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2년 마치고 퇴임하는 대한의학유전학회 황도영 이사장
유전질환 전문의 양성에 힘쏟는 학회…교육기회 확대 검토
“유전의학 발전하려면 기초의학 육성해야…진료여건 개선 필요”

최근 들어 희귀질환클리닉이나 임상유전학센터 등 희귀한 유전질환을 다루는 전문진료센터를 개설하는 병원들이 늘고 있다. 특히 유전자 진단기술이 발전하고 이를 통해 희귀질환들이 발견되면서 치료법이나 치료제 개발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더욱이 2015년 희귀질환관리법이 제정되고 전국 희귀질환거점센터들을 중심으로 네트워크가 구축되면서 유전의학 분야에 관심을 갖는 의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유전학 및 유전체학 분야를 선도해온 대한의학유전학회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의학유전학회는 설립 40주년 된 중견학회다. 하지만 유전질환을 보는 의사들조차 잘 모를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은 아니다.

87년 지도교수를 따라 학술대회에 참가하며 유전의학 분야에 눈을 뜨게 됐다는 의학유전학회 황도영 이사장은 설립초기 10여명으로 시작했지만 40년이 된 현재 회원이 1,000여명에 이른다며 수년전부터 저변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황 이사장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병을 고칠 수 있는 의사 한명을 키우면 그 의사 한명이 백명, 천명의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면서 “임기 동안에도 그 부분에 집중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12월말 2년 임기를 마치고 서울대병원 전종관 교수에게 바통을 넘기는 황 이사장에게 학회의 인력양성 방안 및 유전의학 분야 의료인 양성을 위해 필요한 제도적 방안 등은 무엇인지 들었다.

- 의학유전학회가 창립된 지 40주년이다. 하지만 40주년이라는 긴 세월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지 않다.

학회는 81년 12월 2일 창립됐다. 올해가 40주년이었다. 학회 초창기 10여명 정도로 시작했는데 현재는 1000여명이 가입돼 있다. 의사 정회원은 150여명, 관련 분야 박사나 석사 학위 소지자인 준회원이 65명, 나머지가 그 외 분야 준회원들이다. 약사, 간호사, 유전상담사 등으로 실제 현재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은 300명 정도다.

30년 전 의사 회원이 15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배가 되기까지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앞으로의 증가속도가 지난 30년 전과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될 것이다.

- 최근 들어 의사 회원이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과거에는 희귀질환을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1990년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시행되면서 그동안 몰랐던 병의 원인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유전자 진단 기술이 발전하고 의사들 사이에서도 질환에 대한 정보 공유가 활발해지면서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국내에서도 경쟁적으로 클리닉이나 센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검사가 활발해지고 희귀질환을 연구하는 의사들이 늘면서 지역에서도 희귀질환자들을 치료하는 영역을 구축하게 됐다.

또한 지난 2005년부터 학회에서는 임상유전학 분야의 고유한 전문 의료행위의 자격 인증을 위해 임상유전학인증의(MD Medical Geneticist) 제도를 시행해 오고 있다. 인증의제도가 보건복지부로부터 인증을 받게 되면서부터 관심 있는 의사들이 더 늘어나는 것 같다.

특히 몇 년 전 질병관리본부에서 희귀질환 분야의 전문인력을 양성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었다. 이에 2019년부터는 체계적인 의학유전학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의학유전학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의학유전학 교육과정(ECMGG)’을 개설해 운용하고 있다.

- ‘의학유전학 교육과정(ECMGG)’은 무엇인가?

ECMGG는 기초 및 응용 교육 과정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 교육과정을 이수하기 위해서는 3시간씩 10주, 기초 30시간, 응용 30시간 총 60시간을 수료해야 한다. 각 과정당 40명 내지 60명 정도 선발하는데 현재는 희귀질환 환자를 보고 있는 의사들에게 기회가 먼저 가는 편이다. 쏠림현상을 막기 위해 지역과 학교 안배를 하기도 했지만 정부가 지정한 희귀질환거점센터 등에서 환자를 보고 있는 의사들을 교육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그동안은 30~40대 젊은 의사들을 위주로 선발해왔다. 하지만 희귀질환 환자를 보는 게 일반적이 될 수 있는 만큼 대상을 모든 의사로 확대하자는 움직임이 학회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 임상유전학 인증의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인증의 자격이 필요한 이유는?

유전의학은 소아청소년과나 산부인과에서 가장 많이 다루게 된다. 하지만 그동안 진단검사의학과만 유전관련 검사비 (건강보험)청구 자격이 있었다. 90년대 들어 소아청소년과나 산부인과 의사들이 환자를 진료하고 검사비를 청구했는데 제한이 되자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결국 2005년부터는 복지부가 전문학회에서 인증한 인증의도 유전자검사를 청구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그게 바로 의학유전학회 ‘임상유전학인증의‘다

- 현재 임상유전학 인증의는 몇 명 정도인가.

10월말 기준 62명이 배출돼 있다. 임상유전학 인증의는 전문의 자격증 소지자로서 세포유전학, 분자유전학, 분자생물학, 생화학, 집단유전학, 생물정보학 등 임상유전학을 1년 이상 연수하거나 의학유전학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실무경력 1년 이상 쌓아야 한다. 임상유전 관련 상담건수 또는 유전자검사 분석건수가 150건 이상이어야 하고 학회에도 열심히 참석해야 한다. 진단, 검사, 치료 방향, 예후 결정 및 가계 구성원에 대한 유전 상담 등 일련의 복합적인 의료행위까지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면 신규 인증의와 유전상담사 양성을 위한 수련 및 교육을 할 수 있다. 물론 5년마다 자격갱신을 해야 한다. 임상유전학인증의 시험은 매년 초 1회 실시되는데 자격기준이 까다롭다보니 만든 지 15년이 지났는데도 배출된 인증의가 62명에 불과하다.

- 자격 취득과정이 쉽지 않아보인다.

많아졌으면 좋겠는데. 현재는 한해 보통 4~5명 정도다. 지금 커가는 과정이라 그렇다. 2023년, 2024년 정도 되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학회로서는 까다롭게 운영해 인증의가 아닌 국가인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환자를 잘 보려면 이 정도의 공부는 해야지 않나 생각도 든다.

- 학회 인력 양성 방안에 정부 지원은 없었는지.

질병관리청이 2016년부터 전국에 희귀질환거점센터를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전문인력이 부족했고,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프로젝트 공모를 했다. 이미 학회로서는 2005년도부터 인증의제도를 운영해온 만큼 사업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

질병관리청 프로젝트에 따라 희귀질환전문의 양성프로그램을 만들어 3년간 지원을 받아 올해까지 운영했다. 내년부터는 질병관리청 사업이 종료되는 만큼 학회 기본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교육제도로 변형해 운영하고자 한다.

궁극적으로는 소수가 아닌 많은 의사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한다. 장기적으로 거점병원도 운영해야 하는데 희귀질환을 찾아내고 치료해줄 수 있는 인력이 많지 않다. 현재는 사람들을 키우는 게 급하니 특화되어 있는 편인데, 지식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기회를 확대할 생각이다.

- 한국의 유전의학 발전을 위해 정책적, 제도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게 있다면.

규모의 싸움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과거에는 뛰어난 사람 한명으로도 큰 업적을 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팀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유전질환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적다. 92년 미국 유전학회에 갔을 때도 등록한 사람만 1만5,000명이었다. 그 때 우리는 한 100명 정도? 일본만 하더라도 우리의 3배 정도 된다. 유전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차이가 너무 난다. 그러다보니 게임이 안될 수밖에. 저변확대가 필요한 이유다.

저변이 확대돼도 문제다. 유전학은 그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 우리나라 의사들은 일반진료도 해야 하고, 연구도 해야 한다. 희귀질환만 볼 수 있는 여건이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 의사들의 역량이 부족해서일까? 손흥민 선수가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훌륭한 기량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의 경우 축구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잘돼 있기 때문이다. 유전의학이 발전하려면 기초의학을 많이 육성해야 한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등이 희귀질환과 관련된 유전질환에 대한 연구사업을 늘리고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

- 하지만 현실은 유전의학을 하는 의사들 대부분 유전질환자만을 진료하지 않는다. 그런데 일반 환자들을 보면서 유전질환을 본다는 게 말처럼 쉬워 보이지 않더라.

국내 유전질환을 보는 의사들 대부분은 소아과나 신경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들이다. 하지만 유전의학이라는 게 활성화되려면 유전학 교육과정이 의과대학에도 있어야 한다. 그나마 서울대병원에 임상유전체의학과가 국내 처음 생겼다. 각 병원들마다 유전체의학 관련 진료과가 생길 수 있다면 많은 발전이 될 것이다. 정부에서도 재정적인 부분이나 교육제도 등 맨파워를 기를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많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 올해를 끝으로 학회 이사장 바통을 넘겨주게 된다. 지난 2년간을 되돌아보며 한마디 부탁드린다.

외국에서 공부하게 됐을 때 우리나와 상대가 안되는 나라들을 보며 언젠가 우리도 저 반열에 올라섰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의사들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전혀 뒤지지 않는다. 충분한 역량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환자에게 좀 더 해주고 싶은 게 있어도 환경이 그렇지 못하다. 의사들이 자유롭게 (희귀유전질환)환자를 볼 수 있도록 진료여건이 개선됐으면 좋겠다. 특히 유전질환의 경우 유전상담은 필수적이다. 유전상담사들이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직역이 될 수 있도록 학회 차원에서도 노력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