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시아-오세아니아비만학회 김경곤 회장
"비만도 질병이란 인식 속에 치료 정책 발전해야"
"다이어트도 정책도 꾸준해야 실패 없다"

달 정복처럼 암 정복도 넘보는 인류가 '지구 마지막'까지 함께 할 질병은 무엇일까. 무수히 많은 질병 가운데 비만을 꼽는 의학자들이 많다. 치료법도 없는 희귀·난치질환 사이에서 "살만 빼면 그만일" 비만을 꼽는 이유는 인류가 단 걸 좋아하도록 태어났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음료수 등에 포함된 '단순당' 섭취를 비만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하던 가천대길병원 가정의학과 김경곤 교수 역시 "사실 저도 단 거 좋아한다"고 고백할 정도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단 걸 너무 좋아하도록 태어났어요. 오래전 생존을 위해 유전자에 각인된 기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죠. 비만이 인류가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질병이 된 이유입니다."

비만 약물 치료와 대사수술 권위자로 꼽히는 김 교수는 아시아-오세아니아비만학회(Asia-Oceania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Obesity, AOASO) 총무이사와 부회장을 거쳐 지난 10월 제6대 회장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지난 1998년 설립된 AOASO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대만, 싱가포르 등 14개 국가 비만학회가 참여하고 있다. 투표를 거쳐 4년마다 집행부를 선출한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선출된 첫 번째 회장이다.

AOASO 창립멤버인 한국에서 이제야 회장이 나온 게 의외라고 하자 김 교수는 "그만큼 한국에서 비만과 비만학이 가지는 위치가 올라갔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비만학 전통 강자는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다. 한국은 비만 수술 분야에서는 아시아권에서도 다소 늦은 편이다. 다만 약물 치료 경험과 수준만큼은 세계 선두권에 속한다. 치료 경험도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 오스트레일리아보다 오히려 풍부하다는 게 김 교수 생각이다.

그동안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가 주도했던 AOASO에 한국 집행부가 들어선 것은 그만큼 한국에서 비만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만학 발전은 비만에 대한 사회적 위기의식도 올라갔다는 "달콤씁쓸한 지표"다.

이제 한국은 비만을 권하는 사회다. 유튜브는 '먹방' 콘텐츠를 쏟아내고 설탕이 듬뿍 들어간 음식들이 '달지 않고 맛있다'는 평과 함께 돌아가며 유행하고 있다. 방송은 이를 확대재생산한다. 단순당인 액상과당이 들어가지 않은 음료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의사들이 "단 거는 위험(danger)"하다고 아무리 경고해도 거대자본은 물론 틈새 자본까지 시시각각 비만을 부추기고 있다.

아시아-오세아니아비만학회(AOASO) 제6대 회장으로 임기를 시작한 가천대길병원 가정의학과 김경곤 교수는 지난 1일 청년의사와 만나 국제사회 공조를 통해 적극적인 비만 정책 수립을 이끌겠다고 했다(ⓒ청년의사).
아시아-오세아니아비만학회(AOASO) 제6대 회장으로 임기를 시작한 가천대길병원 가정의학과 김경곤 교수는 지난 1일 청년의사와 만나 국제사회 공조를 통해 적극적인 비만 정책 수립을 이끌겠다고 했다(ⓒ청년의사).

비만학자들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비만을 막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김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비만 문제가 예방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고 판단한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비만을 줄이려고 애써야 하는 시간이다. 막을 수는 없어도 조금 줄여볼 수 있다는 가냘픈 희망에 기대 비만 권하는 사회와 부대껴야 한다.

"코로나19는 바이러스로 감염되죠. 하지만 비만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 자체가 병인이에요. 사회 모든 구성원이 병인에 노출돼 있어요. 한 나라만의 문제도 아니에요. 비만이야말로 진정한 팬데믹 상황입니다."

따라서 코로나19 대응처럼 비만도 국제사회가 공조해야 한다고 했다. 국제학술단체 회장으로서 AOASO도 좀 더 학회다운 학회로 만들고자 한다. 이전까지 비만학회 연합체 성격이 강했다면 이젠 조직화를 거쳐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비만 정책과 의료 발전에 한 목소리를 내겠다고 했다. 우선 미국비만학회(The Obesity Society, TOS)나 유럽비만학회(European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Obesity, EASO)처럼 회원국 학술대회에 적극 개입할 생각이다.

"TOS와 EASO는 회원국 학술대회 프로그램 구성이나 연자 섭외에 깊이 관여해요. AOASO도 회원국 학술대회를 함께 하면서 젊은 연구자와 정책 입안자를 발굴할 계획이에요. 수도권 아닌 지역 어느 대학 연구소에서 혼자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거죠. 이런 연구자들은 자기 연구 가치를 본인 스스로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이들을 초청해 발표할 기회를 주고 우수 연구자끼리 공동연구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어주자는 겁니다."

회원국 간 연구 경험과 정책 성과를 나눠 역량 차를 좁히는 것도 주요 과제다. 오는 2023년 개최하는 홍콩비만학회 학술대회가 그 첫 무대가 될 예정이다.

김 교수가 학술단체 간 공조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각국 비만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한국을 비롯해 여전히 많은 나라가 비만을 질병보다는 미용으로, 사회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실과 정책은 '엇박자'를 내고 있다.

"일단 맛있는 음식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담배는 흡연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서 국가 차원에서 강력한 금연 정책을 펼치기도 수월합니다. 담배 피는 사람 탓에 나까지 피해를 본다는 인식도 강하고요. 음주는 이보단 관대해요. 술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저 사람 혼자 마시고 끝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비만도 마찬가지예요. 저 사람이 많이 먹어서 체중이 늘었다는데 왜 나 먹는 거 가지고 그러느냐고 하죠. 국가가 정책적으로 개입할 때 저항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은 오히려 "이것저것 해보려고 애쓴 나라" 중 하나다. 지난 2018년 시작해 진행 중인 비만관리 종합대책을 비롯해 크고 작은 정책들이 계속 나왔다. 하지만 지속성이 없다는 게 문제다. 작심삼일 만에 무너지는 다이어트 계획처럼 단기간 성과가 안 나오면 중단하는 방식이 반복됐다는 지적이다. 부처 간, 지자체 간 공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를 고쳐야 한다.

'설탕세'처럼 가격규제 정책으로 단순당 첨가 음료수 소비를 억제하고 당 함유량이 높은 음식은 담배처럼 비만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넣는 생활밀착형 정책도 필요하다.

"환경을 바꾸는 게 우선이에요. 그래서 지금까지 예방정책을 강조했던 거고요. 물론 지금은 예방에 실패했다고 판단하는 편이에요. 꼭 정책의 실패라고 볼 수만은 없어요. 인간의 유전자가 당을 좋아하게 돼 있으니까요. 그러면 결국 생물학적인 방법도 필요해지죠. 그래서 비만 수술과 약물 치료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한국은 현재 비만 치료 분야에서 수술 행위에만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수술 전 과정은 물론 수술 이후 관리 단계도 급여화하고 꾸준히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활습관 자체를 교정하고 교육을 통해 관리하지 않으면 수술 치료도 허사가 된다.

약물 치료를 일부 급여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제 비만 약물도 고혈압처럼 약 복용으로 식욕 조절이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워낙 고가라 꾸준히 복용하기 어렵다. 정부와 시장은 비만 치료제를 건강기능식품처럼 취급하고 있다. 아직 의료보다는 미용 측면에서 접근하는 시선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비만 치료제 가격이 서울이 다르고 인천이 다릅니다. 같은 구 안에서도 약국마다 천차만별이에요. 그럼 그 약으로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가 가장 큰 피해를 봅니다. 약을 써서라도 식욕을 억제하고 합병증을 막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비만이 불러오는 수많은 질병과 죽음에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비만 치료제 일부 급여화로 드는 비용은 오히려 적다고 봅니다."

대한비만학회는 정부에 생명까지 위험한 일부 환자 대상으로라도 비만 치료 급여화를 요청하고 있다. 일부라도 비만 치료를 제도권 안으로 들이고 지속적으로 성과를 평가해 조금씩 적용 범위를 넓혀가자는 복안이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로서 일차 의료 역할도 강조했다. 약물 치료와 약재 연구를 비롯해 새로운 치료 방법이 계속 등장하겠지만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생활 습관을 짚어주며 꾸준히 해나갈 수 있도록 지지하는 역할은 결국 일차 의료가 할 일이라고 했다. 이렇게 정책과 시장, 의료가 유기적으로 연계해야 "비만과의 줄다기리기에서 지치지 않고 계속 해나갈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에게 비만 예방과 관리를 위한 다이어트 비법을 묻자 "쉬운 것부터 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우선 삼시 세끼 식사 시간마다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으라고 했다. 대신 식사와 식사 사이 음식 섭취는 삼가는 '김경곤표 간헐적 단식'을 권했다. 식사를 통해 몸에 축적된 글리코겐(glycogen)이 소비될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우리는 왜 늘 다이어트에 실패할까요? 너무 어렵게 해서 그래요. 절대 두 달 이상 할 수 없는 어려운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하니까 포기하게 되죠. 정책도 똑같습니다. 모든 비만을 일거에 뿌리 뽑겠다는 결심으로 잠깐 해보고 마는 식이 아니라 꾸준히 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더 많은 사회 구성원과 함께 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비만과 장기전에서 좀 더 나은 길을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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