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 이하 확진자 늘면서 전체의 13% 차지
“소아 확진자 상태 악화돼도 갈 곳이 없다”
그나마 있던 소아 진료 인프라 축소해 성인 진료
의료인력도 턱없이 부족…“사명감만으로 버티기 힘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취약점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오미크론 변이 유행으로 소아 감염자가 늘자 이번에는 소아응급의료체계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소아 확진자 중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원인이 코로나19 자체보다는 그동안 외면해 온 소아응급의료체계에 있다고 지적했다. 소아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가 소아 확진자 현황 진단과 대책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23일 대한소아응급의학회와 진행한 좌담회에서는 이같은 지적이 쏟아졌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23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는 49만881명으로 누적 확진자는 총 1,042만7,247명이다. 만 19세 이하 소아청소년 확진자도 급증해 전체 확진자의 26.2%인 274만1,296명이다. 만 9세 이하 확진자는 131만3,170명으로 12.6%나 된다. 19세 이하 사망자는 총 10명이며 이들 중 8명이 9세 이하에서 발생했다.

중대본이 밝힌 코로나19에 걸린 소아의 중증화율은 0.005%이며 치명률은 0.01%다.

소아응급의학회는 치명률이 낮은데도 소아 확진자 중 사망하는 사례가 꾸준히 발생하는 이유가 성인 환자 중심으로 추진된 코로나19 정책으로 인해 그나마 있던 소아 진료 인프라마저 줄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소아응급의학회 류정민 부회장과 이지숙 수련이사는 23일 대한의사협회 주최 간담회에서 소아 확진자 현황과 소아응급의료체계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한소아응급의학회 류정민 부회장과 이지숙 수련이사는 23일 대한의사협회 주최 간담회에서 소아 확진자 현황과 소아응급의료체계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아응급의학회 수련이사인 아주대병원 응급의학과 이지숙 교수는 지난해까지 방역 조치가 잘 이뤄지면서 소아에서는 코로나19뿐만 아니라 다른 감염병 발생도 전체적으로 줄자 소아 응급실 인프라를 축소했다고 했다. 소아 응급실 의료진이 성인 환자를 담당하고 병상 수를 줄여 발열 환자를 진료하는 영역으로 바꾸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올해부터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하면서 소아 확진자가 폭증했지만 의료시스템은 준비돼 있지 않아 병원 진입이 어려워졌다”며 “열이나 경련이 있는 경우 소아 응급의료진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지만 부재한 상황이어서 시의적절하게 치료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소아 사망 사례는 단순히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해 대두된 문제가 아니다. 대구 장중첩증 소아 사망 등 치료받을 곳을 찾아 헤매다 사망하는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며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소아 중환자에 대한 대비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소송도 많고 어려고 힘든 소아 진료, 전공하려 하지 않는다"

소아 환자를 진료한 의료인력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소송에 휘말릴 위험이 높은 환경으로 소아 분야를 전공하려는 의사가 줄고 이는 의료 질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아응급의학회 부회장인 서울아산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 류정민 교수는 “소아응급의료체계는 곧 소아응급 의료인력과 같은 말이다. 소아를 진료할 의사와 간호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시스템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소아 응급 간호사들도 너무 힘들다며 퇴직하거나 다른 부서로 이동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센터도 경력 간호사 비율은 줄고 신규 간호사 등 잠시 근무하는 간호사 비율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소아 응급과 밀접한 소아 중환자 쪽도 전문의가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전국적으로 몇 명 되지 않아 5년 이내 대가 끊길 것 같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걱정했다.

이 교수는 “소아 진료의 경우 행여나 소송에 휘말리면 기대여명이 길어 보상책임도 크다. 어렵고 힘들고 소송도 많다보니 전공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소아 분야 의료진이 줄다보니 진료 경험이 부족한 의료인에게 치료를 받다가 악화되는 환자가 생기는 등 악순환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병원 입장에서는 소아 응급 환자는 진료해도 수익이 나지 않아 성인 환자를 진료하는 것처럼 인력이나 장비를 지원하는데 소극적이어서 현장에서 문제를 극복하기가 더 어렵다”고도 했다.

"1~2년 이내 소아 중환자 진료할 곳 사라질 수도"

소아응급의학회는 소아 전문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소아응급세부전문의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대한의학회로부터 소아응급세부전문의 자격 인증을 받았으며 2022년과 2023년에 한 차례씩 한시적으로 자격인정 시험 면제 전형도 시행할 예정이다.

류 교수는 “단기간 내 소아 응급 의료 개선을 위해서는 전국 개원가, 봉직의, 아동병원 등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잘 활용해 진료 시스템을 구축하고 간호인력의 경우 소아 진료 경험이 있으나 다른 부서로 전근 또는 은퇴한 유휴 간호사를 활용해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모두가 기피하는 소아 진료와 야간·심야 진료가 합쳐진 것이 바로 소아 응급이다. 지금까지는 소청과나 응급의학과 의사가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다”며 “하지만 빠르면 향후 1, 2년 이내 소아 중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응급센터가 없어져 아이를 치료하지 못해 사망률이 증가하고 출산율이 감소하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는 심각하게 바라보고 즉각적으로 대처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중앙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장이 소아응급센터를 지역별로 설치하고 수익 모델이 될 수 없는 소아 응급실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에 적극적으로 충분한 인력과 시설 등을 지원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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