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훈 저/웅진지식하우스/260쪽/1만5,000원

지독한 우울증을 앓던 한 의사가 있었다.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된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서울대 나온 의사가 우울할 일이 뭐가 있니?”

우울증을 앓던 의사가 죽음에 응답하기 위해 생사의 경계를 오가는 위험지역에 발을 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세상 끝에서 만난 아픔과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았다. 그리고 그 여정을 담담하게 기록한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를 내놨다.

저자 정상훈은 어느 순간부터 ‘죽음’을 떠올리게 됐다. 이유도 모른 채 살고 싶지 않았던 그는 어느 날 문득 죽음의 부름에 응답하기로 했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죽음이 만연한 아르메니아, 내전이 한창인 레바논, 치사율이 50~90%의 에볼라바이러스가 창궐한 시에라리온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우울증을 앓던 때 저자는 ‘분노’와 ‘슬픔’의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고 고백한다. 사회구조적 문제로 치료를 포기하고 거부한 환자들, 의료 시스템과 자원의 부족으로 치료에 실패한 환자를 맞닥뜨리며 쉽게 분노하고 깊은 무력감을 느끼고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다양한 아픔의 얼굴을 가슴에 묻고 난 후, 그는 비로소 분노에 빠지거나 무기력해지지 않게 됐다. 태어난 지 고작 두 해 지나 숨을 거둔 아이의 명패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운명보다 강해져야 한다” 고. 의사 한 명이 환자를, 그리고 세상을 구하지 못한다는 자책감 때문에 죽음 앞에서 약해져서는 안 된다고.

지구 반대편에서 혈혈단신이라 여겼던 그 자신도 이미 혼자가 아니었다. 동료 의료진을 믿고 의지하는 동료애, 내면의 아픔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의연함, 애증의 대상이었던 엄마의 아픔조차 껴안을 수 있는 강인한 용기가 자신 안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던 그는 어느새 ‘한국인 최초의 에볼라 의사’가 되어 있었다.

이국종 교수가 “한 의사가 생명의 최전선에서 버텨내며 남긴 최대치”라고 극찬한 이 에세이는 미화할 수 없는 죽음의 민낯을 그리며, 한 의사가 비로소 자기 내면과 타인의 아픔을 껴안는 과정을 담았다.

죽음 속에서 분투한 시간을 지나 저자는 스스로 떠올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이제 우리 각자가 삶의 의미를 물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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