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의 블루하우스

1월 8일 대한의사협회에서는 KMA Policy 특별위원회 출범식이 있었다. KMA Policy는 대체로 ‘대한의사협회 기본정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의협이 일관된 정책적 입장을 가지고 국민과 의사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사실 의협이 여러 사안에 있어 일관된 정책적 입장을 마련해 두고 있는지는 순간순간 드러난다. 작년 10월 5일 의협은 고 백남기씨 사망진단서와 관련하여 보도자료를 내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 보도자료는 (상해)진단서, 사망진단서, 부검 등과 관련된 의협의 정책적 입장이 무엇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법적으로 사망진단서도 진단서다. 따라서 사망진단서 역시 의사의 객관적이며 전문적 판단에 근거해야 한다. 그러나 의료법령은 (상해)진단서와 사망진단서를 매우 상이하게 규정하고 있다. 의협이 이러한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여 정책적 입장을 세우지 못한다면 사망진단서와 관련하여 의사들은 불합리한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9조에 따르면 의사는 진단서에 ① 환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주소, ② 병명, 한국표준질병·사인 분류에 따른 질병분류기호, ③ 발병 연월일 및 진단 연월일, ④ 치료 내용 및 향후 치료에 대한 소견, ⑤ 입원·퇴원 연월일 ⑥ 의료기관의 명칭·주소, 진찰한 의사의 성명·면허자격·면허번호를 기재하여야 한다. 상해진단서는 위에 더하여 ① 상해의 원인 또는 추정되는 상해의 원인, ② 상해의 부위 및 정도, ③ 입원의 필요 여부, ④ 외과적 수술 여부, ⑤ 합병증의 발생 가능 여부, ⑥ 통상 활동의 가능 여부, ⑦ 식사의 가능 여부, ⑧ 상해에 대한 소견, ⑨ 치료기간을 기재해야 한다. 이처럼 시행규칙은 (상해)진단서에 관하여 매우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반면 의료법 시행규칙 제10조에는 사망진단서에 관하여 ‘별지 제6호 서식에 따른다’는 극히 간단한 기술 밖에 없다. 시행규칙에는 ‘사망의 원인’, ‘사망의 종류’를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에 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 이유는 법적 책임 규명이 아니라 국가통계 목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부분의 작성은 의사에게 광범위한 재량이 부여되어 있으며 바로 이 점이 (상해)진단서와 다르다.

그런데 의사가 형법상 허위진단서작성죄로 처벌되는 경우는 추상적 판단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소위 여대생 청부살인사건에서 법원은 ‘진단명’은 허위가 아니지만 ‘수감생활이 불가능하다’라고 쓴 부분이 허위라고 판단하여 해당 의사를 처벌했다.

문제는 사망진단서의 ‘사망의 원인’에는 해석 혹은 추상적 판단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수십 가지 질병 중에서 단 세 개의 질병만을 인과관계로 엮어 사망원인으로 나열하는 작업에는 불가피하게 ‘해석’이 개입된다. ‘사망의 종류’를 기술하는 작업에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국민들이 사망진단서 작성에서 의사에게 인정된 재량을 이해하지 못하면 법적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의사로서 의협의 ‘진단서 등 작성·교부지침’을 준수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지침은 구속력 있는 법령이 아니다. 의협은 보도자료에서 지침의 법적 성격을 밝히지 않은 채 고 백남기씨 사망진단서가 지침을 위배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지침의 성격을 오해할 것이고 의사의 재량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앞으로 사망진단서와 관련하여 의사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법적 책임을 물으려는 사건은 많아질 것이다.

한편 의협의 보도자료에는 부검의 역할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고 백남기씨 사망진단서가 문제된 것은 살인죄라는 형사절차에서 사망원인을 규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협은 그 역할이 법의관의 부검에 맡겨져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어야 한다. 법의관도 의사이며 의협은 의사가 수행하는 다양한 역할에 대해 국민에게 정확히 알려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협은 법의관의 사회적 역할을 외면했고 국민은 사망진단서의 역할과 부검의 역할을 구별할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의협이 관련 주제에 대해 미리 숙고하여 균형 있는 정책적 입장을 마련해 두었다면 고 백남기씨 사망진단서와 관련하여 더 현명한 대처가 가능했을 것이다. KMA Policy 특별위원회의 출범이 일관된 정책적 입장을 세우고 국민과 의사소통하는 의협을 만드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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