 의료분야 비전문가인 법관의 재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에 의료책임의 법적 안정성을 훼손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재산권 관련 분쟁에선 원상회복이나 금전배상을 통해 채권자가 권리를 회복하거나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진료계약에서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할 경우 사망이나 손상된 신체 침해는 회복되기 어렵다”며 “진료계약에 대한 민법 규정과 특별법 부재는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어 “진료계약을 민법의 전형계약으로 도입해 의료제공자의 주의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환자의 증명책임을 완화하면 법률요건의 추상성에서 비롯되는 증명의 부담 문제를 상당 부분 개선하고 법적 안정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민법 제3편 제2장 제11절 위임 조항 뒤에 제11절의2로 의료계약을 신설하는 개정안을 제안했다(자료출처: 대한변호사협회).
대한변호사협회는 민법 제3편 제2장 제11절 위임 조항 뒤에 제11절의2로 의료계약을 신설하는 개정안을 제안했다(자료출처: 대한변호사협회).

이에 박 변호사는 민법 제3편 제2장 제11절 위임 조항 뒤에 제11절의2로 의료계약을 신설하고 ▲의료계약의 의의 ▲정보제공의무 ▲동의 ▲설명의무 ▲의무기록 ▲손해배상의무 ▲사무관리 등을 포함하는 민법 개정안을 제안했다.

개정안은 전반적인 의료행위에 대한 사전 동의 의무가 명시됐다. 의료법에서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 등으로 사전 동의 의무가 한정돼있다. 다만 응급상황이나 통상적인 의료환경이 아닌 경우에는 예외 사항을 규정했다.

손해배상의무에서는 환자에게 손해가 발생할 경우 의료상 주의의무 위반행위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았다.

우선 진단·치료·요양 등 의료적 처치 도중이나 이후 환자 상태가 악화될 때 의료상 주의의무 위반행위를 제외한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 의료상의 주의의무 위반행위에 의한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환자가 진료 과정 중 건강상태가 악화되거나 사망할 경우 의료상 주의의무 위반행위와 의료행위 전에 원인이 될 만한 건강상 결함이 없는 것을 증명하면 의료상 주의의무 위반행위로 환자의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 외에도 의료제공자가 의료적 처치에 필요한 인력과 시설 등을 갖추지 못하면 환자가 입은 손해의 원인으로 추정한다. 또 의료상 요청되는 처치와 결과를 의무기록에 기재하거나 보관하지 않을 경우 의료제공자가 처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의료제공자가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경우 환자에게 재산상 손해가 없더라도 손해배상 책임을 규정했다.

박 변호사는 “의료계약은 체결 빈도나 계약의 목적이 생명과 건강을 다룬다는 점에서 강도 높은 보호와 법적 안정성이 필요한 분야”라며 “민법에 의료계약을 전형계약으로 도입한다면 환자의 증명 곤란을 완화하고 의료제공자와 임상 의료현장에 법적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료계약 민법 편입, 반발 있겠지만 의료 수준 높일 수 있어"

진료계약이 민법에 편입되면 의료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특히 상급종합병원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으로 꼼꼼한 의료처치가 덜 이뤄지는 1·2차 의료기관, 한의원, 요양병원 등에서는 효과가 있다는 지적이다.

법률사무소 이원 남민지 변호사는 “제안된 개정안에 있는 문구들은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확립된 법리와 차이가 없기에 임상 진료에서 크게 바뀌는 부분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1·2차 병원과 요양병원, 한의원에서는 꼼꼼한 처치가 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의료의 질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제공의무와 설명의무가 확대된 점으로 의료계가 반발할 수 있다고도 했다.

남 변호사는 “최근 4주기 의료기관 인증기준에 신체억제대 사용 전 동의서 확보가 문제가 된 바 있다. 의료계에서는 업무가 증가하고 인력이 부족하기에 현실적으로 사전 동의를 받기 어렵다는 반발이 있었다”며 “의료행위 전반에 설명과 동의 의무를 규정한다면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환자 및 보호자에 대한 정보제공과 설명의무 추가는 의료서비스 발전을 위한 바람직한 변화"라며 "그동안 의무기록을 대충 작성한 관행은 악습임이 분명하며 의무기록은 환자의 향후 치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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