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저수가로 소아암 진료 인프라 붕괴 지적
“소아암, 행위별 수가로 진료비 지급하는 현 체계와 달리가야”

(이미지출처: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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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암 치료체계는 의료진 고갈, 적자 폭등, 지방의료 붕괴 임박 등으로 위기상황이다. 국가차원의 획기적 대책이 없다면 1~2년 내로 지방에 사는 소아암 환자들이 암 치료를 받기 위해 수도권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 온다.”

소아암을 진료하는 현장의 의사들은 이같은 소아암 진료 인프라 붕괴의 원인이 중증 진료를 할수록 적자가 발생하는 수가 구조에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는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동일한 항암치료를 위해 단기 입원한 소아암 환자의 진료비는 성인의 절반 수준”이라며 “소아의 생명은 성인의 반값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소아혈액종양학회에 따르면 소아암 환자들은 채혈, 정맥주사, 골수검사 등 각종 시술 시 동시 여러 명의 의료진이 필요하고, 진료 과정마다 환자와 보호자 2명 이상을 대상으로 설명과 동의를 구해야 하는 노동집약적 진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이같은 노동집약적 의료 서비스는 급여목록에 명시된 수술과 시술, 검사가 아니기 때문에 보상은 전무한 실정이다.

특수한 소아 의료형태를 고려해 가산제도가 존재하지만 소아암 환자의 급여진료비는 입원비가 가산되더라도 성인에 비해 턱 없이 낮은 수준이다.

동일한 단기 항암치료 받는 암 환자들의 연령별 진료비 비교(자료제공: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동일한 단기 항암치료 받는 암 환자들의 연령별 진료비 비교(자료제공: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동일한 단기 항암치료를 받은 암 환자들의 연령별 진료비를 살펴보면, 항암치료일수 4일, 입원일수 6일로 동일한 조건 하에 5세의 급여진료비는 135만9,90원인 반면 27세 성인 급여진료비는 248만9,200원으로 1.5배 가량 차이가 났다.

여기에 성인의 경우 상급병실사용과 항암 후 각종 영양제, 항구토제 신약 투여 등 비급여 진료 선택이 늘어 진료비 총액은 552만2,603원으로 5세(169만7,159원)의 3배를 넘는다.

소아암 환자의 저수가 현실은 일반 폐렴환자와의 입원진료비 비교에서 드러난다.

소아혈액종양학회에 따르면 유익육종으로 진단받은 5세 소아암 환자가 5일간 입원해 치료 받은 급여진료비는 230만5,447원으로 5세 소아폐렴 환자가 8일간 입원해 치료 받은 급여 진료비는 280만610원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5세 소아 일반 환자와 소아암 환자의 총 입원진료비 비교(일반병실)(자료제공: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5세 소아 일반 환자와 소아암 환자의 총 입원진료비 비교(일반병실)(자료제공: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소아혈액종양학회는 “병원경영진 입장에서는 성인환자와 병상 회전이 빠른 소아청소년 일반질환자의 입원을 독려하고 수익 면에 도움되지 않는 소아암 병동의 인력과 시설에 투자를 하지 않는 게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병원 경영진의 소아 진료 분야에 대한 투자 부재와 높은 숙련도를 요구하는 소아암 분야 특성이 누적되면서 올해 기준 전국에 소아암 진료가 가능한 소아암 전문의 수는 67명이 전부라는 게 학회의 설명이다.

특히 현재 남아 있는 소아암 전문의 67명의 평균 연령은 50.2세로 5년 내 14명이 은퇴를 앞두고 있으며, 상당수는 이미 전공의 대신 당직을 서며 간신히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학회는 “소아암 진료는 특히 고난도, 고강도, 고위험 직업군으로 소위 ‘3D’ 업종이기 때문에 젊은 의료진이 기피하는 분야”라며 “소아암 환자들은 면역기능이 떨어져 위급상황이 많고 병의 종류도 많아 최신지견을 지속적으로 숙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회는 “아무리 치료를 잘하더라도 약 15%의 환자는 재발과 합병증으로 사망하는데 장기간 성심성의껏 치료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상실감과 환자 보호자로부터의 원망, 소송까지 견디기 쉽지 않다”고 했다.

또 “간호사들도 마찬가지다. 밤낮, 휴일도 없이 24시간 온콜 대기와 일손부족으로 야간당직까지 해야 하는 초인적 업무강도는 사명감과 보람으로 현장을 지켜 온 중견 소아암 전문의들마저 진료 포기를 고려해야 할 상황이 됐다”고도 했다.

소아암 등 중증질환…“필수의료체계로 관리해야”

소아혈액종양학회는 소아암을 포함한 중증질환을 필수의료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소아암을 비롯한 중증질환의 경우 최소 권역별로 최선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학회는 “소아암 분야갸 필수중증의료임을 인식하고 행위별 수가에 따라 진료비를 지급하는 현 의료보험 체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환자에게 시술 수로 임금과 수당이 결정되는 체제로는 존립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학회는 일본을 예로 들어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각 현의 현립어린이병원과 거점소아암병원에 1년에 200억~300억원의 운영비를 제공함으로써 이들 의료기관들이 환자 수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환자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소아암 등 중증질환체계를 국가 필수의료체계로 관리하기 위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학회는 소아암은 완치율이 85%인 만큼 완치 후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고도 했다.

학회는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3월 발표한 제4차 암관리종합계획을 보면 위암, 폐암, 대장암, 갑상샘암, 유방암 등 10대 성인암만 관리대상이고 소아암은 포함되지 않았다”며 “소아암은 성인암과 달리 조기 발견할 수 없으므로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학회는 “소아암 등 중증질환체계를 국가 필수의료체계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 제정이 필요하다”며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이미 붕괴가 시작된 소아암 진료체계를 지금이라도 서둘러 외양간을 고쳐야만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마음 놓고 치료받아 건강한 역군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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