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한국보건의료가 가야할 길①
문 정부 5년, 건보 보장성 강화 매달려 구조적 문제 해결은 뒷짐만

청년의사는 지난 2017년 창간 25주년을 맞아 ‘고령화‧만성병‧저성장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의료체계의 새 판을 짜야 한다는 화두를 던졌다. 서울, 광주, 대구, 대전 등에서 진행된 그랜드 포럼에 수많은 전문가와 현장 의료진이 참석해 호응했다. 당시 막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해져 금방이라도 보건의료체계에 변화가 찾아올 것 같았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당시 청년의사의 생각에 동의했고 해결책을 제시했던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지난 5년간 변한게 없다’고 말하고 있다. 5년 전, 한국의료가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했던 청년의사가 창간 30주년을 맞아 한국의료체계에서 문재인 정부의 5년을 되돌아보고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해야 할 보건의료정책 방향을 짚었다.

청년의사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난 2017년, 창간 25주년을 맞아 '한국의료체계 개편' 화두를 던졌다.
청년의사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난 2017년, 창간 25주년을 맞아 '한국의료체계 개편' 화두를 던졌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청년의사가 한국 의료체계 개혁을 위해 새 판을 짜야 한다며 던진 화두는 ▲의료공급체계 개혁▲건강보험 거버넌스 구조 ▲건강보험 재정조달 마련 방안 등이었다.

당시 포럼에 참석한 보건의료계 전문가들 개혁을 위해 ▲지역사회 중심 의료 ▲의료전달체계 확립 ▲예방중심 의료 ▲의료지불체계 개편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건강보험체계와 관련해서는 보험자들이 환자들의 적절한 의료 이용을 유도하고 절약된 재정은 다시 보험자에게 투입해 의료의 질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건보 보장상 강화에만 집중해 의료이용을 늘리는 형태로는 늘어나는 의료비 증가를 억제할 수 없다는 우려에서였다.

또한 국내 병상 수 의료인력 등 자원에 대한 현황을 파악해 자원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인력을 어떻게 양성해 활용할 것인지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도 했다.

건강보험체계 거버넌스 개혁과 관련해서는 ▲보건복지부의 과도한 영향력 행사 문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보험자 기능 강화 ▲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원구조의 비효율성 ▲의료정보관리 미흡 ▲의료기술평가 취약 등의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직접 통제‧감독하기보다는 보험자에게 책임과 권한을 이전해 간접적인 관리에 나서고 하부 조직에 책임과 권한을 나눠줘야 효율적인 건강보험제도 운영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정부가 주도해 온 주요 의사 결정은 보험자, 공급자, 환자가 참여와 합의를 통해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 5년, 의료체계 개혁은 제자리

하지만 청년의사가 한국의료체계 개혁이라는 화두를 던진 지 5년이 된 2022년, 전문가들이 개혁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문제들 중 해결된 것은 현재 아무것도 없다.

문재인 정부는 지역사회 중심 의료를 위해 커뮤니티케어를 대대적으로 추진했지만 현재 커뮤니티케어는 의료보다는 복지에 초점이 맞춰져 ‘지역사회통합돌봄’으로 불리고 있으며, 의료계에서 의료없는 커뮤니티케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해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을 추진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고 오히려 최근 대형병원들의 수도권 분원 설립 붐이 일며 대형병원 확대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OECD가 지난 2021년 발표한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1’를 살펴보면 전문가들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과도한 의료이용도 여전하다.

2019년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받은 횟수는 연간 17.2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았고, 이는 회원국들 평균인 6.8회보다 2.5배 높은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입원환자 1인당 평균재원일수 역시 18.0일로 OECD 국가 평균인 8.0일에 비해 10일이나 더 많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인 문케어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문케어의 목표는 건보재정 30조원을 투입해 보장성 70%를 달성하는 것이었지만 2016년 62.6%였던 보장성은 2020년 65.3%로 오르는데 그쳤다.

또한 비급여 풍선효과 통제에 실패했고 실손보험 관리가 취약해 실손보험 진료비, 보험료, 비급여가 모두 증가하는 결과가 나타났다는 부정 평가를 받고 있다.

때문에 2017년 포럼에서 한국의료체계 개혁을 위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던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5년을 돌아보며 개혁이 문제가 아니라 5년 전에 비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표 안되는 문제는 안 건드린 문재인 정부

당시 포럼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건강복지정책연구원 이규식 원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한국보건의료체계 개혁과 관련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더 뒷걸음질쳤다”며 “국민건강보험재정 적립금 쌓아놓은 것으로 여러 사업들을 하면서 상황이 안좋아졌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지금은 5년 전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고령화와 의료비 증가 속도를 보면 매우 빠른데, 의료이용 관리가 전혀 안되고 있다”며 “지역의료, 일차진료, 방문간호 등 말만 많았고 커뮤니티케어도 한다고 하더니 지금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5년 전에는 그래도 바꿔야 하고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렇게 5년 정도 지나고 보니 정부 비판하는 것이 의미없다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 윤석준 위원장(고려대 보건대학원장) 역시 문재인 정부가 ‘표 안되는 문제’를 손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윤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보건의료정책의 핵심은 ‘문케어’로 불린 보장성 강화 정책이고 그 중에서도 의학적비급여의 급여화 였다”며 “포장을 문케어로 해서 그렇지 역대 어느 정부나 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은 모두 추진했다. 국민들에게 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표를 얻을 수 있는 행위에 집중하다보니) 의료전달체계, 진료지원인력문제 등 표는 안되지만 꼭 개선하고 나가야 하는 주제는 뒤로 밀렸고 여전히 뒤로 밀려있게 됐다”며 “해결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의사 수 확대 등이) 거칠게 진행되며 안하느니만 못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윤 위원장은 “현장에서 나오는 다양한 의견을 모아 합의에 이르는 해법을 찾아야 했는데 한발도 나가지 못했다”며 “이런 일들이 문재인 정부에서 반복되며 가시적인 효과를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덧붙였다.

5년 전 화두, 다잡고 다시 시작해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최병호 원장은 “문재인 정부에 기대가 컸지만 결과적으로 노무현 정부 2.0에 그쳤다”며 “문재인 정부가 보건복지 분야에 방점을 찍은 정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내부 의사결정과정에서 경제, 재무, 금융분야에 밀렸다고 본다”고 평했다.

최 원장은 “보건의료정책은 (기본을) 탄탄하게 다져가면서 해야 하는데 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식으로 욕심을 부려 재정도 늘고 관리도 안되는 상황이 됐다”며 “다양한 분야 의견을 들었어야 하는데 너무 내부 논리에만 충실했다. 한국의료도 이제 세계적인 기준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선임연구원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한국의료체계 개혁은) 크게 나가지 못했다. 5년 전 이야기 했던 내용들을 다잡아서 다시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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