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주 여의도성모병원 내과 전공의

2주 전, 우리 파트 1년차 선생님이 내과 수련을 포기했다. 평소 근면성실하고 열심이던 분이었는데, 내과 의사로서 맞닥뜨리는 중환자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방법을 찾아야 했다. 원인을 분석하고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첫 주는 행정적으로 휴가 처리를 한 채 다들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컸지만, 따로 연락해서 부담을 더하고 싶진 않았다. 파트 시니어로서 할 일은, 그가 돌보던 환자들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그저 묵묵히 공백을 메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 휴가를 간 2년차 전공의의 업무를 포함해 3주 째 차트를 잡고 있다. 그간 벌려 놓은 일들이 많아 갑작스레 맡겨진 주치의 일을 병행 하려니 힘에 부쳤고,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환자들과 가까이 지내며 검사와 치료를 챙기는 일이 싫진 않았다. 환자들은 나를 통해 처음으로 암 선고를 받기도 했고, 좋아졌으니 이제 집에 가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제야 나의 본업으로 돌아왔나 싶은 생각에 뿌듯함도 들었다.

하지만 적은 인원의 과에서 1명의 공백은 꽤 컸다. 나도 체력이 많이 떨어졌는지, 며칠 전부터 목 림프절 여기저기가 부어올랐다. 금방 낫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웬걸, 퉁퉁 부어올라 건드리기만 해도 아프고, 전신통도 동반됐다. 당직 근무 중 열감이 느껴져 병동 체온계로 재보니 39.3도의 고열이 나고 있었다. 코로나19 백신을 2차까지 맞았지만 아직 항체가 생길 충분한 시간은 지나지 않은 터라, 교수님께 상의를 드렸다. 교수님은 “일은 어떻게든 메울 테니 걱정하지 말고, 빨리 검사하고 치료 받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급하게 동기에게 당직을 부탁한 후, 그렇게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응급실 격리실 침대에 덩그러니 누웠다.

당시 내가 맡고 있던 환자 중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분이 두 분 있었다. 두 분 모두 가족들은 더 이상의 적극적인 치료(즉, 기관삽관, 투석 등)는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그러면 보통 내과 주치의는 더욱 절박해 진다. 망가진 장기를 대체할 의학기술을 쓸 수 없다면, 오롯이 주치의의 관심과 재빠른 조치만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환자가 가진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간 몇 번의 고비를 잘 넘겨 왔던 환자라 괜찮겠지 싶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주치의 전공의가 몸져누워 관심이 흐려지자마자, 환자들 상태가 손 쓸 틈 없이 나빠졌다. 나대신 이래저래 고군분투한 펠로우 선생님과 전공의 선생님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두 환자 모두 한 날 한 시에 생을 마감하셨다. 내가 응급실 침대에 누운 지 고작 1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죄책감이 들었다. 나 때문인 것 같았다. 허탈함과 상실감에, 어떻게든 빨리 나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의국에서 냉동밥을 데워 꾸역꾸역 넘기고 약을 삼켰다.

대한민국 의료현실에서 이와 같은 상황은 너무 빈번하게 발생한다. 운명을 달리한 환자들은 과연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 것인가.

돌보던 환자를 내버려 둔 채 수련을 포기한 1년차는 나쁜 의사인가? 몸이 아파 관심의 끈을 놓치고 환자를 소홀히 한 3년차는 이기적인 의사인가?

생명연장을 위한 의료장치를 거부한 가족들이 무자비한 사람들인가? 가족조차 포기한 환자를 살리겠다는 생각은 의사의 과도한 욕심인가? 아니, 애초에 바이탈 과를 선택한 우리가 미련한 바보였을까?

다양한 생각이 교차하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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