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학연구소 인권캠프에 다녀온 의대생 참관기

최근 의료 현장에서 환자 권리 침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 여러 인권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이는 환자의 인권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비해 의료계에서는 인권에 대한 의제가 폭넓게 논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인권의학연구소는 지난 8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의료인이 알아야할 '정신장애인의 건강권', '성소수자의 건강권', '노동자의 건강권' 등의 주제로 예비의료인을 대상으로 '인권캠프'를 개최했다. 이론이 아닌 현장교육을 통해 보다 예비의료인들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에 청년의사는 인권캠프에 참가한 2명의 의대생 참관기를 통해 인권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예비의료인들의 모습을 살펴봤다.

보려 하지 않아 보이지 않았던 인권문제

고신의대 의예과 2학년 박지원
고신의대 의예과 2학년 박지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보고 싶어 함에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고, 보려 하지 않았기에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인권의학연구소의 인권의학 캠프를 통해 제가 보고 느낀 것은, 후자였습니다.

인권의학연구소에서 준비해준 내용은 정신장애인, 노동자, 국가폭력 피해자, 그리고 성소수자들의 건강권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소수의 예비 의료인들은 연구소에서의 이론 강연, 그리고 국립정신건강센터, 전태일 기념관, 남영동 민주인권센터, 국가인권위원회에서의 현장 교육으로 구성된 3일간의 캠프를 통하여 인권의학의 개념과 네 분야의 사회적 소수자들의 건강권에 대한 현주소를 깊고도 현실감 있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인권의학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께는 이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 둘의 관계는 인권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건강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에서는 개인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이는 국가폭력, 성폭력 등의 상황을 들 수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 중에 인권 침해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는 전쟁 중 의료진의 고문 개입이나 정신과 폐쇄 병동의 인권 침해 등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인권과 의학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이 캠프에 참여하였는데, 너무도 당연해서 오히려 풀기 어려웠던 문제였습니다. 의학이 목적으로 하는 사람의 건강과 사람의 권리를 말하는 인권이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 속 의학의 모습이 지나치게 사람을 대상화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적겠습니다.

첫째로 정신장애인의 문제입니다. 정신장애인들은 입원 전, 입원 중, 퇴원 후에 모두 의료적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입원 전에는 충분한 진료 접근의 어려움이, 입원 중에는 사설 병원 시설의 열악함과 강박 처리의 남용이, 퇴원 후에는 정신장애와 무관한 직업군에까지 취업이 제한되는 차별적 상황이 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노동인권의 경우, 하청 문제가 대두된 지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계속해서 잔혹한 피해들만이 보도되는 현실이 놀라웠습니다. 국가폭력피해자의 이야기에서는 고문에 의한 트라우마로 일상생활 회복이 힘들었던, 그리고 국가폭력으로 간첩 등의 낙인이 찍혀 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들었던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성소수자의 경우 발생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한 간성(間性)의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생학과 유전학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지 못한 자신의 편협한 사고에 깊이 반성했고, 국내 류마티스 환자군보다도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성소수자 환자군이 진료 접근과 처방, 보험 문제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또한 여전히 국내에 공식적인 성소수자 통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그에 대한 지원 정책도 전무하다는 것도 충격적인 사실이었습니다.

21세기, 그리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우리 사회 속에서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 얼마나 크겠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로는 저개발의, 민중을 착취하는 독재 국가들을 떠올리기 쉬운데, 대한민국은 그것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디에나 약자는 있습니다. 그래도 한국에서의 약자는 더 수준 높은, 상대적인 약자 아니겠냐고 말씀하실 수 있지만, 이미 무시당하고 있는 인권은 얼마든지 더 짓밟힐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그러고 있듯이 말입니다.

우리 사회가 바라는 의료인의 모습과 의료인들에게 가지는 편견은 어떤 것이 다를까요? 저는, 인권 의식이 둘의 차이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든 사회의 구성원은 인권 의식을 지녀야 합니다만, 의료인은 더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위하여 사람의 몸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것이 의학의 본질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어두운 곳은 빛을 비춰 보려 해야만 볼 수 있습니다. 그 빛은, 우리의 원칙과 상식이 만드는 인권 의식입니다. 빛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빛이 있어야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수많은 예비 의료인들과 의료인 선생님들께서,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는 빛과 함께 이 사회를 바꾸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인권의학연구소가 지난 8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정신장애인의 건강권', '성소수자의 건강권', '노동자의 건강권' 등의 주제로 예비의료인을 대상으로 개최한 '인권캠프'.
인권의학연구소가 지난 8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정신장애인의 건강권', '성소수자의 건강권', '노동자의 건강권' 등의 주제로 예비의료인을 대상으로 개최한 '인권캠프'.

인권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에 변화를 준 인권캠프

고신의대 의예과 2학년 정차미
고신의대 의예과 2학년 정차미

의사가 되기 위하여 긴 학업의 과정을 밟는 의과대학생, 그 과정에서 당장 목전에 닥친 시험을 대비하느라 문득, 정작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할지 준비하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하여 인권의학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예비의료인들을 대상으로 한 2022 인권캠프를 신청하여 참여하게 되었다. 인권캠프는 817, 18, 193일간 인권의학연구소에서의 오전 이론 강의와 오후 현장 교육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817일 오전 인권의학 총론 강의와 정신장애인의 건강권 강의를 듣고, 오후 국립정신건강센터 소아청소년과 폐쇄병동 현장에 방문하였다. 병동에서 정신질환자들이 사용하는 격리실·강박 도구 등 각종 시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818일 오전 노동자 건강권과 국가폭력 트라우마에 대한 강의를 듣고, 오후 노동인권 현장인 전태일 기념관과 민주인권 현장인 남영동 민주인권센터에서 고문 피해자분을 만나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819일 오전에 성소수자 건강권 강의를 듣고, 오후에 국가인권위원회의 간담회에 참석하여 장애인, 노동자, 성소수자의 건강권 증진을 위한 인권위의 정책권고를 알아보았다.

오전 이론 교육 후 오후 이와 대응되는 현장 교육이 이루어져, 이론으로 배웠던 내용을 상기하고 현장을 보다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인권의학 강의 내용에 따르면, 건강과 인권은 밀접한 상호의존성을 가진다. 인권 침해가 건강 악화로 이어지는 경우는 여성폭력, 성폭력, 아동학대 등 우리 사회에서 만연하게 찾아볼 수 있다. 반대로 인권의 증진은 공동체 건강 증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된다. 의료인이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인권캠프 활동 중 어디를 가나 받을 수 있었던 따뜻한 환영이 인상 깊었다. 이는 인권 현장에서 의료인들이 바꿀 수 있는, 또 바꿔야 하는 것들이 존재하며, 의료인들이 인권에 관심을 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캠프 참여 동기였던, 어떤 인권의식을 가진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다음과 같다. 먼저 현행되고 있는 반인권적 제도와 관행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지고, 자기성찰과 타인 존중을 실천한다. 돌봄의 가치를 중시하고 환자에게 공감하는 의사, 환자가 속해있는 사회까지 넓게 보는 의사로 안목을 넓히고자 한다. 의료인이 노력하는 모습을 알아줄 환자들이 나타날 것이고, 이는 환자와 의사의 신뢰와 연대로 발전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인권캠프에 참여하며 느낀 바는 인권교육은 무엇보다 노출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인권캠프 참여 전과 후의 나의 마음가짐에 변화가 있었듯, 의료인 교육과정에서 인권교육이 정식적으로 자리잡아 향후 인권친화적인 의료인들이 많이 양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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